흘러갔던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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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밤 12시를 사이로 맞닿아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력 생일이 모두 지나고서야 우리 가족은 802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여름의 묵은 냄새로 가득한 맞은편 병상에서, 다시 냉장고 너머의 병상으로 다시 들어와 후끈하고 건조한 겨울을 났다. 아버지의 섬망으로 고생한 겨울날들이었는데 아버지는 그 섬망마저도 반짝거려서 아버지의 소년 시절을 보는 듯했다. 섬망에서 시작된 말도 안 되는 아버지의 말들을 나는 능청스러움으로 잘 넘기고는 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병실의 환한 천장을 바라보며 윤아, 여기 별이 쏟아질 듯하다고 했을 때는 나조차도 여유롭게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서, 잠기려는 목을 가다듬 위한 작은 숨을 아버지는 모르게 한번 쉬고 대답해 드려야 했다. 그래 아빠, 별이 참 밝네. 은하수인가 봐. 하고. 올려다보는 그 눈이 어리고 앳되어 보여서 상상 속 밤하늘을 보고 계실 아버지가 애틋해 섬망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라는 철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어딘가 어리고 엉뚱해진 아버지를 엄마와 나는 한없이 귀여워했다.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하던 여름에도 그렇게 아버지 당신께서는 퇴원할 거라고 굳게 믿더니, 섬망이라는 꿈 속에서도 그렇게 병원 탈출을 염원하셨다.( 택시를 몰래 잡아 집까지 도망가려는 탈출계획을 같이 도모하곤 했다.) 차차 차도가 보인 뒤 마침내 새해의 해가 밝고 이삼일이 지나고서야 두 번째 퇴원을 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밝아지셨다. 말가진 얼굴이 마침내 현관 중문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을 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이 불안했던 내 마음을 쓸어내렸다. 집 안에는 어느새 아버지와 함께 들어온 안도감, 나의 행복이 그 전날 밤새 내렸던 함박눈처럼 소복이 쌓였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의 몸을 덕지덕지 조각보처럼 이어 붙였던 파스들은 하나 둘 떼어졌다. 두 명의 보호자는 들어갈 수 없는 병원 규칙 상, 가족 셋이 다 모이기 위해서는 병실을 나와야만 했는데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는 아버지가 휠체어에 겨우 몸을 싣고 병원 복도에 간신히 나와 셋이 몇 주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그리고 내 앞에서 우는 건 처음 봤다. 이제는 우리만의 둥지에 세 가족이 다시 모여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엄마도 아빠도 나처럼 분명 집 문턱을 넘는 그 순간에 얼싸안고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혹시 전화를 못 들을까 봐 매일 깊이 잠들지 않으려 이제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숨. 숨이 문제였다. 그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부풀다 꺼지다 하는 것이, 도무지 내 방에서는 알 수가 없다. 닫힌 내 방문을 열고 슬픔이 들어오는 생각을 멈추지를 못했다. 악몽이 악몽을 불렀다. 꿈에서 나는 아버지의 산소 호흡기가 망가져서 울다가, 응급실의 아버지를 보고 울다가, 누군가 아프고 피가 나서 자꾸 무서워서 깼다. 의사 선생님께는 무형의 불안과 계속 싸울 때는 보이지 않아 무서웠는데, 이제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서 무서워요 하고 말씀드렸다. 약은 한 알이 더 늘었고 저녁 자기 전에 먹으면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악몽은 꾸지 않지만 아침은 무섭다. 문 밖에 나가서 얼굴들을 마주해야 안도한다.


아버지와 우스꽝스러운 아침 인사 경례를 하고, 하염없이 요리하는 아주머니의 동영상을 보는 엄마와 밤새 잠은 잘 잤는지 인사한 뒤 아버지가 식사하신 그릇들의 설거지를 한다. 커피를 끓이고 엄마의 식사를 묻고는 밥을 차려 먹는다. 씹고 삼킨다. 할 수 없는 것은 두고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균형을 맞추고 생각은 비운다. 어머니가 외출할 때에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버지와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버지는 왜 어머니와 결혼했는지, 사실 아버지와 나는 피 하나 안 섞인 남이면서 난 참 아빠를 닮았네 넋두리를 하다 끝난다. 그리고 언제나 마무리로는 ‘참 지독한 사랑이야. 엄마는 좋겠네 시집 잘 가서.’라고 하는 나의 푸념과 아버지의 멋쩍지만 세상을 다 가진 환한 미소.


1월의 마지막날에는 동네 글쓰기 모임에 오랜만에 나갔다. 모임장님이 준비해 오신 주제로 1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기로 했는데 자꾸 울음이 나서 혼났다. 아빠는 잘 지내?라는 편지의 문장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일도 알 수 없고, 오늘도 알 수 없는데 언제일지 모를 결말은 지독히 뻔해서 그 세 글자가 또 무서웠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지만 사실 이 글의 ‘너’는 실재하지 않고 상상 속에 존재할텐데. 지독히 바라는 염원 같은 거라 지금의 나로부터 이어진 일직선 상의 나와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에 건너야 할 시간과 사건의 물결을 떠올리며 편지 위의 단어 단어 힘주어 쓰며 징검다리를 놓았다. 글의 마지막 문장은 부디 모두 건강하고 제발 행복해줘. 하고 끝을 맺었다. 올해도 한 달이 지나갔고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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