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새해를 맞는 소망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아프게 해 주세요'가 된 이후로 해가 가는 게 그다지 반갑지 않다. 내 소망을 누군가 방해하려는 지 해마다 굵직굵직한 고난과 역경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그 기세가 점점 커진다는 합리적 의심이 작년엔 들었다. 이상하다. 나는 그런 걸 견딜 만큼 강해지지도 않았는데.
작년은 시작이 정말 좋아서 올해는 순탄하려나 싶었는데 아뿔싸 만 나이로 계속 아홉수였구나. 슬픔 뒤에 슬픔이 겹겹이 끊이질 않았다. 최근에는 불안이 더욱 커졌는데, 밖을 나가는 게 조금 겁이 날 정도였다. 내가 겪는 불안은 대개 끝이 없는 수평선이나 깊은 심해를 들여다보는 불안에 가까운 투명한 것이었다가 최근에는 그 테두리가 제법 또렷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문같이 아무 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뿐.
결국 새해 목표 같은 거창한 것들은 나이가 먹으니 나 자신에 대한 책망과 좌절로 돌아와서 이제는 쓸모가 없다. 교과서 중심의 자기 주도적 학습을 했던 범생이는 정답이 없는 것에 쥐약이다. 타인의 삶이 번쩍거리는 SNS는 참고할만한 자료가 못된다.
지난한 날들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날 살게 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해냈던 날들, 수고로운 일을 자처한 때, 미움보단 사랑을 택했던 순간. 새해 소감은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자는 말로 해야겠다. 여전히 매일 밤이 불안하고 가끔은 대책 없이 슬픔에 푹 잠겨들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지, 살자,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