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오브 혼돈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나는 이 절대 불변의 진리를 굳게 믿고 있다. 매일 눈을 뜨고 감을 때에 보이는 내 방의 전경에서 끊임없이 무질서함이 증가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젠장 왜 우주 진리는 질서 정연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서 미약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방에 들어올 때 살짝 실눈 뜨고 들어오고, 방을 나갈 때 아 모르겠다 하고 나가기를 며칠 해보다가 드디어 어머니에게 들켜버렸다. 이제는 도망갈 곳이 없어 점심을 먹고 틀어박혀 방정리를 시작했다.
방 안을 어지르는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추억, 두 번째는 뜨개질거리, 세 번째는 옷. 이사를 많이 한 덕분에 추억은 나에게 조금 가볍다. 버릴지 말지에 대한 잣대는 내가 일 년 후에 이걸 볼 때 이게 무엇인지 기억이 날까 안 날까. 예전에는 선물 받았던 선물 포장지 마저 곱게 접어 보관하던 때가 있었는데, 잦은 이사를 반복하고 짐을 줄여 점점 작은 방들로 이사를 하다 보니 아주 중요한 것들만 챙기게 되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까 작은 짐에도 알차게 넣어 잘 보이는 곳에 두기로 한다. 그래야 잊지 않고 내내 소중하게 즐길 수 있다. 가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잃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다. 소중한 것들은 소중한 마음도 함께 남아서 어떠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끔 없어지더라도 마음은 그대로이니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나의 아끼는 것들아 여행을 떠나렴.
두 번째가 가장 골치가 아프다. 뜨개질을 하는 사람은 뜨개질은 하지 않더라도, 혹은 끝마치지 못한 것이 많아 ‘문어발 뜨개’를 잔뜩 하고 있어도 실 욕심은 끝이 없다. 손끝에 실이 닿는 순간, 온갖 색과 촉감의 실이 다채롭게 섞인 합사실이 만든 편물을 어디선가 발견하는 순간, 그 해의 유행 뜨개가 피드에 뜬 순간 구매를 멈출 수 없다. 누가 뜨개질은 방구석 골프라 그랬는데, 그거 누가 그랬지 누가 알아버렸지 하고 뜨끔한 마음으로 사치스럽고 은밀한 취미를 등으로 둥글게 말아 감춰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했다. 정신 차려보니 뜨개질을 하는 소파 근처로 실타래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이 여럿 보인다. 도저히 이건 뜰 자신이 없어, 뜨고 나니 뭔지 모르겠어하는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얼마 전 친구와 봤던 첫 전시에서 예술이 더 이상 전시되지 않을 때에 대한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는데, 내가 뜨고 버리고 하는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무언가에서 비롯되거나 버려질 때에 그 터전을 망가뜨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세 번째는 가장 나에게 값싼 것이다. 독립의 세월 동안 많은 옷들을 철마다 샀다. 살이 쪄서인 것도 있지만 그때 좋아했던 브랜드와 즐기고 싶었던 계절들을 위해 샀다. 하지만 돈은 없어서 금방 해져버릴 것들을 싼 값에 샀던 것 같다. 어머니는 항상 좋은 옷을 오래 입을 것을 말씀하셨는데 요즘 좋은 옷들은 너무 비싸서 한 달의 취미나 즐거움들을 위한 비용을 모두 포기해야만 겨우 한벌 살 수 있을 정도이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 장바구니는 여전히 싸고 질 나쁜 것들을 좋아했다. 30대가 되면 엄마처럼 비싸고 좋은 것들을 오래 입어야지 하고 미루고 미뤘는데 어느새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은 집에 혼자 살았을지라도, 방 하나에 모든 살림을 욱여넣을 수는 없었다. 침대 프레임에 달려있는 서랍을 모두 열고 그 위에 쌓아가며 옷정리를 하다 보니 침대에 오르기 위해선 등산을 해야 했다. 외출은 한 달에 8번 내외이므로 잘 손이 안 가는 옷은 빼기로 해둔다. 이제야 서랍 문이 스르르 잘 닫혔다.
엔트로피는 오늘 내 방 안에서는 감소했다. 우주의 총합을 봤을 때 엔트로피는 증가하므로, 나의 방 대신 증가할 혼란을 떠올린다. 나비효과이다. 나는 에너지를 소진했고 조금은 깔끔해진 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우주 진리는 어쩔 수 없다. 또 금세 나는 어지르고 말겠지. 엔트로피는 증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