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오늘 돌아가는 길의 14-1 버스는 노란 오리 가족이 교통카드 단말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버스였다. 하루에 왕복 한두 번 정도, 그러니까 평균 2, 3번쯤 타는데 올해는 세 달 때쯤 병원을 거의 매일 갔으니 적어도 몇백 번은 탄 것 같다. 이 버스만큼은 14-1 중에서도 눈에 띄어서, 더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며 기사님 얼굴을 볼 때면 같은 버스여도 버스 기사님들은 늘 달라지는 것 같았다. 버스는 여름과 겨우내 나를 태우고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왕복했다. 대서와 대설을 모두 병실에서 보냈는데, 여름은 지독하게 덥더니 겨울도 이상하게 더웠다. 병실 안은 다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어 꽤 시끄러웠지만 사람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말을 하려면 숨을 모았다 멈췄다 뱉었다 해야 한다. 이 안에서 또렷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고여 있는 공기에선 환자들 특유의 오래된 냄새가 난다. 매일 병원을 가도 나는 매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수다스러웠는데, 아버지는 기침이 심해질 때면 침묵과 미소로만 나와 대화했다. 기침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단단히 여민, 숨 하나 새어 나오지 못한 이상한 미소였다. 말로 이어지지 못한 그 미소가 아버지의 조용한 대화 수단이자 나에겐 오케이 사인이었다.
아버지의 입원 기간 동안, 그러니까 몇 주 전에는 A와 헤어졌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는데, 감정이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비춰 보이는 점이 좋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꽉 찬 소리들, 눈빛들, 몸짓들. 내가 침묵을 싫어한다는 걸 A와 연애하면서 깨달았다. 마가 뜨는 순간마다 그걸 견디지 못하는 나는 마술사가 비둘기를 어딘가에서 자꾸 꺼내듯, 날 것의 말들을 쏟아냈다. 이 말들은 생각보다 앞서서, 말하는 입을 뇌가 제어조차 하지 못했고 가끔은 누가 내 입을 틀어막아 줬으면 했다. 말소리가 줄어들고 침묵이 길어지면, 마주한 얼굴에는 표정만이 남는다. 얼굴 위의 표정은 현대 미술같이 우뚝 서있다. 침묵 뒤 표정 속에 숨은 그 의도를 알지 못하면 불안해서 심장이 널을 뛰다 못해 목젖 언저리에서 쿵쾅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말이 없던 순간에 자주 A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해? 하고. 보통 듣게 되면 기억에도 남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그는 그래도 다 말해주었다. 2 주년이 지난 며칠 뒤, 사소한 다툼 중 A 가 투정 같은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대화창에 짧은 침묵이 흘렀을 때,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두렵지 않아 끝이 쉬웠다.
그래서 요즘은 계속 나 혼자 밤을 보냈다. 거실 너머 들리던 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아 고요한 적막만이 집안을 가득 채웠고, 핸드폰도 울리지 않는다. 침묵은 정보값이 없어, 또 다른 무언가에게 그 빈자리를 내어주고, 대체된 그것은 빈 틈새에 자리 잡아 몸집을 부풀리며 증폭된다. 소리의 공백에 밤의 찬 공기가 파고들었다. 공백 가운데 몸집을 키운 감정들은 커다란 진폭으로 진동한다. 저 위에서 저 아래까지 내동댕이쳐지는 진폭을 따라 마음이 휘청인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어둠이 오고, 어둠은 또 다른 공백이기에 뜬 눈으로 버티기를 택한다. 버티는 동안 남동향의 창으로 달의 일주가 잘 보여서 새벽의 달들을 만날 수도 있다. 차라리 부푸는 것들의 테두리가 뚜렷해서 볼 수 있고 또 만질 수 있다면 어딘가 깊숙한 곳에 가둬놓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 적당히 소란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귀와 눈에 담아 빈자리를 메꾼다. 창문 너머에 해가 솟아올라 아침이 되면 부모님께 문안 인사과 그날의 회진 결과를 들으며 밤새 날 괴롭힌 무형의 감정들을 소거해 간다.
기분 전환이 절실해질 때엔 몇 시간이라도 바깥나들이를 가야만 한다. 인천 밖으로 나가야 하면 보통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지난 일주일간은 대중교통을 타는 게 힘들었다. 언제나 가득 찬 플랫폼에 사람들이 브라운 운동하는 입자들 마냥 제멋대로 충돌하고 움직이면, 나는 예지력도 없는 주제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확신에 찬 마음이 든다. 영영 그 예지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사실은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자그매진 심장이 귓가에서, 가슴속에서, 목구멍에서 위험신호를 울려댄다. 그럴 때면 나는 사람들 무리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와 기둥이나 벽에 몸을 기대고 내 발끝만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잠시 사람들이 줄어드는 시기에 살금살금 움직여 조금이라도 사람이 적을 때 다시 힘을 내서 올라탄다. 지하철을 타며 느끼는 공포의 8 할은 소리이다. 소리는 다른 감각과 달리 가려지거나 멀리 있어도 나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어서 종잡을 수 없는 그 소리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모른다. 정체를 모르는 것은 해결되거나 없앨 수 없다. 아무것도 없이 조용하면 좋을 텐데 그럴 수는 없으니, 지하철을 타면 나는 귀를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채운다. 그래도 바깥소리가 들리면 귀를 두 손으로 가린다. 모든 구절과 음을 아는 익숙한 음악들만이 남아 위험 신호를 멈춘다. 어느새 내 주변의 매질은 남지 않고 오로지 나만 우두커니 남을 수 있다. 자발적 진공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