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같은 꿈
방에는 크고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효민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초점을 맞추자 익숙한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하아.”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 꿈인가? 지금 몇 시지? 팔을 들어 더듬더듬 배게 옆에 놓인 휴대폰을 찾는다. 휴대폰을 찾아 배게 안으로 손을 넣자 뾰족한 것이 손가락 끝을 찌른다. 깜짝 놀란 효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배게를 들춘다. 탁한 어둠 속에서 샤프의 메탈이 둔탁한 빛을 낸다. 휴대폰은 그 옆에 놓여있다. 지금 몇 시야? 효민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손을 내미는데 어둠 속에서 휴대폰이 밝게 켜진다. 메신저가 왔다.
내내 어두웠던 방에서 눈이 빛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효민은 눈을 깊이 감았다가 다시 떴다. 휴대폰 화면 위에 sns 메신저가 반짝인다. 가은이를 포함한 5인방의 단체 메시지방. 문교의 메시지가 반짝거린다.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눈을 깜박이고 메시지를 확인하려 휴대폰을 집어 드는데 또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표건이.
<그거 재혁이 맞지?>
효민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재혁이? 급하게 잠금해제를 하고 메신저 창에 접속한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이 시간에 깨어있단 말인가?
문교: 와. 씨바. 방금 뭐야?
표건: 그거 재혁이 맞지?
메시지를 확인하자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다. 이어서 다른 메시지가 올라온다.
가은: 누구야? 누구 꿈이야?
태호: 너희들도 지금 나랑 같은 걸 본 거야? 재혁이?
효민은 휴대폰 액정을 노려봤다.
문교: 너희 지금 다 깨어 있냐?
가은: 방금 깼어. 꿈꾸고.
표건: 그 웃기게 생긴 샤프. 효민이 거 아니냐?
효민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자판을 눌렀다.
효민: 나야. 내 꿈.
문교: 와씨. 그거 진짜였어? 이모님 사이비인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가은: 효민아 그거 언제 본 거야?
표건: 진짜 재혁이 맞는 거지?
태호: 그 여자애 뭐야?
질문이 쏟아진다. 다 답해주고 싶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일단 아는 것만이라도 말해 주자.
효민: 작년에 재혁이 실종되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나도 지금 알았어. 그 여자애는 누군지 몰라. 방금 처음 봤어.
그 후 무수히 많은 글이 올라왔지만 범인을 추정케 해주는 단서는 없었다. 아이들은 한 시간 가량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지만 포기해야했다. 질문의 대한 확실한 대답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번이 첫 번째 꿈이고 이모의 말대로라면 아직 네 번의 꿈이 남아있다. 재혁이가 이 꿈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다면 기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아이들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고 몇 시간 후 모두 벌게진 눈으로 4반에 모였다.
“나는 이렇게 꿈을 꿨어. 너희는 어떻게 꿨어?”
효민이 아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 너랑 같이. 재혁이가 그 여자아이랑 같이 서 있는 것도 봤어. 그런데 수업시작종이 울리니까 어느새 우리 반에 있더라. 난 수학시간이었어. 책상을 두리번거리니까 샤프가 있길래 그걸 잡았지.”
표건이 대답했다.
“나도 비슷해. 그 장면 나도 봤어. 아마 효민이 네 시각으로 본 것 같아. 재혁이가 교실로 들어오고 나서도 똑같아. 그런데 내 자리에 앉고 나니까 우리 반이었어.”
가은이 말했다. 나머지도 대부분 비슷한 대답이었다. 모두 효민의 시선에서 재혁이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아이는 대체 누굴까? 재혁이 보고 있던 종이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을까? 종이를 본 재혁은 왜 사색이 됐을까? 생각에 빠져 있는 아이들 너머로 다른 아이들이 분주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아. 담임 올 시간인가 보다!
효민과 문교, 표건, 태호는 “이따 보자”라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4반 교실을 빠져나왔다. 가은이네 담임은 체육선생님이라 화가 나면 성격이 불같다. 가끔 다정한 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효민은 익히 알고 있었다. 작년에 효민과 재혁의 담임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간신히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조례를 하러 교실을 향하는 박정호 선생님은 담임을 맡고 있는 4반에서 아이들이 우루루 뛰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아이들. 작년에 재혁이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이 아닌가? 장례식장에도 찾아왔었지? 담임을 맡았던 반에서 제자 한 명이 살해당하는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다.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살아생전 아이의 모습을 늘어놓기도 하고, 아직 범인에 대한 윤곽이 잡힌 것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체육교사의 눈으로 본 재혁이는 체구는 작았지만 발이 빠른 아이였는데.
“오늘 조례는 이상. 아. 정가은. 잠깐 교무실로 따라와라.”
지나가는 말로 최대한 무심하게 가은이를 교무실로 부른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네”라고 대답한다.
“무슨 일 있니?”
“네?”
“아니, 아까 조례하기 전에……. 효민이랑 나머지 아이들이 교실에서 나가길래. 그 아이들 재혁이랑 야구 하던 놈들 아니냐?”
가은은 눈을 깜박인다.
“네. 아마…… 맞을 거예요.”
“왜? 무슨 일 있어? 재혁이랑 관련된 거야?”
가은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이내 고개를 흔든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래? 그럼 가은이 너…… 혹시 그 놈들이랑 같이 야구하는 건 아니지?”
담임선생님이 웃으며 말한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은도 웃음을 짓는다.
“아니요. 그건 아니고…… 사실 얼마 전에 재혁이 집에 잠깐 다녀왔거든요. 제사…… 지낸다고.”
가은은 담임선생님도 어린 아이의 제사를 지냈다고 재혁의 어머님을 힐난할까봐 조심스레 말했다. 담임선생님은 조금 놀란 모습이기는 해도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래. 그랬구나. 나도 연락드렸었지. 지난달인가?”
담임선생님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재혁이 죽은 날. 얼마나 상심하셨을까하고.”
“네…….”
가은은 작은 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통한 표정을 짓던 담임은 앉은 자리에서 가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가봐라. 혹시 재혁이 관해서 뭐라도 들으면 선생님한테도 알려주고.”
“네.”
선생님은 큼직한 손으로 가은의 왼쪽 허벅지를 슬며시 밀었다. 이제 가보라는 것 같았다. 가은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