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호수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은 이따금 불어오는 자연 바람에는 한참 못 미친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다른 친구들은 지금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겠지.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이렇게 늘어지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라희는 오늘도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의 부탁으로 외할머니 댁에 내려 온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시골은 따분하리만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떼기 어려울 만큼 뙤약볕이 내려쬐고 있고, 집 안에서는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외할머니도 더운 낮에는 잠깐 집에 들어와 해를 피한다.
이른 새벽에 밭일을 하러 나가셨다가 조금 전에 들어오셨다.
소박한 밥상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할머니는 쪽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누워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신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풍경을 라희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라희의 부모님은 이혼을 준비하고 계신다. 지금은 두 분이 별거에 들어갔다.
일단 집 문제가 해결 돼야 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누구와 살아야 하나? 아빠? 엄마? 아니다. 혼자 살고 싶다.
아니면 다 그만두고 여기 와서 외할머니와 이렇게 함께 살까? 학교는 멀지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집에는 관심이 없는 아빠. 그만큼 더 열심히 뛰어다닌 엄마.
그렇다고 라희와 부모님 사이가 소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일주일 전, 엄마 차를 타고 이 시골로 내려오기 전까지 예감은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엄마는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재 이혼 준비 중이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까지
외할머니 집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라고.
“왜?”
“왜긴. 엄마랑 아빠 둘 다 이사를 가야하니까.”
“아니. 왜 이혼 하냐고.”
엄마는 핸들을 잡은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입을 다문 채 턱이 움직였다. 대답을 망설일 때 엄마가 하는
버릇이다. 마치 입 안에서 말들이 굴러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빠한테 여자라도 생겼어?”
내가 의외의 말을 했는지 엄마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럼? 주식하다가 말아먹었어?”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그렇게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게 문제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갈등이라고 해야 하나? 골이 점점 깊어져서.”
엄마는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네가 더 나이가 들고, 살다 보면 이해하는 날이 올 거야.”
“내가 지금은 이해 못해?”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성격차이야.”
한참을 달린 후 할머니 집이 보이자 엄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락되면 데리러 올게. 그리고 딸……, 엄마하고 같이 살 거지?”
할머니 집 뒤에는 작은 밭이 있다. 할머니 말로 작은 밭. 처음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골언어인가 싶었다. 이게 작은 밭이라면 큰 밭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 작은 밭에는 고구마가 심어져 있고, 그 옆 작은 밭에는 빨간 고추가 익어가고 있다. 항상 작은 밭이라 부르는 이 밭은 내가 하루 종일 일해도 어림도 없을 정도의
크기이다. 이 두 밭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올라 가면 산이 있다.
우리 외할머니의 엄마와 아빠가 잠들어 계신 곳. 어렸을 때 딱 한 번, 엄마를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나에게는 증조 외할머니와 증조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삼촌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때의 기억 역시 막걸리와 빨간 잠자리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물가물한 기억 끝에 엄마와 함께 호수에 갔던 일도 생각난다. 지저분한 저수지가 아니었다.
맑은 물이 고여 있는 호수. 엄마와 나는 호수 가장자리에서 손을 씻었다.
이 호수 근처에 나무가 있었는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지, 물고기가 살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맑은 호수와 엄마. 그것뿐이다.
“할머니, 여기 산에 호수 있지?”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멈춘다. 덩달아 할머니의 부채질도 멈춘다.
“예전에 어렸을 때 엄마랑 가 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호수 있겠지?”
“……월정호 말이여?”
“응? 그런 이름이었어? 엄마는 다른 이름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잉. 잉. 월평호수.”
“어!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가지 말어. 잘못되면 큰 일 나.”
나는 허리를 일으켜 자리에 앉는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린다.
“할머니. 그 호수 어디 있어?”
내 물음에 할머니도 자세를 고쳐 앉는다. 다시 부채질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라희야. 그 쪽으로 가지 말어. 잉?”
하루 종일 심심한데…. 할머니의 말과는 다르게 내일은 호수를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럼 내일은 버스타고 읍내에 나갔다 올까?”
“잉. 잉. 그려. 시간 맞춰서 가. 잉?”
“시원한 콜라나 사먹어야지.”
눈을 굴리며 대답한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시골이 더더욱 미로 같다.
눈을 돌려도 모두 똑같이 생겼다. 엄마랑 갔을 때는 호수가 금방 나오는 것 같았는데…….
역시 난 외지사람인가 보다. 여기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지금은 뒤를 돌아보아도 똑같은 풍경뿐이다.
인정해야겠다. 길을 잃은 것 같다. 매미가 우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귓가에서는 벌레들이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방향감각을 잃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선가 들었다. 산에서든 사막에서든 길을 잃으면
차라리 한 방향으로 가라고.
나무, 들풀, 돌맹이. 그리고 나무, 들풀, 돌맹이. 휴대폰의 안테나는 사라진지 오래다. 산을 내려가면 마을이 있겠지. 거기에서 전화를 빌려야겠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머리카락이 땀에 젖은 어깨에 들러붙었다. 하얀 운동화는 풀물이 들었는지 초록색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라면 풀이 자라지 않는 곳이 있을 테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바닥은 온통 풀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나무로 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한 시간쯤 걸었나. 목이 마르다. 아무래도 같은 곳을 뱅글뱅글 돌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겹겹이 싸인 나무숲을 뚫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는 살짝 비릿한 향이 감돈다.
라희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집은 못 찾더라도 호수는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곳에서 기다리면 할머니가 자신을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헤치고 앞으로 나서자 불어오는 바람에 물 향기가 실려 있다. 라희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수분을 머금은 바람은 라희의 볼과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어루만져주었다. 그렇게 십 여분가량 나무들과 숨바꼭질을 끝내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호수가 드디어 라희 앞에 나타났다. 라희는 기뻐하며 호수를 둘러봤다.
웃음을 머금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 찾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라희는 물가로 달려갔다. 기억만큼 호수가 크지는 않지만 파랗고 맑은 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수 가장자리로 다가가 손으로 물을 떴다. 시원한 물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라희는 손을 씻고, 손을 오므려 물을 떠서 팔에 문질렀다. 시원했다. 태양에 달궈진 열이 식어가고 있었다.
신었던 운동화를 벗고, 양말을 운동화 속에 넣은 후 호수 가장자리에 앉아 발을 물에 담갔다.
“읏. 차가워!”
이렇다하게 흥미로운 것도 없는데 기분이 좋았다. 호수의 물이 자신의 발가락 사이에 닿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발을 담군 채 뒤로 벌러덩 누웠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니 호수 가장자리에는 작은 풀과 이름 모를 들꽃들이 옹기종기 자라나 있었다.
라희는 그 꽃과 풀들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눈을 들어 호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나무 정령이라도 있는 걸까? 나무들은 호수를 에워싸고 있지만 들판을 경계로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천천히 상체를 세워 앉았다. 고개를 들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찬찬히 눈에 새기듯 풍경을 담았다.
파란 하늘, 초록색 나뭇잎, 이름도 모르는 작은 들꽃들, 맑은 호수.
왜 엄마는 이 멋진 곳을 자주 데리고 오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왜 가지 말라고 했을까? 의아했다.
라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놓아둔 곳으로 걸어갔다. 가방을 열어 미리 챙겨온 책과 비스킷을 꺼냈다.
할머니 집 역시 휴대폰 전파가 약했다. 엄마의 조언대로 책을 몇 권 챙겨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킷 역시 집 근처에 슈퍼마켓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 곳으로 올 때 엄마와 마트에 들러서 몇 개 사 뒀던 것이다. 라희는 엎드려 누운 채 책을 폈다. 학기 중 읽어야지 마음먹었지만 의외로 시간이 나지 않아 책장을 얼마 넘기지 못했던 책이다. 비스킷을 먹으며,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집에 돌아가더라도 할머니 댁에 종종 와야겠다. 이거 너무 좋잖아.’
부스스 상체를 일으킨다. 눈을 뜨기가 어렵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다.
‘여기가 어디지?’
라희는 억지로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주변은 어둡다. 퍼뜩 정신이 든다.
‘호수를 찾아 산을 올라왔지. 호수를 발견했는데…… 여기는?’
재빨리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핀다. 세상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달이다. 반달이 호수 한가운데 걸려있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 이리저리
살짝 살짝 움직이는 반달. 달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니! 라희는 입을 벌린 채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호수를 둘러싼 평지는 온통 노란색이다. 작고 노란 꽃이 사방에 피어있고, 달큰한 꽃향기에 정신이 아찔하다. 눈을 들자 허공에는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나뭇잎은 호수의 물에 반사되었는지 반짝인다.
깜깜한 밤하늘. 시원한 밤공기. 노란 반달과 자신을 에워싼 노란 들꽃들. 별처럼 보이는 반딧불.
라희는 풍경에 압도되어 숨이 막혔다. 무엇 하나 자신의 시선을 붙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풀벌레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물 향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 라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딧불을 보았다. 항상 책이나 영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반딧불이 이렇게 환상적이라니.
흔들리는 나뭇잎이 자신에게 손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가가서 저 나뭇잎을 만져보고 싶다.
라희는 호수 주변 평지를 둘러싼 나무를 향해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맨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신발이 어디 있지?’
발치를 두리번거리던 그때,
“토리?”
호수에 누군가가 있다. 분명한 발음으로 토리라는 말을 내 뱉은 사람.
토리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라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을 내뱉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를 보자 라희는 내뱉었던 숨을 세차게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