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이라는 나이에 임용시험에 합격한 나는 그 해에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되었다. 예비 특수교사 연수에서 여러 동료들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 2명과 같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우리들의 공통분모는 고향이 모두 같은 도시라는 점이었다. 나보다 10년 이상 젊은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는 저녁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모르겠다. 한 명은 가까운 도시에 집을 구했고 또 다른 동생과 나는 가까운 시골 읍내의 원룸에 각자 방을 구했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전셋집은 아예 없었다.
번화한 도시에 살다가 시(市)도 아닌 군(郡) 지역에 머물다 보니 퇴근 이후의 시간이 심심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발령 동기와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유일한 지인인 그 친구가 약속이 있거나 매주말마다 뽀르르 고향으로 가버리면 뭘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도 처음엔 주말마다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매주 간다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잔소리도 듣기 싫어서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하는 식으로 고향집에 돌아가는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시골 학교에 발령이 났을 때, 언니는 행여나 동생이 농촌의 노총각을 만나 사귀지 않도록 단단히 다짐을 시켰지만, 나는 과연 그럴 일이 있을까 하며 코웃음쳤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점점 외로움에 빠져들었고, 심심한 4월의 어느 주말 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노총각에게 드라이브를 시켜 달라고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평소 '난 남자에게 관심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다니는 나인데 어쩌다 그런 전화를 하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3월의 어느 평일 저녁, 행정실의 그 남자가 전화를 했다. 친구랑 같이 있는데 마침 근처라면서 잠깐 나오지 않겠냐고. 나도 그때 동생과 놀고 있었는데 당연히 나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저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 초임 발령을 받은 내가 궁금했다고, 나의 사연을 듣고 싶었을 뿐, 처음에 전화할 때는 그 어떤 저의나 흑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나에게 관심이 있고 호의를 가지고 있는 눈치였고, 다른 직원을 통해서 그런 마음을 은근슬쩍 내비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와 같은 학교의 비정규직 젊은 친구 사이에 묘한 소문이 돌았다. 둘이 사귀고 있으며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아니, 둘이 만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그리고, 나 좋아한다고 찔러본 지 얼마나 지났다고. 어처구니가 없었고 기분도 나빴다. 그 남자는 나보다 3살 어린 연하였고, 소문의 그녀는 20대였기에. 작은 학교에서는 봄바람을 타고 핑크빛 소문이 전해져왔고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외롭고 불행해진 것 같았다.
어느 저녁 단체 회식 자리에서 그 남자는 내 대각선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술을 연거푸 마셨다. 노을이 질 때 떠오르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서, 얼마 전 노을을 볼 때 내 생각이 났는데 이젠 늦었겠지... 이런 식의 얘기를 뻔뻔하게도 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바람둥이인가, 잔잔한 노처녀 마음에 왜 돌을 던지는 것인지 헷갈리면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심심한 주말,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드라이브를 제의한 것에는 소문의 그녀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는 마음도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여기저기 관광 안내를 해주며 나에게 호감을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원래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무반응이니 자신을 좋아해 주는 젊은 그녀와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나이가 33살이 되다 보니,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새어머니도 만났지만 냉대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얼마나 결혼하려는 마음이 컸던지 아파트까지 보러 다녔다고 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나와 이름마저 똑같았던 20대 그녀와 그 남자와 나는 작은 학교에서 급격히 삼각관계를 만들며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나는 한순간에 비정규직 여자의 약혼자를 뺏은 천하의 나쁜 여자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교장에게 불려가 '너 같은 것이 교사냐. 대체 학교에서 뭘 배웠냐'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다. 젊은 여자가 남자와 결혼식 날을 잡은 것도 아니었고 만난 지 몇 달이 지난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 남자에게는 심각한 핸디캡이 있었다. 어렸을 때 사고로 왼쪽 팔을 어깨에서부터 잘라내야 했고, 불편하고 좌우 균형이 맞지 않은 의수를 하고 다녔다. 눈치가 없는 나는 한참 지나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결국 젊은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물러나면서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와 결혼하지 않도록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남자와 나는 모든 걸 무마하려는 듯 결혼을 서둘렀다. 서른여섯에 처음으로 남자를 알게 된 나는 가족이 반대하면 할수록 더욱 불타올랐다. 남자를 만나보고 연애도 좀 해봐야 남자를 보는 눈도 생기고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현명하게 고를 줄도 안다. 그때 나는 나이만 많은 철부지 바보였다. 오체불만족 장애인과 결혼한 특수교사라니!
하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일종의 희생정신으로 그를 구제한 것도 아니요, 평생 그를 돌보아야겠다는 나이팅게일 같은 마음으로 결혼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와 나를 사랑해 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 남자는 나를 평생 사랑해 주고 아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는 그런 마음으로.
# Bgm. 사랑 사랑 사랑/ 김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