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하나 잡을 데가 없는

by 류다




고등학교 때 꾸었던 꿈 중에 유난히 잊히지 않는 꿈이 있다.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아래로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꿈. 우주복도 입지 않은 채로 어슴푸레한 공간에서 조금씩 자유낙하하는 내 몸은 무엇 하나 의지할 곳 없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다는 것, 발아래 닿는 단단한 지반도 없고 공기 중이나 물 가운데 지지물 없이 혼자 있다는 것은 항상 나를 두렵게 했다.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는 유형의 사람도 있지만 나는 불행히도 거기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짚라인은 평생 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굳이 도전하지 않을 영역이다. 케이블카나 곤돌라, 항공기같이 안정적으로 몸을 지지할 수 있거나 막힌 공간이라면 조금 높은 곳이라도 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물에 대한 공포도 그 못지않았다. 바다를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피서철이면 해수욕장에 가서 놀았지만, 물에 발 담그고 노는 것이지 깊은 곳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실내수영장은 어른이 돼서 친구 따라가보긴 했지만, 제대로 수영은 안 하고 물장구만 치다가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운동이란 운동은 다 좋아하지 않았기에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7년 전이었나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학생들과 시골의 소규모 워터파크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 새로 산 래시가드는 몸에 너무 붙을까 봐 넉넉한 사이즈로 샀더니 가히 보기 안쓰러웠다. 해녀 잠수복을 빌려 입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냥 여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을 걸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원래 수영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 때는 다 그런 법이다. 될 수 있으면 눈에 띄지 않고 군살을 커버할 수 있는 스타일을 찾는다. 점점 경력이 붙어 수영장 락스 물 맛 좀 봤다 싶을수록 수영복은 타이트하게, 화려하고 과감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어찌 되었건 방학을 앞두고 워터파크에 놀러 온 아이들은 준비운동을 하고 신이 나서 뛰어놀았다. 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는지 잘 살펴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 워터파크에는 작은 온탕, 수심이 낮은 풀 2개와 어른들 키 높이의 조금 깊은 풀도 안쪽에 하나 있었다. 저학년들은 대부분 낮은 풀에서 놀았다. 처음엔 물이 무서워 낮은 풀에서 놀던 아이들도 놀다 보면 점점 재미가 없어지니 하나둘씩 깊은 풀로 튜브를 들고 들어갔다. 당시에는 생존 수영교육이 없었을 때고 구명조끼라던가 이런 것도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다. 우리 반 애들은 집에서 구명조끼를 가져와서 착용하고 있었고, 낮은 수조와 온탕을 번갈아가면서 놀고 있었다. 그중에 수영을 좀 배운 아이는 깊은 곳에 가서 놀고 있었기에 나는 사진도 찍으며 양쪽을 왔다 갔다 했다.


깊은 물에서 튜브를 타고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이 앞으로 쏠리다 허공에 붕 뜨나 싶더니 물속에 곤두박질쳤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떠민 것이다.



수면이 남실남실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더니 시야가 초점이 맞지 않으면서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다. 점점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물 밖에 안 보인다. 꼬르륵꼬르륵. 숨이 턱 막히면서 사고가 정지되었다. 물을 삼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귓전에 부딪치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해독이 되지 않았고, 그저 미친 듯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을 쳤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손아귀에 잡히는 것이라곤 물 밖에 없었고, 어느 쪽으로 가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풀장이 아니라 깊은 강물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 것일까?'





다행히도 수영장엔 우리 학교 사람만 있었고 외부인은 없었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야, 수영 못하는가 보다. 건져!"


허우적거리던 내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풀사이드로 들어올려졌다. 나를 들어 올려주는 팔과 지탱해 주는 단단한 바닥의 위안. 한동안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썼다. 안 그래도 헐렁한 잠수복 같은 래시가드는 물에 젖으니 더 무겁게 느껴졌고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를 떠민 것은 우리 반 아이였다. 작고 귀여운 아이의 어디에 그런 힘과 장난기가 숨어있었을까. 내가 너무 방심했었나. 따뜻한 자쿠지에서 몸을 좀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안면을 수습한다.


수영 못하는 선생님의 접시 물에 코 박는 사고도 금세 잊혀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위는 평화롭고 다들 즐겁게 뛰어노는 소리로 가득하다. 몹시 당황스럽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남들에게는 지나가는 한 번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평상심을 회복한 것처럼 다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며 아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같은 일이 또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무방비로 서 있는 내게 누군가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다가와 내 등을 세게 밀었다. 나는 다시 한번 물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아이쿠, 같은 아이에게 똑같은 식으로 당할 줄이야! 아이가 어디선가 장난으로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장면을 보고선 따라 해 보고 싶었나 보다. 한번 해봤으면 됐지, 수영도 못하는 나를 상대로 야무지게 복습까지 할 줄이야!



처음 빠졌을 때는 영겁의 시간이 흐른 줄 알았는데, 두 번째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눈 부릅뜨고 가장자리로 기어 나왔던 것 같다. '당황하면 죽고 침착하면 산다', '한번 당한 장난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또 당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날치의 배움이라면 배움이다.






그날 이후로 주변의 수영 강좌를 알아보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발차기와 물 안에서의 호흡도 배우고 물에서 걷기도 한다. 얼굴 전체를 물 안에 넣었을 때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세면대에 얼굴 담그고 숨 내쉬기도 해보고 나름 열심히 연습했다. 그다음엔 킥판이라고 불리는 보조 부력장치인 보드를 잡고 발차기를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머리를 물에 담그면 심한 두통이 생겼고, 겁이 많은 나는 무슨 병이라도 있는지 병원에 가서 검사까지 받았다. 수영을 하지 않을 땐 전혀 생기지 않는 두통이었다. 그렇게 수영을 포기할 뻔했다가 우연하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좀 쉬다가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두통은 생기지 않았다.


물에 뜨는 것만도 한참 걸렸는데, 하면 할수록 물에서 움직이는 것이 즐거워졌다. 한동안 킥판 발차기를 계속했다. 같이 배우던 사람들은 킥판을 놓고 자유형을 시작했는데 겁쟁이인 나는 킥판을 생명줄인 듯 부여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강사님은 제발 킥판 좀 놓자고 사정을 했지만, 킥판을 놓는 순간 절벽으로 까무러치는 느낌이 나는 것을 어찌하랴. 그렇게 몇 달을 버텼다. 나중엔 부끄러워서 강좌는 안 다니고 혼자 자유 수영을 다녔다. 다니다 쉬었다를 반복하다가 거의 1년이 가까워질 무렵, 내 둔한 몸도 물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킥판을 놓게 되는 날이 왔다.



어느 해 여름, 일본에 있는 아름다운 민나섬으로 여행을 갔다. 해수욕장 성수기라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해변에는 딱 한 명의 안전요원이 있을 뿐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친구는 해변에 발 담그고 놀고 있었고, 나는 얕은 물에서 놀 거라 구명조끼도 없이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물고기를 살피고 있었다. 수영 배웠다고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잔잔한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시야에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다.


'분명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주변을 살피려고 몸을 바로 세우는데, 아뿔싸!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수영장에 갔을 때도 발이 바닥에 닿는 수심 140cm의 수영장이 내 마음의 한계였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수심의 수영장이라면 입수를 피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이 바닷물이 입으로 들어왔다. 수영장의 락스 물 맛과는 달리 짜디짠 소금물 맛이었다.




"Hhhhh.......help!!!"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당황하니 목이 콱 잠겨서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수영 좀 하는 척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당황해서 팔을 휘저으니 근처에 있던 일본 아줌마가 팔을 잡아주었다. 나는 방향을 파악하고 조용히 물 밖으로 헤엄쳐서 나왔다.



어린아이처럼 발이 닿는 수심의 수영장에서는 활개를 치지만 조금만 깊은 곳은 두려워 회피하며, 끝 간 데 없는 깊은 바다에서의 수영은 아직 넘지 못한 벽이다. 동남아 여행에서 밧줄 붙잡고, 또는 튜브를 붙잡고 시도해 봤지만 눈앞이 아찔했다. 언젠가 그 두려움도 아무렇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 넘어 산처럼 작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면 더 큰 공포가 내 앞을 막아선다. 작은 허들 하나 넘은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다음 도전을 계속할 것인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자연스럽게 물과 멀어지게 된 지금, 나의 물 공포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 Bgm. Sailing/ Rod Stew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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