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 얻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던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 다쳐서 장애인이 된 아들을 둔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듣기 싫은 소리는 별로 하지 않았다. 술 좀 적당히 마시라는 잔소리 외에는. 시골의 방앗간 집에서 자랐지만 살림이 넉넉지는 않았고, 허약한 몸 때문에 어느 정도는 보호받으며 자란 것도 같다.
남편은 제법 일찍 관운이 트여서 지방 공무원이 되었지만, 술과 여자 때문에 결혼을 위해 모은 돈은 별로 없었다. 여자의 모성 본능을 자극해서일까, 아니면 적극적인 자기표현 때문일까, 남편은 몇 번 연애도 했고 여자에게 전세자금을 빌려주고도 돌려받지 못하는 등 마음이 약했다. 나 또한 결혼할 때 학자금 대출이 천만원 남아있었는데 남편이 돈을 융통해서 갚아주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약점을 잡힌 것 마냥 남편에게 생활비를 많이 받지 못했다. 물론 나중에 차를 한 대 사주는 것으로 대신하긴 했지만.
결혼 초에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경제권을 주도하려고 싸우기도 한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결혼 전에 미리 합의를 하는 것 같지만, 남편이나 나나 경제관념은 부족했고 고집만 셌다. 나에게 돈 관리를 다 맡길 것처럼 보였던 남편은 의외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천오백만 원 촌집에서 시작해서 서민 아파트로, 평수를 조금씩 넓히다 도시의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서 살림을 불렸는데 그 대출금은 모두 내 통장에서 갚아나갔다. 남편은 자신의 마이너스 통장을 보여주며 징징거리는데 어떡하겠는가. 자신은 이사 가지 않고 그대로 살아도 괜찮은데 내가 가고 싶어서 이사 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 생각하면 첫 단추를 잘못 꿴 나 자신이 원망스럽지만, 통장을 뺏어도 카드를 만들어 결재하고 다니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생활비를 반씩 나눠서 내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계산하기 힘들다느니 핑계를 대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시골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육아를 하다 보니 늘 피곤하고 우울했다. 결혼하고서 내 삶의 질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렇게 사랑을 속삭이던 남편은 일주일에 기본 3번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 몸이 약해서 술을 이기지도 못하면서 술만 마셨다 하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끝까지 마셔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리고, 주말이든 평일 밤이든 누가 술을 마시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예스맨. 왜 결혼 후 여자의 삶은 180도 바뀌는데 남자의 생활은 그대로일까. 친구 만나고 취미 생활하고 마음대로 돈 쓰고.
내가 이런 얘기를 쫑알쫑알 대면 남자는 이런 식으로 면피했다.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니 돈 아니가." (과연 그럴까? 58살 되기 전에 퇴직하고 집 떠난다는 사람이?)
혹은 "니는 돈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노."
마치 내가 돈만 아는 속물인 듯이 취급하며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 결혼은 현실이고 애가 둘인데 돈이 중요하지 않으면 뭣이 중헌디. 생활비를 백만 원도 안 주면 그만큼 가족을 위해 시간과 정성이라도 쏟던가.
가족과는 여행을 거의 안 가면서 멀리 사는 친구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간다. 조퇴를 해서라도 2박 3일 친구와 술 마시고 논다. 내가 애들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면 '당신이 가고 싶어서 가는 거잖아' 이러면서 돈도 잘 안 보태준다. 꽃구경이라도 가고 싶어 옆구리를 찌르면 혼자 다녀오라고 하는 남의 편.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홀로 떠남을 즐기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 열이 불덩어리처럼 나고 토해도 남편은 술잔을 놓지 않았다.
"내가 간다고 애가 낫나. 좀 있어봐라."
그러곤 12시가 넘도록 안 들어온다.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아직도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둘째를 가져 배가 남산만큼 부른데 남편은 술 마시러 가서 안 들어온다. 구부리고 앉아서 큰애 머리를 감겨주기가 힘들어 큰애를 안고 울면서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기던 기억.
눈먼 사랑이 몰고 온 결혼의 현실은 이렇게 참담했다. 부모, 가족이 반대하던 결혼이라 말도 할 수 없고 말을 해도 돌아오는 소리라곤 뻔했다. 너무 힘들어 이혼하고 싶다고 친정으로 내려갔다가도 애들 때문에 각서를 쓰고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것의 반복. 각서를 쓰면 뭐 하나. 술 먹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데. 애주가 아버지에 이어 술 먹는 남자와 결혼한 내가 내 발등 찍은 거지.
'이다음에 아버지 같은 사람과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야' 다짐했건만, 운명과도 같은 이 덧없는 인생유전!
속이 다 문드러지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게 너무 억울해서 남편에게 얘기하면,
"우리 엄마는 지금껏 한평생 일하며 힘들게 살아도 한 번도 남편, 자식에게 그렇게 불평,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니는 왜 맨날 그라노."
자신의 엄마와 마누라를 비교하며 말한다. 당연하지. 나는 당신의 엄마가 아니니까.
내가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쓰거나 이렇게 내 얘기를 쓰기로 한 것도 6할은 남편 때문이지 않을까. 아이들 예쁜 말 어록을 남겨야 되는데 내 기억에는 남편의 기막힌 어록만 남아있다. 남편 흉보는 건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할지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속 시원히 하소연이라도 하면 속이 뻥 뚫릴진저. 술고래 남편을 두신 분은 나에게 동병상련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아이가 크니 조금씩 몸도 편해지고, 남편도 나이 오십이 가까워지니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술 마시면 끝장을 보는 성격은 안 변했으나 술 마시는 횟수가 일단 줄었다. 올해 한번 ‘사랑과 전쟁’을 찍고 각서를 쓰고 난 후, 12시를 통금시간으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술 마시면 시간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11시 전후로 전화를 해서 체크해야 된다. 때로는 전화를 안 받거나 자주 듣는 멘트.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러곤 아슬아슬하게 12시에 세이프하거나 살짝 시간을 넘긴다. 코로나가 창궐할 때도 전혀 몸을 사리지 않고 술 마시러 다녔는데, 밤 10시에 술집 문 닫을 때는 좋았다.
그래도 고무적인 현상은 갑자기 남편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년 전부터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첫해에 백 권 읽고, 5년째인 지금까지 통산 7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책 읽는 취향이 나와 너무 안 맞아 뭐 저런 책을 다 보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책을 빌려 읽는 건 싫어해서 중고책을 더 많이 사지만 책 구입비도 만만찮고 집은 지금 책으로 포화상태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집에 있는 책의 반의반도 다 읽기 전에 또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쌓아두는 걸 좋아한다. 심지어 남편은 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버릴 줄 모르고 쌓아두는 호더이다. 그에 비해 복잡한 집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한때는 나이가 들면 조기 퇴직해서 산에 들어가서 살겠다던 남편의 꿈이 바뀌었다. 언젠가 시골에 작은 도서관을 지어 책으로 가득 채우고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돈을 잘 모으지 못하는 남편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꿈이긴 하나 꿈꾸는 자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때가 되면 나도 가끔 커피 마시러 놀러 갈지도 모르겠다며 실실 웃어본다. 비록 오늘은 아웅다웅, 투닥투닥 일지라도.
# Bgm. 술이야/ V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