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깍두기와 어머니, 어머니

by 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 세계는 3도쯤 추워졌다. 3년 하고도 열 달이 지난 지금이 딱 그 정도다. 엄마가 췌장암인 걸 처음 알았을 때, 6개월 투병하시다 돌아가실 때, 내 세계는 비가 오고 눈보라가 휘날리고 한파가 불어닥친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출근길에 운전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가를 훔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단지 한 몇 도 정도 나를 둘러싼 세계는 조금 추워졌고 삭막해졌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어머니만큼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는 것보다 더한 쓸쓸함이다.



건강에 관심이 많고 각종 건강 보조제도 꼭꼭 챙겨 드시던 어머니였는데, 어느 날부터 소화가 안 된다고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하셨다. 팔순이 넘었으니 소화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나도 그렇다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남 3녀 중에 어머니와 같은 도시에 사는 자식은 아들이 유일한데, 조기 퇴직을 하고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방학을 맞은 나에게 어머니 모시고 복부초음파를 받아보라고 오빠가 연락을 했다. 큰 병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동네의 작은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의사가 왼쪽 복부에 뭔가 있다면서 근처의 큰 방사선과 전문 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바로 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보호자만 따로 불러서 췌장암이라고, 그것도 덩어리가 크니 초기가 아니라는 소견이 나왔다.

어머니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표정을 감추기 위해 나는 앞자리에 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눈앞이 하얘지며 주변의 풍경이 사라졌고 한 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일반 건강검진을 받으셨을 뿐, 돈을 들여 정밀 검진을 받게 해 드린 적은 많이 없었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된다고 하셨을 때도 단순한 노환이라고 치부했다. 작은 키에 4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왜소한 엄마였는데, 다리 관절 외에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서 늘 건강하시다고 생각했다. 몸도 약하고 연세가 있으셔서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무심했을까.

눈치를 챈 어머니가 자꾸 물어봤지만 솔직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기에 좀 더 검사를 해봐야 된다고 얼버무렸다. 일을 안 하는 둘째 언니가 어머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갔는데, 췌장암 3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췌장암은 발견하면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늦은 경우가 많은, 예후가 특히 좋지 않은 종양이다. 어머니는 너무 약하고 연로하셔서 다른 항암치료는 할 수 없고 몸을 좀 보하고 나서 방사선 치료는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치료를 위해서 엄마에게 알릴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치료를 시작하기까지는 시일이 좀 걸렸다. 어머니는 주변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받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아무도 서울까지 모시고 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암 초기라면 서울에 가서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병이 깊었고 서울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큰언니도 일을 해야 하기에 어머니가 올라오셔도 병원에 모시고 다닐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둘째 언니도 아들과 남편 걱정에 망설이고 있었고, 나는 직장에 매인 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나에게 원하면 휴직을 하고 서울로 어머니 모시고 가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나중에 두고두고 죄스러웠다.

누구나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라지만, 어머니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으니 누구도 앞에 나서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서울까지 모시고 갈 사람이 없다는 것에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젊었든 늙었든 죽음 앞에선 누구나 두렵다. 아무도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혼자 고통스러워하셨으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년 동안 어머니의 친구가 되었던, 그렇게 좋아하시던 텔레비전조차 켜놓지 않고 멍하니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로 둘째 언니가 대학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검사도 받고 방사선 치료도 받으러 다녔다. 나이가 들면 진행속도도 더디다고 하던데, 그렇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처음 진단받았을 때 1년은 사실 것으로 보았는데, 어머니 체력이 약해서인지 6개월밖에 살지 못하셨다. 방사선 치료도 몇 번 받고는 너무 힘들기도 하고, 암 4기로 진행되어 버려서 포기하셨다. 그리고 집에 계시다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혼자 계신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 어쩔지 걱정이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잠깐이라도 모시지 않으려고 했다. 의사가 장기간 입원은 안 된다고 했고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있던가 요양병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는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주말 중 하루는 어머니를 뵈러 가서 밤에 내려왔다. 밤 운전을 하다 사고도 나고 해서 당시에는 그것조차 힘들게 느껴졌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은 서울에 살던 큰언니였다. 절에 다니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갑자기 근처 교회의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세례를 받게 했다. 그때 같이 있었던 나에게 불교인 둘째 언니나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큰언니가 오랜만에 다시 내려와서 어머니와 있는데, 갑자기 너무 아프다고 하시더니 바로 돌아가셨다. 더 오래 고통을 당하시는 것보다 차라리 잘 된 것이라고들 위안을 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귀하게 키웠던 외아들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지 않았고, 입원 중에도 정말 두어 번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병원에 간다고 어머니가 좋아지시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는 외아들을 어머니는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아들과 며느리는 어차피 어머니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어머니의 집과 땅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음식을 잘 못 드시는 어머니를 위해 자매들은 암에 좋다는 음식이나 어머니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해서 가곤 했다. 환자용 수프 비슷한 통조림도 있었는데, 그건 맛없어서 못 드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해간 음식 중에 제일 잘 드셨던 것은 배 깍두기였다. 어머니는 평소 물김치에도 아삭하고 달콤한 배를 넣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죽만 드시면 잘 안 먹히니 배 깍두기를 드시고 싶다고 해서 고춧가루 조금만 넣어서 해갔었다. 없는 솜씨에 그거라도 좀 드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갈 때마다 챙겨 갔는데 나중엔 음식을 통 못 드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요양병원 냉장고에는 주인 잃은 배 깍두기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배로 깍두기를 담글 수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어머니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배 깍두기였다. 사과를 같이 넣고 만들기도 하는데, 달콤한 음식은 암세포의 먹이가 된다고 해서 되도록이면 덜 달게 한다고 사과는 넣지 않았다. 가을이 제철인 배. 몸에 좋은 배로 만든 배 깍두기는 이제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가끔 남편에게 당신은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며 투정 부리듯 말한다. 어머니가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부재는 참 다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가까운 가족이 죽고 장례를 치를 때, 생명이 빠져나간 주검을 본 적이 있는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움직이던 사람이 온기가 없이 뻣뻣하게 더 작아진 듯 누워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몸을 쓸어주며 고인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는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곧이어 화장을 하면 담배 몇 개비 정도의 재만 남는다. 그 주검과 재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신은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우리 곁에 어머니를 보낸 것이라고들 한다. 신의 손길로 나를 품어주시던 우리 어머니. 이제 저 먼 곳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겠지. 어느 날 나에게도 그 마지막이 닥칠 때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다 주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어머니께 그때 못한 말 한마디, 사랑합니다. 죄송하고 또 사랑합니다.



# Bgm. 양화대교/ Zion.T

# Mother of mine/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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