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서른아홉에 너를 낳았다
아파트 입구에서 태권도 도복을 입고 바쁘게 나가는 남자아이를 보았다. 7, 8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태권도 띠를 깜빡했다며 나가다가 멈칫하더니 그냥 어두운 밖으로 뛰어나간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는데 허리에 단정하게 검은 띠를 묶은 아이가 집에서 나가면서 부끄러운 듯 씩 웃는다. 밖이 어두운데 혼자 태권도장으로 가는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도복을 입은 모습에 딸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지면서 더 귀엽게 보인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엔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힘겨움이 커서 아이가 귀엽다는 것도 잘 못 느끼고 지나갔는데...
36살에 결혼해서 첫아이는 37세, 둘째는 39세에 낳았다. 40대 초반에 결혼해서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경우도 보았지만, 당시로서는 꽤 늦은 나이였고 일단 마흔이 되기 전에 결혼과 출산을 마쳤으니 미뤄둔 숙제를 마친 기분이라고나 할까.
요즘이야 결혼을 늦게 하거나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1인 세대도 무척 많아졌다. 애인도 없으면서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고 싶다고 하던 친구는 골드미스가 되었고, 독신을 고집하다 29살에 흔들렸다가 곧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었던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기르고 있으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결혼을 할 때 주변의 몇 안 되는 솔직한 친구들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쟤 성격에 잘 참고 살 수 있을까, 음식도 먹을 줄만 알지 만들 줄은 모르고 살림도 못할 것 같은데...'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입증한다.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아무 생각 없이 덜컥 결혼을 했기 때문에 2세 계획 또한 없었다. 힘닿는 데까지, 아니 생기는 대로 낳아야지 뭐. 당시 단순무식 과격함이 나를 지배했다.
원래 아기를 별로 안 좋아했다. 아이는 툭하면 떼를 쓰고 마음대로 안되면 울어버리고 계속 돌봐주어야 해서 귀찮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첫 조카 때만 해도 아이가 사랑스럽고 좋았는데, 원래도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이긴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남자아이만 둘을 낳은 작은언니는 둘째를 낳은 후 친정집에서 몇 달 산후조리를 했는데, 한창 공부를 하던 시기였는데 자꾸 놀아달라고 오니 난감했다.
"이모, 자꾸 문 잠그고 나랑 안 놀아주면 이제 이모 사랑 안 할 거야!"라고 처절하게 외치던 조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울리는 것 같다. (그 조카가 저렇게 훈남이 될 줄 알았다면 더 잘해줄 걸 그랬나?) 아이는 귀엽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것도 내 애가 아니니 더욱 힘들게만 느껴졌다.
엄마와 언니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결혼을 하고 바로 애가 생겼다. 부모님이 반대하던 결혼을 했다는 죄스러움으로 아이는 친정에서 낳지 않고 인근 도시의 병원에서 낳았다. 엉덩이가 커서 애 잘 낳겠다고 하셨던 옛날 외할머니의 예언과는 달리, 자연분만에 성공하지 못했다. 첫아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손바느질로 배냇저고리와 이불, 펠트 장난감도 만들며 아이를 기다렸지만, 예정일이 지나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결국 열흘이 지나 입원을 했다. 유도 분만 촉진제를 맞으며 하루를 기다렸는데 자궁 문이 안 열려서,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유도 분만을 하면 제왕절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3kg가 안 되었고, 여리여리하고 귀여웠다. 하지만,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걸 어찌하랴. 병원에서 가까운 산후조리원에서 조리를 하고 3개월 출산 휴가를 보낸 후, 초보 엄마보다 애를 더 잘 돌봐줄 것 같은 좋은 분을 알게 되어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했다.
아이가 하나면 형제가 없어서 나중에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곧 둘째를 생각했다. 주변에서 노산(老産)이니 빨리 둘째를 가지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첫애를 제왕절개로 낳았으니, 당연히 둘째도 제왕절개다. 큰애는 여성스러운 모습의 가녀린 아이였다면, 2살(20개월) 터울의 둘째는 눈도 부리부리하고 너무 예뻤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것이 진정 내 뱃속에서 나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감탄했지만, 아무리 예쁜 아이라고 해도 마흔이 되어가는 나이에 일하면서 애 둘을 기르다 보니 매일매일이 힘겨웠다. 남편은 아이를 예뻐했지만, 말만 앞설 뿐이었고 술로 맺은 인간관계를 더 좋아했다. 남편의 지인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어울리기도 했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집에 가서 빨래도 돌리고 애도 재우고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인간관계는 거의 남편의 친구로 시작해서 남편의 직장 동료로 끝났고, 멀리 사는 친구나 친정집 식구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그렇게 조금씩 친구들과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 또래 친구의 엄마들보다 10살은 더 나이가 많았다. 아이가 혹시 부끄러워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별로 상관은 없었다. 내가 동안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 시절 사진을 보면 그때가 훨씬 더 늙어 보이는 건 왜일까. 외모도 촌스럽고 나이도 들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삶에 여유가 없이 찌들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업주부라면 아이 친구 엄마들과 어울리는데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모르나, 직장에 다니니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도 잘 없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 전에 가정 보육을 해주셨던 도우미가 좋은 분들이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기도 했지만, 5시 퇴근 후 육아와 살림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수백수천 번 하다 보니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가고 개인적인 시간도 나고 조금 숨통이 트였다. 결혼 전 도시내기였던 나는 시골에 사는 것이 답답하였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가까운 도시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는 것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중학교 진학할 때쯤 이사를 갈까 망설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 이사를 가면 학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아이들이 적응하기도 힘들다며 도시로 이사를 갈 생각이면 빨리 가는 것이 낫다는 주변의 경험담을 듣고 큰애가 2학년 때 도시로 이사했다.
지금은 우리 가족 대부분이 도시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나중에는 시골에서 살 것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계속 시골에서 살았으면 친한 지인들과 어울려 술독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살면서 아이를 기르는 데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옹골진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끔은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의무감으로 너를 돌보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고민한 적도 있었다. 모성으로 똘똘 뭉친 것 같고 살림도 똑소리 나게 잘하는 여성을 보면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모성이 부족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것일까.
아이가 어릴 때는 피곤함 때문에 마음에 있는 사랑을 많이 표현하지 못했다. 사랑보다 깊은 피로함에 호되게 나무라기도 했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남편은 더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 우리는 왜 그랬을까. 보고 자란 게 그거밖에 없어서? 얼마 전 남편에게 물어보니, 자신을 무시하는 아내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를 애한테 풀었다고 하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린 언제가 되면 어른이 될까.
아이들이 크면서 여드름이 돋을 무렵이면 부모의 몸은 덜 힘들고 마음이 힘든 시기가 온다. 자라면서 크고 작은 부딪힘도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잘 커 주어서 고맙다. 아이들이 너무 집순이들이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부모 또한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이제 '내가 정말 너희를 사랑하는가'라는 의문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함께 한 시간만큼 두터운 정이 쌓였다. 내 품에 안겨 우유를 먹고 내 등에 기대어 잠을 잘 때만큼의 살가운 정은 아닐지라도, 이제 성숙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그저 바라는 거라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부모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뿐이다. 이 노쇠한 몸이 십 년은 더 버틸 수 있도록, 신이 내게 맡겨준 이 사랑의 선물을 끝까지 잘 돌볼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부여잡고 되뇌어본다.
오늘 제가 아이들의 밥을 굶기지 않게 하옵시고 다만 지각에서 구하소서.
# Bgm. 행복을 주는 사람/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