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을 막 끝낸 후, 글벗들이 과제로 나를 표현한 형용사.
이런 거 좀 흥미롭다. 3주간 잠깐 알게된 사람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 수 있겠냐만은 느낌이란 게 있지 않나.
섬세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잔잔한 물처럼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이 자연스럽다
점점 빠져드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다
내공이 강하다
섬세하며 유쾌하다
아나운서같은 차분한 목소리 덕분에 자연스럽게 집중모드, 듣다보면 소녀같은 수줍음이 느껴진다
여유있게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세심함
연못 위 수려한 연꽃처럼 은은한 매력과 향기를 지님
아니, 다들 이렇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해주시다니. 형용사란 미사여구의 다른 말이었던가?
형용사라고 하면 '한 낱말 단어'만 생각하던 나와는 달리, 다들 정성을 다해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섬세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섬세하다기보다는 예민하고 소심한 편인 것 같다. 이거나 그거나 똑같은가. 타고난 기질이 그러한 걸 어쩌랴.
좋은 쪽으로 끌고 가면 글쓰기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는 건 고달프다. 의외로 무관심하고 둔감한 부분도 있는데, 털털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 부러울 때도 많다. 하지만, 나이 오십이 넘으면 그래도 자신에 대해 강점이든 약점이든 받아들이게 되는 때지. 강점이 때론 약점이 되고 약점이 강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이웃님의 '아나운서'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여고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도 책 읽을 때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종종 들었고, 애들이 성우를 하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중 3때 친했던 친구와 같은 여고에 들어갔고, 우연찮게 같이 교내 방송반 시험을 쳤다. 나는 아나운서로, 친구는 PD로.
아나운서는 간단한 자기소개서 정도의 글쓰기와 마이크 앞에서 대본을 보고 방송 멘트를 읽는 테스트를 받았다. 마이크에 익숙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과도한 긴장 때문에 큐 싸인이 떨어지고도 바로 멘트를 읽지 못하고 몇 초간 얼어있다가 대본을 읽었다. 선배가 긴장을 풀라고 친절한 말을 해줬던 것 같은데, 방송부 아나운서가 목소리만 좋다고 하는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PD는 2차도 작문 테스트를 했던 것 같은데, 책을 좋아하던 그 친구와 나는 보기좋게 떨어졌다. 신입생 중 아나운서로 뽑힌 아이는 샤프한 얼굴에 아버지가 지역 방송국에 근무한다는 소문이 돌자, 친구는 실력과 상관없이 떨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나운서로 뽑힌 친구의 아버님이 나중에 학교 방송부 연수라던가 여러 가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하니 오히려 잘 되었지 뭔가. 나는 실수도 했고 앞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별 미련은 없었다. 성우라는 것이 목소리 연기자인데 연기가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성우가 되어야겠다는 확실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거짓말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살면서 특별히 목소리 덕을 본 것 같지는 않다. 간혹 얼굴을 모르는 상태로 목소리만 듣고는 나를 훨씬 젊게 생각하는 경우는 있었다. 학부모 전화 상담을 먼저 한 후 나중에 직접 대면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있으시네요.'라는 솔직한 말까지 들었으니 목소리 덕분에 덕을 봤다고 해야하나 손해를 봤다고 해야되나.
'치명적인 매력'이라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일화도 있다. 남편과 불꽃같이 짧은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는데, 30대 중반에 초임 발령을 받아서 시골 학교로 온 나를 보고 남편은 '어떻게 된 인생인지'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했던 남편의 오랜 단짝 친구 부부의 물음에 남편은 그냥 나의 말로 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에 반했다고 술김에 대답을 했다. 국어선생님인 그 친구의 아내는 그 이후로 한동안 나를 표현할 때 '치명적인 매력'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작은 키의 평범한 외모, 그 어디에 치명적인 매력이 담겨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인연을 만나게 될 때는 누구나 콩깍지가 씌이는 법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사랑을 만나게 된 그 때처럼.
# Bgm. Toxic/ Britney Spears
착각의 늪/ 박경림
#학창시절추억 #치명적인매력 #콩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