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것'을 미래의 지향점으로 삼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무렵, 전에 읽었던 '열일곱에서 스물다섯까지: 여자편(절판됨)'라는 책을 다시 꺼냈다. 책에서 질문하는 바를 빈칸에 적으면서 진로 설계를 할 수 있는 노트형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장점을 종이에 쭉 적으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점점 범위를 좁혀 나갔다.
당시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성당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수녀님이 된 성당 친구와 보육원, 장애시설 등에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하고,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성당 동생의 권유로 특수교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수능을 치기는 어려웠고, 수능을 친다고 하더라도 커트라인이 높은 '특수교육과'에 합격할 자신도 없었다. 시간도 아끼고 학생 때 영어를 좋아했다는 그 자신감 하나로 편입 영어시험 준비를 시작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전형은 대학 성적과 영어시험, 면접이었는데 특수교육과 편입의 문은 너무나 좁았다. 편입생을 안 뽑는 학기도 있었고 많게는 1-4명 뽑을 때도 있었다.
천주교 피정(단기간의 종교적 수련)을 가서 면담을 한 수녀님의 말씀이 아직도 아프게 기억에 남아있다. 시험도 어렵고 그 나이에 모아둔 돈도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몇 년간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대책이 없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겉으로는 표현을 못 해도 주변의 사람들이 엇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다른 대안은 없었고 간절함이 가득했다. 비염으로 도서관 책상에 휴지로 산을 만들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편입영어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했다. 마음이 약해질 때는 합격 수기를 프린트해서 되풀이해서 읽기도 했다.
결국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편입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3학년으로 편입했으니 대학 1학년에서 신입생으로 시작한 것과 같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아버지의 눈칫밥을 먹으며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도서관에 출퇴근하면서 공부한 보람이 있었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34살이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불안정했던 편입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대학교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나갈 수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가야 할 길이 분명히 정해지니 학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편입생에 대한 기존 학생들의 텃세도 있었지만, 함께 합격한 3명의 편입 동기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언니, 호주 워홀 다녀온 동생, 영어 강사였던 편입 동기 중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게 나였다. 이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편입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했다.
형편이 어려워서 방학 때 백화점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던 생각이 난다. 매대의 가방, 지갑을 팔거나 양산을 팔기도 했는데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에 물건을 판매하는 화술에 능하지 못해 공부가 더 쉽게 느껴졌다. 중고등학교 때 한 직업적성검사에 판매직, 서비스직이 제일 높게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학비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이미 퇴직하신 아버지의 구박을 받으며 용돈을 타썼다. 그러니 돈이 없다고,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꿈의 실현을 망설이거나 미루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원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꿈은 이루어진다.
다소 여유로웠던 3학년 때와는 달리, 4학년부터는 몹시 바빠졌다. 1학기까지 최대한 많은 학점을 따고 2학기에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본격적인 임용시험 준비를 병행했다. 전부터 기억력과 암기력은 뛰어나서 교육과정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편입 동기, 선배로 이루어진 드림팀이 아니었다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임용 시험에 합격하긴 버거웠을 것이다. 다행히도 임용 재수는 하지 않고 한 번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 엄마와 나는 둘이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그날이 내 생애 최고로 기뻤던 날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았고, 앞으로 걱정 없이 밝은 미래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 Bgm. It ain't over till it's over/ Lenny Kravitz
#그때로돌아갈수있다면 #늦깎이 #늦지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