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을 찾아서

by 류다




보통 아홉수에 이르면 다음 해에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에 불안해지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에 빠지기도 한다. 독신을 선언했던 나 또한 스물아홉이 돼서 처음으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부터 선을 보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변해서 선을 보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속칭 '마담 뚜'라고도 하는 중매쟁이가 있었다. 휴일 낮, 호텔 커피숍에서 중매쟁이가 결혼을 하려는 남자와 여자를 소개해 준다. 어머니나 가족이 따라나왔다가 얼굴 정도 보고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같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전에 대충 나이, 집안이나 직업, 학벌 등의 정보를 알려준다. 당시 신생 결혼정보업체도 있었으나, 엄마는 잘 아는 중매쟁이를 통해서 선을 보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셨다.


남들처럼 제때 대학을 다니며 미팅도 하고 소개팅도 했더라면 선을 본다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거부감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 되도록 연애는커녕 미팅 한번 안 해봤으니 남자에 대해 뭘 알았겠나. 짝사랑에 애태우며 눈물 흘리고 편지도 써봤지만, 연애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새로 산 옷을 입고 어색한 표정으로 묻는 말에만 답하고 앉았으니 결혼도 쉽지 않았다. 나를 좋다고 한 사람은 6명의 여자 형제가 있는 7남매의 장남이거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뿐이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서울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남자와 두세 번 만나게 되었다. 선이란 건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몇 번 만나고 마음에 들면 일사천리로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 남자는 만날 땐 얘기도 잘하고 괜찮은데, 경상도 남자라 그런지 전화를 잘 안했다. 결혼할 생각은 있다고 하면서도 맨날 당구만 치고 전화도 안 하고,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오해가 불거져 결국 싸우고 헤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생각도 접었다. 선을 통해서 결혼을 한다는 게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었고, 거기에는 기본적인 외모와 성격도 중요하지만 결국 조건을 보고 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선을 통해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이 충분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을 때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결혼 시장에서 별로 내세울 만한 게 없는 29살 노처녀는 자신의 이상에 맞는 짝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이 약해지면 종교를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내 나이 서른의 어느 날이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종교를 부정하던 내가 갑자기 성당에 가고 싶어졌다. 그 때 길거리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며 가끔씩 전화를 하시던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전화번호를 적어준 나자신을 원망하며 차갑게 전화를 끊지 않았던가. 그분도 더 이상의 선교를 포기하려던 찰나, 내가 전화를 드려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성당은 바로 다닐 수 있지만 6개월 정도 교리 공부를 하고 나서 영세를 받아야 천주교 신자가 된다. 세례를 받고 청년부에 소속되어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매주 하는 기도 모임에도 참여했다.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2차 주회를 한답시고 술도 마시고 간혹 성지 순례도 함께 다녔다. 수도자를 꿈꾸며 성소 모임에 다니는 동생들의 권유로 같이 다니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부르심은 없었다. 그래도 처음 느껴보는 소속감과 마음의 평화. 성당 활동은 재미있었고 신앙 생활로 이전과는 달라진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십 대를 거쳐 삼십 대 초반이 되어서도 나는 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과연 어떤 것인지 매 순간 고민했고, 그 무렵 그 답을 단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것"


"인류가 쌓아올린 여러 가지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예술을 느끼고

영적인 성장을 거듭해 진리를 깨닫는 것"


이렇게 말하면 이 무슨 거창한 답변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진지했던 나는 행동보다는 생각이 앞서는 타입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고 결론을 내렸다. 단순하게 보면 진선미를 지향하는 것이다.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노트에 꾹꾹 눌러 적으며, 이렇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고 진심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이후로 정말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는지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삶의 진리와는 멀어져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자신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룬 후 배움에도 정진에도 게을러지지 않았던가. 그래도 책을 읽고 꿈을 꾸고, 지금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멈추지 않고 조금씩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에 의미를 찾는다.



# Bgm. 길/ god

https://youtu.be/yFdo9R688tY



#결혼은아무나하나 #삶의목표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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