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봄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날이 있다.
양광모 시인의 ‘가장 넓은 길’이라는 시가 있다.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눈을 치우다 보면/새벽과 함께/길이 나타날 것이다/가장 넓은 길은/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건축학과생이라면 한 번쯤은 휴학에 관한 고찰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3학년 말 즈음부터 휴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휴학은 단지 쉬는 것만은 아니다. 육체적으로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해당될 수 있지만, ‘학교에서 설계를 하는 나’의 휴식인 셈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들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나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그 이유는 하려고 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당시 하고 있는 설계에 회의감을 느꼈고, 매일매일 울다시피 하며 4학년 1학기 설계를 했다. 휴학을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 설계 자체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휴학을 해서 그 기간이 의미 있도록 하는 활동들을 단 하나라도 실행할 용기도 없었다. 한마디로 계획이 없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키우는 강아지마저 부러울 때도 많았으니, 상태가 심각했나 보다)
일반적인 과제를 하고, 마감에 쫓기듯이 끝없이 모형을 만들고 도면을 치는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설계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해결’ 해야 설계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버려도 되는 생각까지 모두 안고 가다 보니 마감 때는 부담감과 긴장감만이 나를 짓눌렀다. 마치 수학문제 풀듯이 설계를 진행했고 문제는 풀리는 듯했지만 더 빠르고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휴학 버튼을 누르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중간 마감까지 했는데, 중도 휴학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살아가면서 마주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라고 믿기에는 ‘나’를 구성하는 데에 상당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도, 사랑들도 그렇다. 모든 것은 떠나가고, 없어지며, 반복되고, 발현된다. 세상이 돌아가는 진리 속에 나는 없었음을 깨달으며,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는 걸 꽤 늦은 시간에 알아버렸다. 눈보라 속에 서 있는 것 같았고 주변의 마을은커녕 집 한 채도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다시 일어서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우선은 내 앞의 눈을 치우기로 했다. 넓은 길이 아니어도 좁은 길이라도 찾고자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4학년 2학기, 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눈을 치우며 맞는 햇살을 느껴보고 싶다. 조금은 더 멀리 쳐다보고 싶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우선은 매일의 사소한 것들에 눈을 돌려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시간을 내어’ 만들고, 즐기기로 했다. 건축을 향한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 길을 찾는 방법은 어쩌면 건축 안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매일의 생활을 하며 이전엔 잘 찾지 못했던 나를 찾아간다. 노래들을 들으러 콘서트장에 가서 라이브 음악을 듣기도 하고, 1시간 30분 거리의 카페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이면 친구랑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전시회에 가서 새로운 시선을 얻기도 했다.
낯선 거리를 일부러 걸으며 길 위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태도가 설계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 같다.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고 설계를 못 하고, 안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새롭고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결국, 건축을 잘하고 싶은 이유도,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매일의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