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sium

네 번째 봄

by 새봄

4학년 1학기 최종마감 이틀 전, 메모장을 켰다.


'당신은 리모델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4-1학기에 진행하는 설계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시사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리모델링이란, 기존의 것을 ’새것으로 보이게‘고치는 것이다. 집을 ’리모델링‘해달라고 하면, 본래 연식이 되어 보이는 집과 가구들은 어느 새 몰라보게 새 것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리모델링을 하면 건물을 새로 짓는 것 보다 전체적인 비용이 적게 들긴 하지만 우리는 리모델링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스크린샷 2025-06-05 114906.png 사이트 플랜과 분석


진행한 사이트는 서울시 강서구에 있는 염강초등학교로, 서울에서 가장 먼저 폐교된 학교 중 한 곳이다. 리모델링 설계를 하기 전에 단지 과제로만 이 건물 또는 이 구역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가끔은 과제를 해도 ‘왜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걸까..?’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가 가장 어려운 경우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가장 어려운 경우는 아니었다. 조사를 해 보니, 이 학교의 폐교 원인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단순한 초등학생 수 감소’ 가 아닌 ‘원도심의 인구공동화 현상’으로 해석하였다. 옆에 있는 마곡 신도시에 사람이 몰리며 학생의 양극화와 교육의 질 등이 차이가 나버린 것이었다. 학생 수도 당연히 줄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의 양극화다. 흔히 학교나 학원 등의 학생이 살기에 좋은 인프라가 있는 학군지 주변의 학교는 학생이 많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또한 주목했던 점은 2000년대에 염강초가 학교에 문화 거리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염강초는 강서구청의 지원을 받은 학교 안에 어린이 문화거리를 만들어 시와 음악, 꽃과 그림 등으로 어린이들을 반겼다. 운동장과 그 주변을 녹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보였다. 폐교 후 이곳은 ‘여명학교’ 라는, 탈북민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바뀌었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교육청 인가를 받은 탈북 청소년 중·고등학교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과 중구 명동의 상가 건물을 거쳐서, 2019년 은평구에 부지를 매입해 학교 건물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2020년 폐교한 서울 강서구 염강초등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학습 공간도 넓어졌고 운동장도 있어 학생들 반응이 좋지만 2026년 2월 계약이 만료되면 이곳마저 떠나야 한다. 여명학교는 주변의 요인 등으로 인해 탈북 청소년들의 둥지 역할을 완전히 하진 못하고 있었다.


염강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 그리고 여명학교의 탈북민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전혀 다른 시설로 바뀌어버린다면,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터전마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기존 시설의 목표를 계승하거나, 유사한 성격의 프로그램을 포함한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리모델링의 방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떠난 학생들로 인해 원도심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동시에 배움을 갈망하는 탈북 청소년들의 열망은 여전히 강하다. 이들이 경계 없이 예술적으로 배움을 실현할 수 있는 문화 공간, 그리고 ‘배움’이라는 요소를 중심에 둔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강서구에는 마곡의 서울식물원과 LG아트센터를 제외하면 뚜렷한 문화 공간이 드물며, 특히 학생들을 위한 전용 문화 공간은 거의 전무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나는 기존의 교육 시설을 문화와 배움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도시화의 현실 속 학교라는 프로그램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스크린샷 2025-06-05 115134.png 문화적 컨셉


기존의 학교로 출입하는 정문엔 12m의 긴 도로와 접해 있었다. 가로로 긴 평면인 학교는 3곳의 진입로가 있었는데 가운데의 진입로 즉 로비 부분이 도로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각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 정문을 들어와 운동장 쪽으로 꺾어 걷다 보면 그제서야 로비 부분이 나왔다. 로비의 중심 공간성이 부족했고,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복도와 교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등학교의 모습과 유사하다. 긴 복도에 교실들이 주르륵 붙어 있는 구조였다. 본관은 4층까지 있었고, 신관은 3층까지 있었으나 신관은 보안상 들어가지 못했다. 교수님께서는 본관만 리모델링하고, 신관과 체육관은 신축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스크린샷 2025-06-05 115545.png 1층 평면도



체험형 전시관 (현재 5학년 졸업작품의 프로그램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을 크게 4가지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관찰 ->탐구 및 발견->적용->전달 이라는 시퀀스를 거쳐 하나의 전시 프로그램으로 기능하도록 하였다. 관찰 구역에서는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정해진 직선 동선대로 정보를 얻는다. 탐구 및 발견 프로그램에서는 테마별 체험구역들을 나누어, 선택형 자유동선대로 전시를 관람한다. 적용 부분은 미디어 아트 부분으로, 자신이 한 작업을 다른 관람자와 공유하며, 큰 규모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체육관 시설을 두어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마지막 구역인 전달구역에서는 어린이들의 관람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며 공간이 아예 끝나고 로비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공간은 로비를 중심으로 어린이 체험형 전시존, 전시 워크숍 공간, 야외공간 (아트 파크와 야영장), 부가시설인 아트샵과 라운지 등으로 구성된다. 우선은 학교와 도로를 막고 있던 담장을 허물었다. 또한 긴 대지의 특성상 도로와의 정면성을 확보하고자 도로를 향한 사선의 입구를 두었다. 주 도로에서 로비까지 가는 과정 중간중간에 입면으로 전시 복도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인 중정이 나온다. 쉴 곳이 없었던 대지 주변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본 건물의 야외 및 실내 공간 일부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았다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걸어갈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상설 전시관은 기존 학교와 이 부지의 역사를 기록해 두어 구역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했다.


로비의 양 옆에는 체험형 전시실들이 위치해 있다. 기존 슬라브의 활용으로 다양한 레벨 차이를 주고자 하였다. 왼쪽과 오른쪽 전시장의 레벨이 다르며, 기존의 3-4m라는 부족한 층고를 확보하기 위해 슬라브를 오픈하여 약 8m정도의 층고를 확보하였다. 기존 레벨을 반영한 새로운 레벨들을 생성하고, 다양한 높이의 레벨을 잇는 램프를 기존 복도 자리에 두었다. 학교의 복도 공간이 전시 동선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만들고 싶었다.

그 외에도, 옛 본관과 체육관을 잇는 다리 구역 밑에는 선큰이 있어 지하로의 빛을 확보하고, 옛 체육관 위치 지하의 전시 워크숍 공간과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 본관과도 연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전시실 중간중간에는 야외 공간과 보이드 등이 교차적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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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06-05 115750.png 2,3,4층 도면


재료의 측면에서는 일부 구역들에 기존 학교의 적벽돌을 재사용하였다. 이와 함께 콘크리트와 복층유리 등으로 다양한 입면의 구성을 하고자 하였다. 딱 하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기존의 구조였다. 로비에서 뻥 뚫리는 공간감을 주기 위해 기존의 기둥, 보 등을 모두 삭제한 채로 크리틱에 가져간 적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구조상 모두 삭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보를 몇 개만 없애는 것 말고 딱히 대안은 얻지 못해 그런 종류의 공간감은 연출하지 못했다. 지금의 시선으로 그 곳을 본다면, 더욱 괜찮은 구조상의 아이디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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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모듈의 결합과 구성’ 이다. 그 당시 나는 학교의 모듈에 관심이 없었다. 몇몇 친구들은 모듈을 활용한 구성안을 가져왔었던 기억이 있는데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런 구성을 전시나 프로그램에 활용하지 못했던 것 또한 아쉬웠다. 모듈을 발전시켜 공간 이곳저곳에 넣고 다양한 종류의 전시 프로그램과 연계시켰다면 더더욱 재미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2000년대 초반, 국책사업에 있어서 개발과 보전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보전보다는 개발을 선호하는 정부의 태도를, 일부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학자들을 중심으로 ’신개발주의‘라고 명명하여 비판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보전과 환경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새로운 개발을 부추기는 모순적인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필자가 직접 확인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한국은 개발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토건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옛것과 새것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리모델링의 ’RE‘는 기존의 건물을 재해석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재구성과 재해석이 리모델링에서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건물은 특성상 시간이 지나며 노후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건물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건 간에 물리적인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다.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사회에 견고히 서 있는 건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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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그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입면의 재료들로, 누군가는 평면 공간의 다변화로, 또 다른 누군가는 단면을 새롭게 바라보며 흘러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건물이 지켜온 과거, 있어줄 미래, 그리고 지금 현재를 포괄하는 공간적인 요소를 만들고 지키고 재구성하는 행위. 바로 그것이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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