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을
세상이 변해 갈 때 같이 닮아 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신해철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중에서 >
신해철님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들었던 2021년의 어느 봄날이 생각난다. 새 학기를 맞아 학생도 교사인 나도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많은 피로감을 느끼던 봄. 눈부시게 밝은 햇살과 극렬히 대비되었던 마음 상태가 어쩐지 너무 처량해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가득 뿜어져 나왔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라는 가사가 유독 마음속에 내리꽂혔다. 매일 오가는 이 교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일까?... 참 많이도 마음속에서 맴돌았던 질문이었다.
10대와 20대에 충분히 했었어야 했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해보지 않고 들어온 교직 사회는 18년을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에도 내내 힘겨웠다. 어느 날은 학생들이, 어느 날은 학부모님들이, 또 어느 날은 관리자가,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동료교사가 나를 힘들게 했다. 교사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강조되는 것 같은데 사회적인 평가는 곤두박질치는 분위기가 답답했다. 내 스스로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싶은데 눈치를 보게 되고, 대우에 비해 요구되는 것들이 많다는 자괴감에 스스로 무너졌다.
하루 8시간, 최소 30년을 꼬박 교실에서 머물러야 하는데 그 당시 15년이 넘는 경력에도 나는 늘 힘에 부쳤다.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야 하는데 그저 힘들어하는 내 스스로가 약해 보여 싫었다. 아이를 책임져야 할 부모이기에 생계형 직장인으로서 과감하게 그만둘 용기도 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마흔이 되자 무얼 다시 해보고자 하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어떤 것도 나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 2022년 2월 췌장에 2cm가 넘는 낭종을 발견하고 건강검진에서 이곳저곳 아픈 곳이 발견되었다. 불안장애가 심해지면서 쉬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에 따라 6개월 휴직을 하게 되었다. 육아휴직 6개월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쉬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학교를 잠시 떠나 휴직기간 동안 조용히 도서관에 앉아 학교를 생각하니 이상하게 전혀 그리울 것 같지 않았던 그 공간이 그리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쩐지 과하고 쑥스럽지만 하여간 마음속에 늘 맴돌았다. 어차피 떠날 수 없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곳의 즐거운 점을 찾아보자 그렇게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그러니 고마운 것들이 신기하게 하나둘씩 보였다. 물론 나는 지금도 늘 마음이 힘들고 자질이 없음을 매일 한탄한다. 그리고 혹시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힘들었던 순간보다는 즐거웠던 순간들을 가슴에 안고 떠나고 싶었다.
이 글은 지난 18년동안 교직생활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 시간동안 나는 행복하기도 그리고 힘에 부치기도 했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남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교사 성장기록으로서 이 책은 나의 고민과 성장을 담고 있다. 다양한 사람이 모인 교실에서의 일들이 때로는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 같아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고 함께 이야기하며 성장해 나가고 싶다. 교직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고민했다. 좋은 교사의 모습은 이 시대의 참다운 어른의 모습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바라봐 주고, 그 성장을 응원하며, 그 자체의 귀함을 알아봐 주는 것이 좋은 교사라고 믿는다.
그리고 글을 쓰며 함께 일하는 이 땅의 모든 동료 교사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전과 다르게 훨씬 다정해졌다. 이 책은 나처럼 힘겨워했던 동료 교사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위로와도 같다. 연대의 힘을 느끼며 흔들리는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과 교사에게 격려와 응원을 주고 싶다. 그리고 희망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사는 교사들이 많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싶은 소망도 담긴 글이다. 그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직업인으로서 힘겨워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직업인은 없다고... 그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그 과정이 멋진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러기에 초등학교는 모두에게 소중한 장소이다. 초등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애틋한 부모의 마음을 한번 더 헤아리며 전에 없이 인자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글을 시작한다. <참 괜찮은 태도/박지현>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들 하나하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질 테고 그것이 곧 나중에 나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모습이 될 것이다.’
먼 미래 내 무덤 앞에서 나를 추억할 때 나를 사랑하는 가족, 내 딸에게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꾸준히 가꾸어가고, 인생을 사랑하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