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부서에 새로운 사람들까지, 적응해야할 것들이 잔뜩있었다. 오랜만에 처음이라는 것에 스며들기위해 스스로를 쪼개고 녹이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어느덧 4월, 봄이었다.
가을에 태어난 조이가 맞이하는 첫 봄. 태어난지도 어느덧 6개월이 다 되어 이제는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려 눈맞춤도 할줄 알게 된 아기가 되었다.
아침에 담요를 털다보니 집 앞에 있는 하천 옆으로 쭉 뻗은 산책길을 따라 벚꽃이 만개해있었다. 영하의 강추위와 새하얀 눈송이, 그리고 그늘 한 점 만들지 못하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새삼 알록달록한 봄꽃들을 보며 무척이나 그리워했던 무언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간단히 아점을 해치우고 오랜만에 유모차를 끌고 동네 산책을 나왔다. 따스한 봄햇살은 언제 겨울이었냐는듯 포근했다.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여유. 주말이 아니면 좀처럼 없을 시간이라는 생각에 호흡 한 번에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청량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에는 평소보다도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있었는데, 알고보니 여기가 벚꽃 명소로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마주 지나는 대학생 무리가 서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주며 연신 다양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해보면 이사를 오기 전엔 벚꽃나무는 더 많았지만 만개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다. 그저 길을 따라 듬성듬성 피어있는 작은 벚나무들이 봄이라는 것만 알려줄 뿐이었다. 하지만 이사를 온 여기는 꽤나 오래된 곳으로 나이가 든 도시만큼 오래된 커다란 벚나무들이 잔뜩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아래 뛰놀던 아이들이 나무를 올려다보며 좋아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솜사탕을 보고 발을 동동거리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유모차 안에서 조이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직 벚꽃이라는 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시절. 이렇게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살랑거리는 바람에 멈춰서서 아내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고 사진도 찍고 벚나무 아래서 깊이 잠든 조이도 잔뜩 찍었다. 이래저래 고된 나날 속에서도 세상 편한 표정을 하고 잠든 조이를 보면 무심코 웃게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고 아기울음소리로 가득찬 새벽을 버틸 수 있는 것이겠지.
가끔 뜬금없이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특히 아기가 태어나고부터 더욱 그 질문을 자주 듣는다. 물론 행복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그건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그 전에도 충분히 행복했다. 다만 행복은 언제나 순간이기에, 매순간 새로운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만들어두었을 뿐이다. 그건 지금에 와서 돌아보더라도 정말 늦지않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려다 본 하늘과 나 사이에 풍성하게 벚꽃다발을 쥔 채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뻗은 벚나무가지.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몇배는 더 오래되었을 그 나무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나이테를 조금씩 두텁게 쌓아왔을것이다. 수십번 어쩌면 수백번 피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준 행복만큼 견고하게 여기 서서 우리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테지. 내년 봄에도, 그 다음 봄에도 하루 쯤은 시간을 내서 조이를 데리고 이 벚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이 벚꽃이 다 떨어질 즈음에는 여기저기서 학년 첫 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된다는 게 떠올랐다. 학생이었던 시절이 까마득한데도 이런게 떠오르는 걸 보면 오랜세월 지속해온 관성이라는 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