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키는 일, 오해를 삼키는 일.
검푸른 비가 떨어진다. 빗물은 고일 틈 없이 아스팔트에 차오르고 엉겁결에 하수도의 오물을 게워내었다. 입술과 잇속에서 물려졌던 수많은 그을음들이 다시금 먹빛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다. 눈에 핏발을 세운 이들이 우의를 둘러쓰고 몰려있다. 꼭 물새들처럼 보인다. 빙글거리며 빗물이 유난히 고인 한 구간에 선다. 희뿌연 기포를 내며 막힌 구간이 해소된다. 경쾌한 순간이다.
비를 맞기엔 아직 날이 무르익지 않았다. 비는 가슴을 먹먹하게 적시고, 무게를 더하며 이윽고 보드라운 것들을 차게 굳힌다. 반복 끝에 굳은살이 배고, 유연한 부분을 헐어놓았다. 가슴께에 걸린 것들을 모조로 쏟아내고 나면 개운할 것 같지만 죄스러운 기분, 잡스러운 기분들이 나를 만들었다. 나의 죄와 때, 갖은 위선들. 거꾸로 지은 저열한 기쁨을 덜어내어도 그것이 내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천착은 또 다른 위선이 된다. 귓전으로 비난조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비겁자. 위선자. 겁쟁이. 벙어리.
말을 삼키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말이 모가지에 걸렸을 때에 사람이 그렇게 우습게 보일 수가 없다. 더듬거리고,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며 손과 머리를 떤다. 그리고 이윽고 멍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안심될 수가 없다. 누군가가 앞에 있었다면 그를 겁먹게 하였을 것이다. 오롯이 말이 목청을 타고 흐르자 비로소 숨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웅웅거리는 잔질머리도 잠시 가셨다. 삼킨 말은 망각된다. 무엇을 바로 뱉어야 했는지도 잊고 일상이 찾아온다. 그 일상은 보통의 순간보다 어긋나있다. 헛구역질로 찾아온다. 또 다른 그림자가 되어 오해를 빚는다. 위선자, 겁쟁이, 벙어리.
비가 쏟았다. 우의를 뒤집어 쓴 사람들은 진즉에 떠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