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의 아침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찾아오는

by 나무느을보

밤이 긴 머리를 내려뜨리고 낮을 기다린다. 밤의 머리칼에 흰 새치를 더하고 파르스름한 빛으로 변모해갈 적에 그는 죽음과도 같은 긴긴 잠을 청했다. 밤에도 점멸하는 등과 발긋한 취기로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이 스치니, 밤은 희뿌옇게 스린 먹구름 같다. 밤은 쉽게 색이 바랜다. 사람들이 사소한 화톳불을 놓아도 별빛은 가리고 달빛은 눈꺼풀을 감는 것도 그 까닭이다. 밤이 온전히 웅크리고 나면 박명이 찾아온다. 약간의 풀빛을 더해가며 온 사물에 깃들면, 재색으로 죽어있던 것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다채로운 색으로 깃든다.


사물들의 아침은 이렇듯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시각에 찾아왔다. 어리숙한 어둠이 식별될 즈음엔 사람들은 구태여 등불을 밝히지 않으니, 사물들의 아침은 그들의 눈엔 늘 허술하고도 모호하다. 느슨하게 찾아와서 사람들의 아침으로 밝는다. 고로 깊은 잠으로 낮과 밤의 허리를 끊어놓은 사람들은 사물들의 아침을 모른다. 모두가 까무룩 잠에 들어있는 사이에 찾아오는 짧은 틈에 사물들은 꿈처럼 깨어난다.


밤이 온전히 흰 노인이 되어 엎드릴 적에 사람들 사이의 디오니소스적인 광기는 식고 없다. 오로지 잔잔한 해수면을 닮은 평정만이 그곳에 놓여서, 잠시 사람들의 숨을 고를 틈을 얻었을 뿐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아침은 사물들의 것보다 늦고도 무디다. 부단히 움직이지만 많은 것들을 저버린다. 다채롭고도 화려하지만 눈을 간지럽힌다. 사물은 잠시 얼었다가 모두가 떠나길 기다렸다가 다시금 깊은 잠을 청한다.


녹음10.jpg


이전 29화천착(穿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