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도착하고 숨 돌릴 틈 없이 여행했더니 오늘은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평소 일정을 빼곡하게 채워 여행하지 않고 하루 이틀 정도는 일정에 여유를 둔다. 그런 날은 걷고 싶은 곳들을 걸으며 여행지의 보통의 순간을 만나는 날이다. 이번 여행에선 오늘이 그런 날이 될 것 같다.
알람을 맞추긴 했지만 늑장 부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그동안 아침을 책임진 시리얼 말고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 옷을 갈아입고 아침식사를 위한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이번엔 우버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뛰어가기를 택했다. 여행지에서 러닝을 하는 것은 그곳에 녹아들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한 터라 체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2km 거리에 있는 울월스가 오늘 목적지다. 그런데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빴다. 이게 아닌데?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게다가 강이는 달리기를 잘해서 따라가기가 벅차다. 중간에 있는 신호등이 얼마나 반갑던지.
힘들게 울월스에 도착했다. 가뿐히 뛰는 그런 멋진 모습으로 녹아들진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호주에서 러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다닐 땐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좋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식곤증이 몰려와 낮잠을 잤다. 호주에 와서 못 잔 잠을 다 잔 것 같다. 푹 자고 눈을 뜨니 오후 2시다. 여기서 더 자는 건 안 되지.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브리즈번 시내에 인공해변이 있는 사우스뱅크라는 공원으로 향했다.
강가에 오니 선선한 바람이 분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인공해변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모래 위에 누워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호주의 진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호주는 이런 곳이구나. 여기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사는구나. 여유로운 느낌이 좋다.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느긋하게 걸으면서 진짜 호주의 삶은 어떤 것인지 느껴보는 것도 매력 있다.
어쩌면 그럴 때 더 보석 같은 호주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