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우, <달리기> , 사회참여예술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대중 술집에 들르는 사람이 있다.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여자와 자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달린다. 달릴 때의 느낌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지난겨울, 싱가포르에서 3주 동안 머무는 동안 남편과 함께 밤에 달리기를 했다. 늘 차를 타고 다니던 거리를 운동화를 신고 직접 뛰어보았다. 싱가포르는 우리에게는 여행지라기보다는 가족을 방문하는 곳이다. 매년 두세 번씩 오가며 익숙해진 거리. 익숙한 빌딩들, 익숙한 공기.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곳.
그런데 달려보니 달랐다.
밤에도 높은 빌딩들의 조명은 그대로였지만, 차도, 사람도 거의 없는 거리를 우리는 조용히 뛰어 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은, 도로를 밟을 때마다 이 도시를 처음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축축한 공기도 온몸으로 느껴졌다. 낮에는 습하고 끈적였던 공기가, 밤이 되니 묘하게 부드러웠다. 싱가포르의 나무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조용한 시간 속에서 보니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나무는 원래 거기 있었는데,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보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11km도 달렸다. 그리고, 싱가포르라는 도시가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낯익은 거리를 새로운 속도로 경험하면,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니다. 달리는 동안, 내가 이 도시를 안다고 생각했던 건 그저 차창 너머로 본 몇 개의 이미지였다는 걸 깨닫는다. 두 발로 직접 그 거리를 지나가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거리의 풍경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나는 서울을 포함해, 도쿄, 홍콩, 뉴욕, 파리 등등 수많은 도시들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았다. 그게 갑자기 아쉬워졌다. 만약 달렸다면, 그 도시들은 내게 조금 더 깊숙이 남았을까? 가봤다는 기억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꼈다는 기억으로, 나만의 느낌으로 남았을까?
싱가포르에서의 달리기가 새로운 경험이었다면, 두바이에서의 달리기는 조금 더 특별했다. 이번에는 동네 안의 달리기 트랙이 아닌, 동네 밖에 차를 타고 매일매일 오갔던 길을, 처음으로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같은 길을 지나가 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보던 것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늘 보던 나무, 늘 지나던 거리, 늘 익숙한 도시의 풍경. 그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십 년 넘게 보지 못했던 나무들을, 단 한 번의 달리기 속에서 발견했다.
차 안에서 보던 세계는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가진 하나의 화면 같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속도를 내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하기만 달리면서 보는 세계는 전혀 다르다. 그곳에는 멈춰서 바라보는 것들, 그곳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힘들다고,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세상도, 사실은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달리기를 하며, 그 말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어딘가에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보려면, 달려봐야 한다.
달리면서 느낌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낀 적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천경우 작가의 퍼포먼스 작품 <달리기>를 알게 되었다. 2015년, 서울역 앞 광장에서 진행된 이 작품은 서울과 평양 사이의 거리 193km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100m 트랙을 154명이 릴레이 형식으로 달리는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10시간 40분 동안 이어진 달리기. 나는 궁금해졌다.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들의 두 발이 닿는 거리에서,
그들의 가슴이 뛰는 순간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풍경들이, 사실은 조금만 다른 속도로 바라본다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해서 달려보지 않은 길을 지나가고 있다. 내가 다녀온 도시들 중, 이제야 달려보지 못한 거리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 도시들은 내가 봤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가게 된다면, 이제는 그 도시들을 두 발로 직접 뛰어보고 싶다.
달려야만 보이는 세계가 있으니까.
그 속도에서만 보이는 세계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