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더람 (Jimmie Durham, 1940-2021)
나는 두바이에서 산지 12년이 넘었다. 중고등학교 때 해외에 살았던 시절까지 합치면, 인생의 반은 외국이다. 여긴, 국적이 없는 도시 같다. 거주 인구의 85% 이상이 외국인이고, 그중 절반은 인도나 파키스탄 출신이다. 나머지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러시아, 그 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 가족 옆집에 이스라엘 가족이 사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요즘은. 아이들의 같은 반 친구들 국적이 겹치지 않는 것도 놀랍지 않다. 다문화 가정은 너무 흔해서 가끔은 오히려 단일 문화권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 셋을 꼽으면 프랑스, 레바논, 이스라엘 출신이다. 재미있게도 이 중에서 가장 학교 공부에 뒤처지는 아이는 이스라엘 친구다. 유대인은 똑똑하기로 유명하지만, 이 세 친구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레바논 친구는 무슬림도, 크리스천도 아닌 무종교인이고, 프랑스 친구의 엄마는 가장 수수하게 옷을 입고 다닌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이렇다'라고 하는 것에는 너무 많은 예외가 있다.
자의든, 타의든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꽤 흔한 요즘이다. 디아스포라란, 원래의 뿌리를 떠나 다른 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어쩌다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고,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있으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막상 한국에 가면 또 어색하다.
국가라는 개념은, 사실 아주 최근에 생긴 것이다. 그 경계로 사람을 설명하는 건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다. 두바이에서도, 한국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국적이나 출신지, 심지어 혈통으로 나누고 판단한다. 회사 면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원래 그 나라 사람들이'라는 말로.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반발하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미국의 예술가 지미더람 (Jimmie Durham)의 작업을 봤을 때 마음이 찡했다. 그는 원래 자신을 체로키족 출신이라 소개했다. 하지만 생애 후반에는 그 정체성 자체를 의심받았다. 그는 체로키 부족의 등록원도 아니었고, 여러 원주민 단체들은 그와 그의 작업들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논란조차도 작품 속으로 가져갔다. 언어로, 조각으로, 유머로, 불편함으로.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그는 재료를 섞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텍스트를 비틀었다. 대표작 Self-Portrait에서는 나무, 깃털, 털, 돌 같은 것으로 사람 얼굴 비슷한 조각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이것이 진짜 자화상일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아마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게 그의 의도였을 것이다.
또 다른 작품 Still Life with Spirit and Xtitle에서는 거대한 화산석이 자동차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누가 무엇을 억압하고, 무게를 지우고, 끝내 무엇을 파괴하는지를 상징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여러 작업들을 통해서 식민의 서사, 원주민의 정체성, 타자가 된 자들의 언어를 조각하고 지워낸다. (아래 이미지들 참고)
지미 더람의 작업들에는 일정한 바이브가 있다. 불편한 진실 같은, 웃긴데 기분 나쁜 농담. 예쁜데 왠지 슬픈 색감. 진짜를 찾는 게 아니라, 그런 걸 찾으려는 시도 자체를 비웃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그건 딱, 나 같은 디아스포라 인생에 익숙한 감정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느낌. 너무나 한국인인데, 또 외국인같은 느낌. 분명히 이쪽이면서 가끔은 저쪽 같고, 사실은 둘 다 아닌 것 같은 그 어정쩡함. 늪같이 느껴지는 정체성에서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 푹 빠지니, 그 늪을 나름 즐기는 인생을 살아간다.
지미 더람은 그 늪에서 의자 하나 놓고 앉아, 늪 밖의 사람들한테 우리 늪 안의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당신들이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절대 기준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