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 크리스찬 마클레이
앤디워홀이 남긴 수많은 말들 중, 가장 공감 가는 말 하나.
"Leftovers are fun."
음식이든, 시간이든, 남은 것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어있는 시간대,
버려진 공간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발견하는 것,
앤디 워홀은 그런 남겨진 것들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흔하디 흔한 슈퍼마켓의 수프캔을 작품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그것을 실크프린트로 대량 생산하면서 예술이 더 이상 고귀한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예술은 특별한 게 아니다.
예술은 우리 일상생활에 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팝아트가 시작되었고,
이제 우리는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앤디워홀이 말했던,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그 미래가, 바로 지금이다.
새로운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더 재미있는 건, 먹다 남은 음식이나 냉장고를 털어서 요리를 하는 것.
먹다 남은 프라이드 치킨을 쭉 찢어 파와 마늘을 넣고 식은 밥이랑 볶아,
간장과 후추로 간을 맞춘 볶음밥.
냉동실에 남아있던 얼린 과일들과
냉장고 안에서 유통기한까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요거트,
그리고 점박이가 생긴 바나나까지 몽땅 갈아 만든 한잔의 스무디.
새로운 재료 없이도 남아 있던 것들로
그 순간 나쁘지 않은 요리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만든 요리가 맛있을 때의 기쁨.
그걸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의 뿌듯함.
그 성취감은 새로운 재료를 사서 요리할 때와는 다르다.
옷도 마찬가지다.
버리기엔 아깝지만 외출복으로는 애매한 남편의 오래된 옷을,
나는 그걸 집에서 보이프렌드룩이라 하며 아주 잘 입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웃고,
가끔은 그걸 입고 있는 자신의 옛날 사진과 나를 비교하며 신나 한다.
같은 옷이지만, 다른 사람이, 다른 시기에 입었을 때 새로운 스토리가 된다.
그렇게, 남은 것들은 재미있다.
그래서 오래전, 인스타그램 어카운트를 만들 때, @leftoversarefun이라고 만들었다.
남은 것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즐거움.
그걸 내 일상의 철학처럼 담아내고 싶었다.
크리스찬 마클레이 (Christian Marclay)는 콜라주의 대가이다.
콜라주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큐레이션 하고 재구성해서,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단순히 시각적인 재료를 콜라주 하는 게 아니라,
소리와 시간까지 조각처럼 이어 붙인다.
https://youtu.be/FgPpmaImuEs?si=iVKb9K3-uyXs4XoB
그의 대표작, <The Clock>
그는 영화 속 모든 '시간'이 등장하는 장면들만 모아 무려 24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화면 속 시계가 관람객이 보고 있는 '현재의 시각'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
오후 2시 59분에 이 영화를 보면,
영화 속에서도 시계가 2시 59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자정이 되면, 영화 속 장면도 자정이 된다.
그저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인데,
내가 지금 이 시간대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체감된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닌,
시간이 나를 밀고 가는 듯한 느낌이다.
마클레이는 음악과 영상 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것들만을 재구성하며 작품을 만든다.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나 영상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장면과 소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 낯설게 만든다.
그가 만든 또 다른 대표작 <Guitar Drag(1999)>
이 작품에서는 일렉트릭 기타 한 대를 트럭 뒤에 매달고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질질 끌며 그 소리를 녹음했다.
기타의 쇠줄이 땅에 긁히고, 몸체가 부딪히며 내는 듣기 거북한 소리.
이 작품은 단순한 소음 실험이 아니다.
당시 미국에서 있었던 흑인 제임스 버드 주니어(James Byrd, Jr. of Jasper, Texas)의 끔찍한 인종차별적 살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트럭에 매달려 도로 위를 끌려다닌 그의 비극을, 기타의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대체한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 소리가 가진 맥락을 알게 되는 순간,
소리는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역사적 증언이 된다.
크리스찬 마클레이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조각내고, 이어 붙이며, 다시 살려 새로운 스토리와 경험을 만든다.
앤디 워홀이 "Leftovers Are Fun."이라고 말했듯,
마클레이의 세계관 속에서도 버려진 시간, 지나간 소리, 남겨진 것들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내 주변에서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
스쳐 지나가는 소리들,
매일매일의 순간들을 더 잘 바라보려고 한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