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에드워드 호퍼

by 정물루

얼마전에 알게 된 갤러리 매니저, 마르타 루네(Marta Lune)는 프리랜서 배우이자, 댄서를 하면서 갤러리 매니저를 하고 있다. 실험적이면서도 상업 갤러리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과 큐레이션을 하는 갤러리와 컬러가 아주 잘 맞는 매니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타는 인스타그램에 자기 생각, 랜덤한 영감을 솔직하게 포스팅 한다. 엉뚱하기도 하면서도 밝고 호기심 가득찬 모습이, 요즘 읽고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같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 애기때가 떠오르게 해서, 정제되거나 트렌디한 다른 콘텐츠들보다도 훨씬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도, 사실 질투날 정도로 부럽다.


눈이 드라이해지거나, 친구들이 '눈알 네개(Four eyes)'라고 놀린다고, 렌즈를 하루종일 쓰고 다니는 일은 참 괴롭다. 특히 두바이에서 선글라스는 필수품 중 하나인데, 눈이 나쁜 사람들에게 선글라스는 렌즈를 끼지 않으면 쓰기가 힘들다. 마르타는, 그럼 그냥 안경쓰고 선글라스 쓰면 안되겠냐며, 이렇게 써도 된다는 걸, 눈알 여섯 개를, 일상화(Normalize)하자며 릴스를 만들어 포스팅했다.


안경 위에 썬글라스를 쓰면 안된다는 건, 대체 누가 만든 법이며,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기준을 배운 걸까?


이렇게 써도 불편하지 않는데, 내가 이러고 다니면 안된다고 한 사람들은 누굴까? 아니면, 아무도 나한테 얘기한 적도 없는데, 내가 그냥 그렇게 쓰지 않고 다닌 걸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할까봐, 남의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쓰지 않은 거다.


얼마 전엔,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게, 한국에서는 여전히 어색하다는 글을 봤다. 두바이에서는, 레깅스는 아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한다. 그런데 이렇게 안경 위에 선글라스를 쓰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레깅스 러버인 나도, 레깅스는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지만, 이렇게 안경과 썬글라스를 겹쳐 쓰고 나가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럼 혹시, 내가 아는 나라들 말고 이 지구 어디에선가는 이렇게 쓰고 다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걸까?



'어린 아이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게, 진정한 자유다'라는 말을 여러번 들어봤다. 피카소 역시,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려면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개념은, 아티스트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했다. 다들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교와 결혼, 직장,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 왔고, 또 마흔이 넘어가면서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다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도 도대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든건지, 나는 왜 그걸 따르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생각을, 요즘 유난히 많이 한다. 딸이 아닌, 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나고, 나를 책임질 사람도 나다. 주변 사람들이 나는, 내가 하고싶은 걸 다 하면서 사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해야할 결정,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물어보기 보다는, 내 스스로, 나 혼자, 나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처럼. 물론 그때는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어서, 혹시라도 잘못되거나 실패를 해도 걱정이 없었다. 지금은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과정 중 마주할 고난도, 모두 내 몫이다. 그래서 망설여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이 걱정되는 걸까?


마르타 말대로,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므로 (Everything is made up), 틀에 얽매일 필요 없이 더 자유롭고 더 나답게 살아야 겠다. (This is your invitation to be wild, weird, and free!) 이를 위해, 나를 알아봐겠다. 기존 관념 속의 나 말고, 나. 진정한 나.


이 생각을 한지는 조금 된 것 같다. 한 3년 정도. 새벽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나에 대해서 알아보는 중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는 날엔, 혼자 있는 시간은 없다. 핸드폰, 랩탑도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진정한 나를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Automat 1927, by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미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개인주의적 삶을 살게 된 현대인의 고독과 쓸쓸함을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현대화 때문일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이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외로움을 새롭게 발견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결국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나는 여전히 나다.


에드워드 호퍼의 아내 조세핀(Josephine Nivison)은 호퍼는 몇 시간이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향이 극도로 강했던 전형적 ‘I‘ 호퍼.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그와 많이 닮아 있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것을 특별히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들.

Office in a Small City 1953, by Edward Hopper


외롭다고 느끼기보다는, 어쩌면 이런 혼자만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새벽에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전까지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한 번뿐인 삶을 즐겁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곧 나답게 사는 것이라는 걸.


마르타가 말했듯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수록 더 유머 있고, 더 재미있는 순간들이 많아질 거라는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그러니까, 나답게, 가벼운 마음으로, 더 많은 재미있는 순간들을 매일매일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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