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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May 23. 2023

그저 애만 태우네

야상곡(夜想曲)

#표지 그림: 요제프 판키비츠. <밤의 바르샤바 시장>. 1892.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중략)

꽃 지네 꽃이 지네
부는 바람에 꽃 지네.
이제 님 오시려나
나는 그저 애만 태우네.


 - 「야상곡」. 김윤아 작사, 작곡, 편곡.



  냉소적인 듯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보컬 김윤아의 두 번째 앨범(2004) ‘유리가면(琉璃假面)’의 대표곡이다. 앨범 가득 복고적 성향을 띤 비극적인 멜로디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녀의 다채로운 보컬 컬러로 어둡지만은 않은 묘한 매력을 풍긴다.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집 앨범을 만들며 느낀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진짜 제 얼굴과 제 모습의 밑바닥을 봐야 했기 때문에 무척 괴로웠어요. 의식이 무의식의 아래로 침잠하는 느낌이었죠. 앨범을 만들어 놓고 끝까지 들었을 때 밤새 괴롭히던 악몽을 앨범으로 만들어 낸 느낌이랄까요?”

 




  일반적으로 야상곡(夜想曲)이라 하면 조용한 밤의 기분을 나타내는 서정적인 피아노곡을 말한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녹턴(nocturne)", 불어식은 녹티르라고 하는데 밤을 의미하는 라틴어 녹스(nox)에서 왔다.


  가톨릭교회에서 밤 예배가 시작될 때 부르던 음악에 같은 이름이 있었으나, 영국의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가 밤의 정적과 몽환적이고 달콤한 가락으로 처음 악곡의 한 형식으로 창시하였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 외에도 18곡의 녹턴을 남겼다. 밤이 주는 고독함과 그 서정성에 끌렸던 필드는 부드럽고 순수한 느낌이 드는 오른손 멜로디와 단순하면서도 잔잔한 흐름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왼손의 반주가 어우러지는 피아노 소품을 만들었다.


  유럽에서는 밤에 활동하는 문화가 많이 발달되었고, 음악회도 초저녁에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시 귀족, 상류층들의 입맛에 맞게 초저녁 밤에 저녁을 먹고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며 자유스럽게 시간을 보낼 때 연주되던 곡들을 지칭하여 야상곡(녹턴)이라고 하였다.




  존 필드에 의해 처음 고안 해 낸 벨칸토 창법의 오페라기법에서 가져온 녹턴의 피아노기법을 좀 더 구상하여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서 야상곡은 결국 '쇼팽(Chopin, 1810~1849)'의 것이 되었다.



  쇼팽은 녹턴을 통해 밤이 가진 고요함과 고즈넉함에 시적인 상상력을 극대화시켰다. 시적 상상력을 신비로운 감정에 풍부하게 담아 그 길이가 짧은 만큼 듣는 이의 내면을 더욱 강렬하게 흔들어 놓는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쇼팽이 작곡한 녹턴은 총 21곡으로, 특히 ‘녹턴 9번 Chopin, Nocturne Op. 9’는 그의 녹턴 중 가장 대표적이다. 차분하고 감미로운 선율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 곡이 연주되던 당시 파리지앵들의 화려한 살롱의 분위기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보통 녹턴 하면 피아노곡을 연상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작품도 있다. 클로드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가 1900년 발표한 관현악곡 '녹턴'은 모두 세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악장에서는 여성 합창도 등장하는 대규모 구성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녹턴이 조용한 명상을 만들어낸다면, 드뷔시의 관현악 녹턴은 듣는 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작품이다.


  녹턴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뉴에이지 작곡가로 분류되는 캐나다 출신의 '앙드레 가뇽', 우리나라의 '이루마' 등은 작품 활동을 통해 피아노를 처음 배웠을 때 접한 쇼팽의 녹턴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맨발의 디바'로 불리는 가수 이은미의 노래 '녹턴'이 널리 불리고 있다. 애절한 가사와 터질 듯 절제된 목소리가 연인의 이별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세상의 이별 모습들 중에 이 노래 가사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얼마 전 한 지인에게서 흉금을 트는 글을 카톡으로 받았다. 매일 출근길에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인데 그날따라 그 문장이 눈에 밟혔다.



삶에 여유가 없어.
해가 뜨는지 해가 지는지
달은 둥근 달인지, 초승달인지
하늘은 맑은 날인지 흐린 날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우리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에 속아서...

(중략)

물을 먹는 병아리가
하늘 한 번 보고 물 한 모금
하늘 한 번 보고 물 한 모금 먹는 것처럼.

오늘도 여유로운 삶 기대하겠네.



  그날부터 난 하루에 한 번은 꼭 하늘을 보자고 다짐했다. 운전 중에 창문을 열어 보기도 하고, 밤에 자기 전이라도 생각이 나면 거실에 나가 밤하늘을 보았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비치는 불빛 때문인지, 극성맞은 미세먼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실에서 바라본 밤하늘에는 달도 별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뻤다. 하늘 한 번 보고 물 한 모금 먹는 병아리보다는 못하지만 나도 매일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뿌듯함이 내 마음을 만족시켰다.


  밤에는 아직까지 제법 시원해 봄을 느낄 수 있다.철쭉도 지고 라일락 향도 사라졌다. 이제 아카시도 떠날 차비를 마쳤다. 그래도 풀꽃들은 아직 꿋꿋이 버티고 있다.


상동 호수공원에서 본 주변 아파트 야경

  도시의 아파트 숲에서 보이는 희뿌연 밤하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김윤아의 노래 '야상곡'흥얼거렸다. ' 지네 꽃이 지네 부는 바람에 꽃 지네...' 오래된 아픈 기억 몇 잎이 돌아왔다.


  나는 지금 무엇을 고대(苦待)하는가. 그것을 모르기에 내가 어리석다. 하지만 비록 그것을 알 때가 올지라도 나는 또다시 서글퍼질 것이다.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애만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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