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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Feb 20. 2023

신과의 인터뷰

현재는 과거로,  과거는 미래로, 미래는 다시 현재로!

#표지 그림: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97.




나는 신과 인터뷰하는 꿈을 꿨습니다.

(중략)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지요?”

신이 대답했습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자라나길 바라고,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길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잃어버리는 것.

미래를 염려하다가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미래에도 현재에도 살지 못하는 것.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더니 결국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죽는 것.”

(중략)

“아버지로서 어떤 교훈들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으신가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기를. 단지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네 스스로 사랑받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과 너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배우기를.

용서함으로써 용서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기에는 단지 몇 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상처가 아물기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배우기를.

부자는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기를.

너희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 중에서도 너희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우기를.

두 사람이 똑같은 것을 보고서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를.

다른 사람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역시도 용서해야만 된다는 것을 배우기를.”

(후략)


  - '나짐 히크메트(티르기예의 시인이자 극작가)'의 시 「신과의 인터뷰」 중에서.


나짐 히크메트, ‘티르기예’의 시인이자 극작가



  글을 처음 접한 건 며칠 전이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아침마다 모 라디오방송의 오프닝을 구독하고 있는데 그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글귀를 읽어나가면서 잠깐이었지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출근길에 그 글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마음에 새기고 싶어졌다. 나의 허망한 생각들이 부끄러워졌고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다시금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바로잡고 싶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두려워졌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자라나길 바라고,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길 갈망하는 것.


  얼마 전 딸애랑 밥을 먹다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아빠, 난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할 수도 있잖아. 내가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도 아빠한테 허락 안 받아도 되고.”


  “그래, 네가 커서 사회적으로 독립하면 그래도 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마 지금 이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할걸.”


  “왜? 아빠도 그랬어?”


  난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내 생각을 말해주기보다는 딸애가 스스로 깨우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대신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잔상들이 떠올라 한참이나 그대로 있어야 했다. 지난날 난 왜 그리도 못나고 어리석었을까?

     



미래를 염려하다가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미래에도 현재에도 살지 못하는 것.

     

  근심이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걱정을 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걸까. 나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어깨에 지고 산다. 상황이 더 나아져도 그에 맞춰 새로운 걱정거리를 만들어낸다.


  미래에 대한 현재의 염려는 금방 과거가 다. 현재가 늘 염려 속에 있으니 곧 과거도 염려로 가득한 후회의 그림 속에 갇히게  것이다. 내 삶에서 현재는 사라지고 미래에서도 과거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나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내가 만든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현재의 염려는 금방 과거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기에는 단지 몇 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상처가 아물기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배우기를.


  힘이 넘치고 자신감이 충만했을 때 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일에 편견을 가졌었다. 많은 이야기를 했고 가끔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들에게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잠시는 불편할 수 있지만 그게 옳은 일이니 곧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 느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나의 오만이었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뿐더러 평생의 흉터로 남는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준 상처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으리라.


  지난날의 기억 속에서 부유하다 보면 나에게 실망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마주하기가 민망한 지 고개를 돌리는 나. 다행히 지금은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과 벗들이 있어 나는 외톨이가 아니다.




너희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 중에서도 너희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우기를.


  이 구절을 되새기면서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무뚝뚝한 성격에 어렸을 때부터 자식들에게 잔정이 별로 없었던 아버지. 


  그런 관계가 사십여 년이 지속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 보이지 않았기에 그 방법을 영원히 잊어버린 관계.


  자동차로 한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에 계시지만 전화드리기도 찾아뵙기도 쉽지 않다. 한 번 마음먹으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 나이기에 딸애에게는 내가 받지 못한 다정함과 친밀함을 주고 싶은데 과연 나는 잘하고 있을까 돌이켜 보면 얼굴만 붉어질 뿐이다.


너무나 다정해 보이는 부자지간




  시간에 대한 태도를 시간관이라고 한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비해 '과거 긍정적' 시간관을 가지는 사람이 현재와 미래를 행복하게 산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어쩌면 지금 느끼고 인지하는 것은 대부분 과거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 입을 떠난 말이 상대방의 뇌에서 해석되는 데에도, 우리가 보는 사물을 지각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느끼는 바로 지금도 사실은 조금 전의 과거의 시간이고 내용들인 것이다. 결국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재구성되어 축적되어야 내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 시간관으로 바꾸어주면 현재에 기쁨과 감사가 생겨 자연히 희망적인 미래상을 갖게 될 것이다. 긍정적인 미래는 다시 현재에 대한 몰입을 키워 행복한 현재를 누릴 수 있게 선순환된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흔하게 보이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는 걸 처음 안 그날 그 깨달음을 아직도 난 또렷히 기억한다.


  네 잎 클로버(행운)를 찾기 위해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세 잎 클로버(행복)를 짓밟는 어리석은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행운보다는 오늘의 작은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쉽게 찾을 수 있는 세 잎 클로버, 행복!

 

  그러다 보면 우리의 삶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쁨과 감사와 행복으로 이어질 거라 기대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역시도 용서해야만 된다는 것을 배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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