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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ul 15. 2022

그 또한 다가오리라

 소녀의 졸업식과 결혼식. 편지

#표지 그림: 말린 컬 랜드. <데스티네이션 웨딩>.



○○아버님~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혹시 ○○이 졸업식 때 읽어 주셨던 아빠의 편지글 저장하고 있을까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지만요~~


글쎄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요즘 원장님 카톡이 두렵네요^^


ㅋㅋ~~
어린이집에서 올해 소식지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빠의 글이 필요해서요. ㅎㅎ


한 번 찾아볼게요^^



  얼마 전, 예전에 딸애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졸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안부 인사도 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이런저런 문의도 하고 도움도 주는 사이였다.


  카톡을 막 보내자마자 후회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편지를 이제 갑자기 찾는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표면적 이유 그 밑에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편지는 세상에서 잊혀야 하는 것인데’라는 생각과 함께 딸애의 인생 첫 졸업식 날이 떠올랐다.


  회사에 있으면서도 정신은 온통 집안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오기를 시계만 보면서 기다렸고 시간이 되자 바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집으로 곧장 왔다.


  역시나 그날 그 편지는 내가 예상한 곳에 꼭꼭 잘 숨겨져 있었다. 내가 열지 않는다면 영원히 묻힐 수 있는데 지금 그것을 풀어보려고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그 감정이 종이에 물이 스미듯 전이되었다.


  엷은 장막 같은 불쾌함이 온몸을 스쳐 갔다. 원장님께는 찾지 못했다고 하고 그냥 먼지 속에 계속 놔두자고 생각하면서 원래 있던 곳에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그런데 생각의 구름들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동안 손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편지를 다시 꺼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고, 아무튼 모든 책임은 내가 아니라 호기심 많은 내 손 탓이었다. 이 마법 같은 함정에 붙들려 나는 그 편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다소 정갈하게 쓰인, 그러나 많은 추억들이 분출되면서 분량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한 탓에 뒷장까지 넘어간 그 편지. 사실 그건 내 인생에 정말 소중한 한 순간을 장식한 보물이었다.




  우리 애는 3살부터 초등학교 등교 전까지 줄곧 어느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다녔다. 남들은 조기 교육을 위한 영어유치원을, 그렇지 않으면 초등학교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7살에는 유치원을 보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 집은 계속 그 어린이집을 고수했다.


  우선 딸애가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고, 엄마처럼 건강한 먹을거리와 자연 속에서 배우고 터득하는 그런 정서적인 돌봄을 주고 싶다는 아내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을 존중한 나, 이런 생각의 트라이앵글이 모여 주위의 각종 유혹들을 이겨냈다.


  어린이집에 대한 내 첫인상은 마치 커다란 나무의 그루터기 속에 옹기종기 구멍이 나 있고 그 속에 나무 요정들이 사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소박하고 자그마한 각각의 방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느껴지는 작은 숲 속 장신구와 도구들이 있었고, 어린 나무요정들이 친구들과 함께 자연을 느끼고 세상을 배우는데 필요한 각종 장난감들이 조촐하게 놓여 있었다.  


커다란 나무의 그루터기 속에 옹기종기 구멍이 나 있고 그 속에 나무 요정들이 사는 모습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점은 각종 행사를 대하는 어린이집(원장님, 선생님들 그리고 어린이집이 차지하는 공간 그 자체)의 마음가짐이었다. 어린이집 원생 모두의 생일, 봄의 소풍, 여름의 물놀이장, 가을의 바비큐 파티, 겨울의 졸업식. 그것은 일련의 속삭임 같았다. 특히, 졸업식은 더더욱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이집 졸업식의 소회를 두 마디로 요약하면 ‘참 소박했다’이다. 모든 것이 원생과 선생님들, 학부모들의 협의와 노력으로 준비되었다. 화려한 조명이나 무대도 없이, 마치 졸업식은 원래 계획이 없던 것처럼 무심한 그들만의 일상들이 모여진 시간의 기록이었다.


  앉을자리도 따로 없고 학예회를 겸한 행사인데 참여하는 원생들이나 진행하는 선생님들 모두 너무 서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흐지부지 끝나거나 다음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매우 불친절한 시간이 지나가는데 정작 참여자들은 기쁘고 행복하고 때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내가 단 하나 의아해하고 내키지 않았던, 사실은 굉장히 싫어했던 장면이 있었다. 졸업식 대단원에 거의 당도할 때쯤 진행되는 행사인데, 빈 무대에 졸업생이 입장하고 그 뒤에 아빠들이 따라 들어와 아이 뒤에 선다. 그리고 아빠가 졸업생들을 생각하면서 작성한 편지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읽어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졸업반 아빠들의 편지를 들으면서 그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고개를 넘어가고, 이내 졸업식장은 작은 감정의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어느 아빠인지 목소리의 미묘한 변화가 들려왔다. 진정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수렁 속에 빠졌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나가는 행인처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나는 불편한 맘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히 화가 났다. 편지 하나 읽는데 저렇게 청승을 떨어야 할까? 아직도 그치지 못한 누구의 북받치는 울음을 계속 들으면서 그거 하나도 똑 부러지게 못할까 하는 심술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어린이집 졸업식 첫 관람 기는 끝났고 또다시 일상의 시간들이 성큼성큼 지나갔다. 나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딸애의 일상이 늘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많은 일들로 풍성해지고 있었다.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그리고 졸업식. 계속 같은 패턴 속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볼 수 있었다.


  어느덧 우리 아이의 졸업식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최고 상급반(어린이집에서는 ‘형님반’이라고 불렀다) 답게 졸업식을 위해 준비하는 학습활동의 수준이 높아졌다. 장구를 배우고 율동을 연습하며 합창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들만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틈틈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들만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바빠진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학부모들도 덩달아 이런저런 회의가 이어졌고 각자의 역할과 당일 일정에 대한 조율이 분주히 진행되었다.


  날씨가 추워졌고 눈이 내렸고 새해가 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졸업식 날짜가 정해졌다. 분주히 행사 준비가 진행되었지만 나는 방관자처럼 한 발 빼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련히 잘하겠지, 지금껏 해 온 것처럼. 하지만 내가 미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건 바로 ‘아버지의 편지’였다.


  사실, 계속 미루면 뭔가 다른 대안이 생길까 하는 안일함으로 버텨봤지만 결국은 그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졸업식 전날 나는 편지지를 앞에 두고, 두 눈은 뭔가를 하고있는 아이를 바라봤지만, 내면과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D-day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깨우고 서로 씻고 씻겨 주면서 허겁지겁 배를 채운 다음 졸업식 행사 장소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우리 집은 늦게 도착했다. 역시나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자리 중에 빈자리를 찾아 짐을 푼 다음 선생님, 아이들과 학부모들 서로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들은 그사이 훌쩍 커 있었다. 의젓해졌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관계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 갓 들어온 ‘동생 반’ 원생들은 낯설었지만, 그 나머지 아이들은 지난 바비큐 파티에서 만났던 기억에 친근했고 학부모들과도 농담을 주고받았다.  


  행사는 꼼지락꼼지락 거렸지만 생각보다 다채롭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부모가 이런 거구나 하는 자녀에 대한 고마움이 샘솟았다. 선생님에 이끌려 아장아장 무대로 나와 선생님을 보면서 미리 연습했던 역할을 잘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울면서 엄마를 찾았고 누구는 혼자 딴짓을 했다. 그래도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기쁘고 소중한 추억들이 될 것은 틀림이 없었다.


  진행이 막바지로 가면서 이제 내 몫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아직까지는 몰랐거나 몰랐던 것처럼 잠들어 있던 뜨거운 감정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것을 알아채고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최악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 두었던 편지에 힘이 들어갔다.


  졸업생들이 무대 중앙에 나란히 섰고 그 뒤로 아빠들이 둘러 서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한두 명의 아빠가 편지를 읽어 주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져 갔다.


  ‘내가 편지를 너무 정성껏 썼구나, 그럴 필요 없었는데......'

  '그 말은 편지에 쓰지 말걸 그랬어, 좀 줄일까?’


내 딸 ○○이에게.
오늘 이 졸업식에 네가 그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무척 낯설고 어색하구나.
어린이집과 늘 같이 있을 것 같았던 네가 이제 졸업을 하다니......

그동안 선생님, 친구들과 같이 지낸 많은 시간과 추억을 잊지 말고 잘 간직했으면 좋겠다.
너는 우리 가정의 기쁨이자 즐거움이요 대화의 시작이었고 일상의 마지막이었다. 가끔씩은 우리의 고난이었고...... (웃음...... 흐느낌)


  도입부를 막 지나고 본문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원래 목소리와는 다른 굴절된 소리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억지로 참아봤지만 오히려 흐느낌 같은 웃음으로 번졌다(난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이 그치지 않았고 가만히 서 있던 딸애가 뒤돌아보면서 아빠의 이상한 행동에 불만의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인지 박수로 호응해 주었다.


  울어버리라는 건가. 죽어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손사래를 치면서 무슨 외계어도 아닌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니고, 흐흐.”  


  한참이나 행사 진행이 중단되었지만 고맙게도 나에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나는 겨우겨우 뒷부분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괴로움의 원천이었고 눈물의 연속이었지만,
단언컨대 네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에 빛과 희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단다.
만약 지금 네가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 집은 너무도 삭막하고 메마른 곳이 될 거야.(중략)

지금 이 순간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세 마디 말이 있단다.
“너를 정말 사랑해”

      2020. 2.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빠가.




  난 철저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난 아내와 장모님의 눈을 피했고, 딸애는 스스로 내 곁에 오지 않았다. 발가벗겨진 채로 홀로 서 있는 어느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낭패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흐지부지 대충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도 한동안 혼자서 내 맘을 달래 주어야 했다. 이상(以上)이 내가 기억하는 ‘그 편지’와 관련된 사항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참 지난 어느 날, 뜬금없이 딸애가 그날 왜 웃었는지 물었다. 난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기 싫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냥 좀 웃겨서”


  이 말이 아이 맘에는 무척 아픈 가시처럼 박혀 버렸다. 갑자기 으르렁거리면서 나의 무성의함을 비난하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지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나를 미워하게 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나보다 딸애에게 애정이 많다. 딸애의 심술과 무례에 화가 나서 야단치고 방에 들어가더라도 딸애가 슬쩍 스킨십을 하면 금방 헤헤 웃으며 돌아앉는다. 그래서 자주 나에게 놀림을 받는다.


  아내는 딸애가 결혼해도 아주 가까운 곳에 살림집을 마련해 주고 자주 보며 손녀도 봐주겠다고 한다.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 혼자서라도 집을 마련할 태세다. 우리 애가 진짜 결혼할까? 10살 아이를 놓고 무슨 해괴망측한 상상이냐고 웃겠지만 난 얼마 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고민의 본질은 그 결혼식 날 나의 역할과 그 수행능력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다’라는 속담처럼 지난번 졸업식 편지 사건의 잔영이 내면 속 깊이 드리워져 있다. 언젠가일지 모르는 그날이 왔을 때 나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이제부터는 딸애의 결혼식을 자주 상상해 봐야겠다. 물론 처음에는 계속해서 원치 않는 결말이 나오겠지만 그날까지 시간은 아주 많이 남아 있다.  


  나에겐 반드시 꼭 해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날 나는 아빠로서 감정을 잘 조절하고 싶다. 분명 아내나 딸애 중 최소 한 명은 기쁨인지 서글픔인지 모를 울음을 세상에 내보낼 것이고 난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때 그 감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나를 통과해서 유연히 지나가도록 허락하고 싶다.


내 상상 속 웨딩드레스 입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딸애'


  무엇보다 소중한 내 바람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입은 딸애를 보며 ‘아빠의 사랑을 담은 편지’를 또박또박 읽어주는 것이다. 다정하면서도 자신 있게, 아름다운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의 눈을 바라보면서 난 그간의 마음을 들려줄 것이다.


  신부는 아빠의 모습에 흡족하면서 지난날 아빠의 무성의한 편지 낭독의 나쁜 기억을 지우개로 지워주겠지. 그제야 비로소 나에게 걸린 저주의 마법이 풀려, 못생긴 개구리에서 멋진 왕자(아빠)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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