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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16. 2024

뒷모습이 부끄러워질 때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 하덕규 작사, 작곡. 포크그룹 <시인과 촌장>  노래한 '가시나무' 중에서


<시인과 촌장> 3집 앨범 커버



  이 노래는 <시인과 촌장>의 멤버이자 현재는 개신교 목사이신 가수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1988년에 발매된 시인과 촌장 3집 [숲]에 수록되어 있다.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의미가 깊은 노래이며 하덕규 본인의 신앙적(기독교) 고백이기도 하다. 마약중독으로 방황하다 종교로 귀의한 하덕규의 담백한 듯 처연한 음색 덕분에 마음에 큰 울림이 일었던 노래이다.


  곡 내용 중에 신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죄를 짓고 원하는 것만 쫓아가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회개하는 내용"이라며 하덕규 본인이 직접 했다고 한다.


  한 편의 시보다 더 서정적이고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노래이다 보니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였다. 그중에서도 조성모가 리메이크 한 곡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가시나무’를 조성모의 노래로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한 때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성모'




  내가 가요 <가시나무>'라이브'로 처음 접한 기회는 대학교 행사 때였다. 어느 동아리(CCC, Campus Crusade for Christ)에서 '시인과 촌장'을 초대하였다고 하여 친구와 같이 갔었다.


  노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오직 한 곳만 조명이 비추는 무대에서 불려지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내 모든 허물로 인한 부끄러움과 속죄의 간절함에 숨이 막힐 듯 괴로웠다.


  20대. 내 안의 수많은 자아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서로 부딪혀 고통스러울 때였다. 불안과 두려움, 질투, 욕심과 욕망, 자신감이라곤 곤두박질치다가도 때로는 끝도 모르고 치솟는 자만심, 슬픔, 희망, 고독...  

 

 수많은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고, 갈피를 못 잡고 다른 어떤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만큼 내 속엔 너무도 많은 '나'로 꽉 차 있던 시절이었다.


20대. 내 안의 수많은 자아들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서로 부딪혀 고통스러울 때였다.

 

 이젠 세월이 지나 많이 덜어내고 빼내서 조금은 안정된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다양한 내가 있다. 계속 걷어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젠 공존해야 할까?




  연말연시엔 항상 번잡스럽다. 부모, 형제, 친지들의 안부도 챙겨야 하고 각종 행사들도 참석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의 변화와 소식들에 어떤 표정으로 있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동안 친지들에게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직장에서는 종무식과 시무식으로 이어지는 중에 퇴직, 승진, 전보인사가 이루어지면서 회사는 갖가지 소문으로 술렁거렸다. 몇몇 선배들이 퇴직 인사를 했다. 또 몇몇 직원들을 다른 부서로 떠나보내거나 우리 부서로 새롭게 맞이하면서 감정의 희비쌍곡선은 전혀 엉뚱한 지점에서 교차했다.


  무엇보다도 내 생활에 있어 변화의 정점은 '딸애'이다. 하루하루가 성장과 퇴보를 거듭하고 순간마다 변화무쌍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딸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과연 무엇인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아이가 커 갈수록 나는 더욱 움츠러들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내가 드디어 지방 근무에서 돌아와 집이 다시 안정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작년 초에 주말부부가 되면서 '1년이 언제 가나'며 걱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지나고 나니 방금 전 일처럼 착시효과가 생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불 때면 나는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내 자리에 가만히 앉아 마음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들어갈수록 내가 마주쳐야 하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지난 '뒷모습'과 겹쳐지던 부끄러움은 이내 모든 걸 집어삼켜 버린다. 내 지난날은 대부분 부끄러움으로 얼룩져 있다. 난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걸까?


들어갈수록 점점 내가 마주쳐야 하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이미 여든이 넘으셔서 허리가 굽기 시작한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직장을 떠나시는 선배들의 뒷모습에서, 폐지를 모아 리어카에 싣고 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여러 뒷모습을 보며 느낀 건 내 뒷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내가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보다 앞선 이들의 뒷모습은 그들이 살아온 삶과 그들의 운이 찾아온 결과이다. 내가 보낸 오늘은 과거가 되어 떠나가고 다시 미래가 되어 찾아올 것이다.


   먼 훗날 직장을 홀가분하게 떠나며 마지막 인사를 남길 후배들에게 그래도 '자기 밥값'은 했던 선배의 뒷모습으로 남고 싶다. 늙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 소임을 다하는 실한 뒷모습을 보이고 싶다.


  특히나 내 인생 끝에 남겨질 딸애에게 다정하고 듬직했던 따뜻한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데, 요즘 같아선 그게 제일 어려울 것 같다.


  남고 떠나고를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용기를 갖고 자신을 이끄는 인연과 기회를 찾아 떠나야 한다.


용기를 갖고 자신을 이끄는 인연과 기회를 찾아 떠나야 한다.




  아직도 내 안에는 ''가 너무 많다. 자존감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나의 자존심, 나의 주장, 집착, 교만, 욕심, 명예, 나를 향한 아집 강한 사랑들이 너무 많다. 그것들이 작은 새 한 마리 조차 쉴 수 없는 가시나무 숲이 되어 찾아오는 이를 아프게 한다.


  내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여유로워져야 한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누군가가 편안히 와 쉴 수 있도록 그곳에 길을 내고,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어 보자.

내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여유로워져야 한다.


지상의 나그네 인생길에 남는 것은
나의 뒷모습

나보다 나중 사람들은 내 뒷모습을
따라오리니

남들에게 내세우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뒷모습/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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