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쫄지마. 진짜 중요한건 따로 있어
빈틈없이 씹던 우황청심환은 도움이 됐을까
우황청심환!
'산약, 인삼, 강황, 백삼, 계피, 당귀, 방풍 등의 약초와 동물성 약재, 광물성 약물 등 30여 가지가 넘는 성분을 환으로 만들어 금박으로 입힌 제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이 신묘한 약물을 먹어보지 않은 자가 있을까 싶다.
동의보감에도 언급되어 있는 우황청심환은 다른 기타 여러 증상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주요 효능으로 "영묘향 성분이나 사향 성분이 심박수를 떨어뜨려 두근거림과 긴장, 불안감이 심한 상태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많은 이들이 중요한 자리를 앞두고 도움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수능 전에, 면접 전에 나는 정말 즐겨 애용했다.
환으로, 액상으로, 유사한 여러 가지 다양한 제품들을 모두 경험해 봤다. 그만큼 떨렸다.
다 떨리지 않냐고? 그게 얼마만큼이냐고?
우황청심환의 표준 복용법은 30분~1시간 전에 씹거나 따뜻한 물에서 개어먹는 것인데, 약효는 1~2시간 정도 유지된다고 한다.
수능 때는 엄마가 주는 대로 그냥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우황청심환을 첫 경험했고, 그로부터 한동안은 먹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내돈내산. '먹고 싶다', '나는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는 대망의 첫 면접을 앞두고였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면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이 작은 신비의 금색 구슬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작은 광고회사 AE 면접 전날, 나는 혼자 약국으로 조용히 갔고 그것을 샀다. 복용법 등을 꼼꼼하게 살피기 위해 미리 산 것이다.
구매 후 내 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꼭 닫고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신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의 떨림에 반해 설명서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형식적이었다. 도무지 당최!! 책임감이 없었다. 30분에서 1시간이라니..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데.. 심지어 약효가 1~2시간 간다며..
면접장으로 가는 시간은 그렇다고 쳐도 면접장에서 내가 대기를 얼마나 할지도 모르고, 사람마다 개인차도 있을 텐데. 속도 모르고 태평한 소리다.
절.대.로 떨리면 안 되니까.
나는 처음 복용 시 45분 전에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떨리는 거다. 떠는 게 창피해서 숨고 싶을 만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데, '안 뽑으면 니들 손해지'라고 굳게 마음먹고 갔는데 왜 떨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예외가 있는 거였다. 어쩌면 처음 예상했었던 당연한 오차범위의 함정에 내가 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튼, 그렇게 떨었는데 용케 붙었다.
다음 2차 면접 연락을 받고서는 복용 목적이 달라졌다. 질문에 대답을 또박또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염소 같은 목소리로 떠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나는 또, 꼭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했다.
두 번째 면접은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기보다는, 더 빈틈없이 우황청심환을 복용했다. 나는 약효가 나타나는 것에도 시간이 개인차가 있고, 약효에 둔감한 체질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그게 나일 것이라 확신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한 알을 먹고, 버스 안에서 반 알을 먹었으며, 면접장에 들어서기 전에 나머지 반 알을 마저 복용했다. 권장복용량 두배를 단시간에 먹은 셈이다. 너무나 신기한 게 그래도 떨렸다. 남들은 권장량만 먹어도 너무 나른해서 심지어 졸음이 몰려와 참느라 혼났다고도 하던데 믿을 수 없는 일이였다. 우황청심환을 먹었지만, 떨렸다는 경험이 남아서인지 더 떨렸다. (망................;;)
그 이후에도 나는 수년간 수없이 많은 우황청심환을 소비했다. 매출에 크게 기여한 개인을 약국별로 집계해 본사에 올렸다면 아마 내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리라.
화산 용암처럼 솟구치는 떨림에도 불구하고,
계속 주머니를 열었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추측컨대 아마 제품 자체에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고, 절대적인 의지를 했던 것 같다.
다만 나를 믿지 못했을 뿐이지.
그리고 한참 후에 깨달았다. 합격의 유무는 면접에서 떨고 안 떨고 가 아니라는 사실을. 면접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명백한 전제, 진정성만 있다면.
그 진정성만 있다면 나의 떨림을 회사에 대한 진정성, 절박함으로 받아들여 이를 어여삐 여기는 면접관을 만나 플러스가 될 수도 있고,
추억을 상기시키는 데 성공해 연민의 점수를 조금 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임원이라고 한들 왕년에 면접 안 본 사람 있고,
안 떨어본 자가 있을까?)
떨림과 합격의 유무는 무관하다.
경험에 의한 나의 확신이다.
떨리는 게 '반드시 마이너스의 요인은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면접을 보러 간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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