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든 쓰지 않든, 사람들은 누구나 새롭게 알게 된 단어, 귀에 쏙 박히는 신규 단어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최강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입스'를 알게 됐다. 제대로 뜻도 모르고 막 쓰며 희열을 느낀다.
"오빠, 나 요즘 입슨거 같아."
"니가 무슨 입스야??"
"글쓰기 입스."
"입스 뜻은 알아? 하고 싶어도 도저히 못하는 상태야."
"알아. 나 입스 맞는거 같은데? 아닌가? 그럼, 발행 입스로 하자. 써놓고 발행을 안 하잖아."
"에휴.... 아무튼 그거 아냐. 넌 아냐."
입스(YIPS)란 압박감이 느껴지는 시합 등의 불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되면서 평소에는 잘 하던 동작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본래 골프를 통해 유명해진 용어이지만, 최근에는 야구와 같은 타 스포츠에서도 자주 쓰인다.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등 음악가들 역시 입스를 빈번하게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나무 위키-
왜 아니란 거지? 맞는 거 같은데, 입스..! 입스...! 발행 입스! 나는 입스!
무튼 오늘도 나른하니 웃기는 얘기나 한 편 들려드릴까 한다. 웃음에 진지한 나란 여자는 걱정이다. 다 내려놓고 쓰는 글이니 깔깔깔 정도는 아니더라도 풉, 정도는 웃겨야 할텐데.
20년 된 나의 짝지, 우리집 손석구에게 대놓고 물은 적이 있다.
"남자들은 다 뉴페이스, 새로운 여자 좋아하지 않나?? 오빠는 한 여자를 20년간 매일보면 질리지 않아??"
"질릴 수가 없지.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머리를 볶았다가 풀었다가. 여행지에서 잠깐 낮잠 자는 사이 거기 미용실가서 숏컷으로 싹뚝 자르고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오질 않나. 살을 뺐다가 찌웠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 굼벵이가 구르는 재주도 제법 있고. 토끼랑 사는 줄 알았더니, 호랑이처럼 으르렁 거리고. 사잔 줄 알았더니 코알라처럼 종일 자고 있고. 생일상 차려준다고 새벽 같이 와서 위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고. 검사 받느라 생일날 종일 굶게 만들어. 매일 다른 여자랑 사는 거 같아. 아직 적응 중이야."
다행이다. 나도 아직 안 질리는데 그도 내가 질리지 않는다니 참 다행이다. 썩 내키지 않는 칭찬이지만, 늘 좋을 대로 해석하는 나는 대충 아주 매력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의 치명적인, 결정적인 매력은 바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얼마 전, 우리집 손석구와 그의 토끼 같은 아들과 산책을 했다.
두런두런 둘이서 하는 얘길 무심코 듣다 깜짝 놀랬다. 아이의 학교에 침팬치가 왔단다.
"뭐????? 학교에서 침팬치를 불렀어? 왜???"
둘이서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침팬치 구력을 측정했다며?? 침팬치 구력은 또 어떻게 측정해??"
"심폐지구력을 측정했다고. 체력검사했대. 아이고. 아이고.."
혀를 차며, 그는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그 아들의 웃음소리만 거리를 맴돌았다.
역시, 나는 의도하지 않아도 언어의 유희로 일상에 즐거움을 줄줄 아는 그런 매력을 가진 여자다.
지난 주말에는 여행을 갔다가 조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듣자하니 아기 씨는 언제 생기냐는 말 같다.
은근히 수줍은 우리집 손석구를 대신해 용감하고 씩씩한 요즘 엄마인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답해줬다.
나는 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준비를 해왔던가.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남자들은 원래 아기 씨를 가지고 있는 거야."
아직도 도통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그래? 조금 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담담한 듯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기 씨는 원래 가지고 태어나는 거야. 아빠도 있고, 너도 있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야말로!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싶다. 왜? 내 설명이 부족한가? 왜 못 알아듣지? 싶은 순간 부족한 아빠를 대신해 총명한 나의 어린이가 답한다.
"씨앗?? 무슨 씨앗?? 아빠가 키는 챙겼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신(발)을 신고 왔다고 말하던 중이었어."
아하, 그렇구나. 그랬구나. 나의 어린이. 어서 밥이나 먹자. 나는 커피나 더 리필해 와야겠다.
그런가 하면 또 시력은 좋은가? 아니, 나는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손석구와 바다를 보려고 해수욕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내 첫사랑이라 말했듯, 세상의 모든 조신을 다 떨고 있을 때였다.
이른 여름이었음에도 해수욕장은 이미 붐볐고, 방갈로와 텐트가 많이 보였다.
한쪽 구석에 주차를 했을 때 나는 해수욕장 현수막을 하나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와, 진짜 요즘 애들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우와, 심하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개방적으로 변했나??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또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써놓는 것도 좀 그렇다. 그치???"
세상 똑똑한 척 다하는 우리집 손석구는 아직 순진하다. 멀뚱멀뚱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나는 현수막을 가르켰다. 우리집 손석구도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봤다. 보고서도 답답한 이 남자는 저게 왜 문제냐는 식으로 다시 나를 본다. 지금 순진한 척 하는 건가? 우리 나이가 몇인데???
"아니, 너무 대놓고 하지 말라고 써놓았잖아."
"무슨 소리야?"
"진짜 안보여??? 성행위 금지. 다들 얼마나 그랬으면."
"아....하.... 잘 봐. 상행위 금지. 상업 행위. 주차 공간이니까 물건 사고 팔지 말라고."
숨을 몰아 쉬고 내쉬는 걸 보니, 이번에도 나에게 빠진 것 같다. 사람은 역시 빈구석이 있어야 매력적이다. 후훗.
나는 또 시댁 식구들 앞에서 춤도 잘 춘다.
"저는 뭐할 거 없어요?"
"응. 할 거 없어. (그때, 칙- 밥이 다 됐다는 알림이 울린다) 아, 그럼, 밥 좀 흔들어 줄래?"
"??????"
저벅저벅 걸어가 밥솥 앞에 섰다. 그리고 밥솥을양 손에 들고 최선을 다해 흔들었다. 무거워서 어깨도 함께 흔들흔들. 양팔도 흔들흔들 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렇게요???"
ᆢ?????!!!!!!!
"밥솥을 진짜 흔들면 어떻해? 밥을 잘 섞어 놓으란 얘기지. (밥주걱을 들고) 이렇게. 이렇게."
그 뒤로 큰시누, 작은시누, 시어머니는 밥솥을 볼 때마다 내가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난다고 하셨다.
그렇다. 나는 또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일상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신박한 방식으로 웃음을 선물할 줄 아는 그런 여자다. 너무 완벽하다.
그러고 보면 나를 좋아했던 그 녀석들도 모두 나의 이런 대책 없는 당당한 부족함에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집 손석구도 끝없이 부족한 나의 '빈' 매력에 빠져 허우적 댄다.
사람은 100%가 꽉 차면 질린다. 모름지기 사람은 이렇게 부족해야 된다.
모든 게 완벽하면 '부족함'이란 부분이 결여된 것이므로 결국 완벽하지 않은 게 된다.
'부족함'이란 미덕을 적당히 갖춰야 진짜 100%가 된다. 당신도 당신의 부족함을 사랑하며 자신감 있게 살 길 바란다. 그 부족함이 사람을 더 인간답게 만들고, 또 어떤 기회와 인연의 문을 열어줄 지 아무도 모른다.
훗.. 넉넉하게 한 35%??? 45%??쯤 부족한 나란 여자의 완벽함이란.. 인심도 후하지. 후훗.. 참 매력적이다. 대단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