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 무렵의 아이들
망종 절기가 왔다. 망종 전에는 보리를 수확하고 벼를 심어야 해서 온 들녘이 대어 논 물로 찰방찰방 시원하다. 본량은 사방이 넓은 들녘이라 햇빛이 강렬해지는 시기가 다가와도 들판을 지나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줘서 시원한 편이다. 모내기가 끝난 들녘을 바람이 한바탕 훑고 지나가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에, 연약한 모들의 질서 정연한 흔들거림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오랜 시간 넋을 놓고 보기도 한다. 물결에 섞인 연초록 모가 위태롭게 출렁일 때는 행여 저러다 뽑힐까 걱정도 되지만 괜찮다. 이제 태양의 힘이 강렬해지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해가 가장 오랫동안 지상에 남아있는 하지가 오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 가장 큰 명절인 단오도 있다. 뜨거운 태양의 힘으로 줄기는 강인해지고 열매는 더욱 풍성해질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 입 달린 괴물이 무서워하는 쑥
햇살가득은 단오가 가까워지면 매우 분주하다. 다가오는 여름을 탈 없이 지내기 위해 준비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 쑥이다. 단오가 지나기 전 부지런히 쑥을 뜯어야 한다. 이 무렵의 쑥은 약성이 강해서 보이는 대로 부지런히 뜯어다가 말려놓는 게 좋다. 그래서 단오가 가까워져 오면 나들이를 나갈 때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쑥을 뜯는다. 그렇게 뜯어온 쑥으로 아이들과 수릿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말려서 문에 걸어놓기도 한다.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일 수 있는데 아이들은 옛이야기 속 머리에 입 달린 괴물을 기억하기 때문에 대부분 교사를 열심히 돕는다. 매우 욕심 많은 신랑이 밥을 못 먹는 입이 없는 신부를 만나 좋아하다가 사실은 그 신부가 머리에 입이 달린 괴물이라는 것을 알고 도망가다가 쑥밭에서 겨우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동생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옛이야기를 아는 형님들이 또 동생들에게 머리에 입 달린 괴물 이야기를 해주며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준다. 이런 아이들을 보며 옛이야기가 구전으로 전승되었을 과정이 이러했을까 생각하면서 혼자 웃음 지을 때가 많다.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새지만, 사뭇 진지한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어린이집 교사 생활의 피로회복제이다.) 어쨌든 이렇게 뜯은 쑥으로 예전엔 쑥을 삶아 쑥염색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터전 근처에 쑥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올해는 겨우 모아서 말린 쑥을 다발로 묶어 문에 걸어놓기만 했다.
액운의 부적, 장명루
매일의 나들이가 쑥 뜯는 것이 일이라면, 이맘때 아이들의 실내 자유놀이는 장명루 만드는 것이 일이다. 오방색(노랑, 검정, 파랑, 빨강, 하양) 명주실을 손가락에 걸어 잘 땋아 만든 팔찌가 장명루인데, 오방(동, 서, 남, 북, 중앙)에서 오는 액운을 막아주는 행운의 부적 같은 것이다. 장명루는 6살 아이들부터 만들 수 있는데, 왜냐하면 아무리 만들고 싶어도 규칙을 이해하는 힘과, 진득하게 앉아서 끝을 봐야 하는 근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방색실로 꼬아서 만들어진 팔찌는 매우 고와서 결과물이 꽤나 만족스럽기 때문에 하나 만들고 나면 또 만들고 싶은 마성의 작업이다. 단오를 전후로 해서 많이 만드는데 3살 동생들부터 모든 이모, 삼촌, 엄마, 아빠에게 다 선물을 하자면 적어도 매일 한 개씩은 만들어야 한다. 이맘때 내가 많이 쓰는 말이 ‘공장 가동됐어!’인데, 가끔 노골적으로 ‘나도 장명루 만들어 줘~’하는 요구들을 뿌리칠 수 없어 결국 아이들과 함께 나 또한 열심히 공장을 돌리며 하루 종일 장명루를 만들 때가 많다. 매우 작은 선물이지만 가장 마음을 잘 담은 선물 같아 장명루 만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단오 부채와 창포물에 머리 감기
단옷날 빠질 수 없는 것이 부채 선물이다. 여름내 시원하라고 부채 선물을 매년 하는데 희한하게도 다음 해 여름에 보면 그 부채가 없다. 매년 단옷날 부채를 만드는 이유인가 싶다. 만든다기보다는 밋밋한 흰 부채를 사서 아이들과 부채에 그림을 채워 넣는다는 표현이 맞겠다. 부채에 넣는 그림은 몇 가지 있는데 올해는 습식수채화로 채색을 해보았다. 어떨 땐 먹을 흘려 빨간 물감을 손가락으로 앵두처럼 찍은 그림을 만들기도 하고, 어떨 땐 주변에 핀 꽃을 말려 풀을 먹여 붙이기도 한다. 완성된 부채는 집으로 가져간다. 어떤 부모는 부채질이란, 부채로 얼굴을 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며 아직 대근육 발달이 덜 된 아이들의 엉뚱한 부채질 체험을 고발하기도 하는데 햇살가득표 부채는 A/S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불편은 스스로 감당하시라 충고해준다.
단오 무렵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습 중 하나 더 소개하자면 창포물에 머리 감기이다. 창포를 사서 하루정도 푹 삶아 식혀놓는데 마침 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나면 그 상쾌한 기분을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을 때는 교사가 도와주기도 하지만 7살 아이들에게 동생들 머리를 감겨주도록 해보게 한다. 따로 샴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창포물을 그냥 머리에 적셔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즐겁게 놀이처럼 아이들은 머리를 감는다. 그것이 뭐라고 아이들은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역할을 세분화해서 일을 맡겨준다. 머리를 감겨주는 형님, 머리를 닦아주는 형님팀을 나누어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알아서 동생들에게 착착 서비스를 진행한다. 먼저 감은 아이들은 머리를 말리며 머리를 감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또 하고 싶다’며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머리를 다 감고 산발이 된 아이들이 머리가 마르도록 놔둔 틈에 교사들도 언제 해보겠나 싶어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본다. 창포의 향이 은은하게 코끝에 감돌고, 상쾌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창포의 효능을 한 번의 경험으로 금방 체감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머릿결이 좋아진 것 같다고 떠들고 다닌다.
단오를 지내고 나면 이제 진짜 여름이다. 어른들이야 폭염 걱정에, 아이들 건강 걱정에 다가올 여름에 긴장하지만 아이들에겐 가장 신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