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와 대서
비가 오려나보다. 하늘빛이 심상치 않으니 오늘 나들이 길도 비옷을 입어야 하는 모양이다. 비옷을 자주 꺼내 입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아이들은 이 비옷이 왠지 모르게 귀찮다. 이 정도 비야 그냥 맞고 싶은 마음이다. 입으면 바람이 안 통하는 재질이라 더운데, 굳이 입으라고 하니 그나마 입는 흉내를 낸다. 팔만 끼우고 단추도 안 잠그고 모자도 안 쓴다. 결국 교사만 나들이 내내 모자를 쓰라고 목이 쉬도록 아우성이다. 비 오는 날의 감성은 아이들이 더욱 잘 아는 게다. 어차피 오는 비를 다 가릴 수가 없으니 맞으며 즐기는 거다. 투둑 투둑 비옷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고, 손을 조금 뻗어 내밀어 차갑고 상쾌한 비를 만지는 것도 좋고,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으니 가서 물장구를 쳐주는 것도 좋다. 소서 절기의 매력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논에서 사는 것들
본량 들판엔 농부들이 부지런히 심어놓은 모들이 이제 포기나누기를 시작하며 더 이상 여리지만은 않은 파릇파릇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논의 터줏대감은 사실 모가 아니다. 아이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논 주변에서 분주한 발견을 시작한다. 몇 년 새 농약을 안 뿌리는 논들이 많아지면서 논에 찾아온 생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땅과 가까운 아이들은 그런 것들을 찾는데 선수다. 가장 개체수가 많은 왕우렁이가 아이들 눈길을 잡아당겨 어느새 논가에 옹기종기 아이들은 모여 앉는다. 그리고 논 속에 숨은 수많은 움직이는 생명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한다. 가장 난도가 높은 애가 바로 '긴꼬리투구새우'이다. 대논 물과 색이 비슷해 굉장히 집중하지 않으면 찾기가 힘든 녀석들인데 아이들은 잘도 찾는다. 논 생태계를 평정시켜 주는 녀석들이라 함부로 잡지 않게 ‘눈으로만 봐줘~’하고 부탁하면 손을 곱게 허리춤에 찌르고 열심히 관찰한다. 매우 관찰력이 좋은 아이들은 ‘이모, 물고기가 있어요’ 하며, 미꾸라지도 찾을 줄 안다. 내 논이라면 들어가 한 두 마리 잡고 싶은 욕구가 슬금슬금 인다. 움직이는 것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들도 들썩들썩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여 우렁이는 실컷 잡아도 된다고 허락해줬다. 왕우렁이는 알을 까는 녀석들이라 번식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채집에도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 가져가겠다며 열심히 잡지만 걔 중 된장국에라도 들어갈 수 있는 놈들은 얼마 없을 것을 안다. 그래서 몇 마리는 교실에 작은 수반을 두고 풀어놔 아이들이랑 자꾸 보고 밥도 주고 했다. 하지만 탈출의 귀재들이라 방바닥에 굴러다니기 일쑤여서 결국 아이들 몰래 갖다 버린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은 우렁이를 잡는 일에 잠시 시들해지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의 나들이길
소서 절기엔 장마가 끼어 비가 오는 날이 잦다. 비가 오면 나들이 장소를 정해 한 곳에 머물러 놀기가 조금 애매해진다. 그럴 땐 흙과 풀이 많은 곳은 잠시 피해 주는 것이 경력교사의 노하우이다. 농로를 따라 깔아놓은 시멘트 길이 비가 많이 올 땐 그나마 옷을 덜 버리고 놀 수 있는 길이라 비 오는 날의 나들이는 대개 농로를 따라 빗길 산책을 한다. 사실 빗길 산책은 교사의 바람일 뿐, 딱딱한 시멘트 위로 비 마중 나오는 지렁이, 달팽이, 개구리들이 자꾸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아 멀리 가지는 못한다. 게다가 지렁이들도 텃밭 작물들을 키우기 위해 기름지게 관리해 둔 땅 속에서 살아서인지 아이들 손가락만큼이나 클 정도로 뚱글뚱글하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저 신기한 마음에 둥그렇게 머리 맞대고 지렁이 주위로 모여들어 거기서 한나절! 비가 와서 물살이 세진 수로에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개구리들을 발견하면 또 거기서 한나절! 결국 돌아갈 시간이 되어야 겨우 그 녀석들과 이별을 한다. 그러다 돌아오는 길가에 소복이 넝쿨져있는 칡잎을 보면 뜯어다 우산처럼 쓰겠다며 또 한나절! 여름날 빗길 산책은 길고도 길다.
흙과 물이 만나면...
장마철이라고 비만 오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뒷산에라도 가서 놀면 좋겠는데 비가 개도 이미 풀이 우거진 뒷산은 당분간 접근이 힘들다. 그동안은 아이들에게 마당이 가장 만만한 놀이터이다. 비가 개면 마당은 아이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간이 된다. 모래놀이터 대신 진흙 놀이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여름은 옷이 얇고 가벼워 빨래하기가 편하다. 아이들의 놀이는 그것을 전제로 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의 놀이를 온전히 함께 즐길 수 있다. 손으로 주물럭거렸던 진흙이 얼굴에, 옷에 그리고 친구의 옷에 점점 번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 부처님 한 분 모셔야겠구나’ 한다. 마른날 하는 모래놀이는 주먹밥도 만들 수 없고, 떡도 만들 수 없지만 촉촉한 진흙으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 비는 아이들에게 주는 여름날의 선물과도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진흙놀이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더 즐겁다. 7살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모여 마당 한가운데에 공사판을 벌여 놓는다.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수로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물이 고인 땅을 한없이 파기도 한다. 한 번 파기 시작하면 땅을 뚫고 지구 반대편에도 갈 기세다.
“그러다 호주 사람을 만나겠어.”하고 열심인 아이에게 한마디 하니,
“네? 이 땅 속에 사람이 산다고요?” 한다.
아직 우리 아이들에게 우주의 섭리는 머나먼 진리다.
한편에서는 삽으로 수로를 만들고 파놓은 흙을 덧대 집을 만들고 있었다. 가만 보니 동생들이 만들어놓은 진수성찬과 함께 하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주(住)와 식(食)을 해결한 것이 아닌가? 배움은 놀이에 있음을 증명하는 거라고 살짝 갖다 붙여 말해 본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놀이처럼 즐겁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