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황제 – 입하, 소만>
거리마다 이팝나무 꽃이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입하에 피는 꽃이라고 해서 이팝나무라 불린다는데, 우리는 이팝나무 꽃을 보며 이제 여름이 곧 오겠구나 한다. 하지만 아직 여름만큼 덥지 않아서 나들이 다니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들이다. 입하와 소만 절기는 농부들에게도 바쁘게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본격적인 나들이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간식이 지천
거리마다 입하 절기에는 이팝나무 꽃이 피지만 햇살가득 근처에는 아까시꽃이 지천이다. 도시보다는 공기가 깨끗한 편인 햇살가득에서는 아까시꽃을 따서 그냥 먹어도 아이들을 못 먹게 말리진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따오려고 커다란 봉지를 나들이 전에 준비한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아까시꽃은 주방 맛단지 교사에게 가져다주면 아까시꽃 튀김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반에 가져가 아이들과 아까시꽃 효소를 담기도 한다. 나중에 발효가 되면 신기하게도 아까시 꿀맛이 나는 차를 마실 수 있다.
입하 절기의 농촌은 조금씩 분주해진다. 텃밭은 그동안 손을 봐 둬서 보드라워지고 따뜻해져 모종을 심기에 적당해졌다. 동시에 그들이 품고 있던 온갖 잡초들도 부지런히 키워낸다. 그래서 햇살가득도 매일 분주하다. 아이들과 장날 모종을 사서 여름날 먹을 고추며, 토마토 등의 모종을 사서 텃밭에 심기도 해야 하고, 그새 이파리를 무성하게 틔워낸 감자밭에 잡초들을 솎아주고, 땅도 조금씩 북돋워줘야 한다. 터전 주변의 논마다 농부 아저씨들이 모를 심기 위해 트랙터로 논을 정비하는 것도 구경해주고, 트랙터 뒤를 따라 열심히 먹을 걸 찾아다니는 백로도 구경한다. 논에 물을 대기 시작하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우렁이며 개구리들이 백로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어주어 이맘때 논에는 백로 떼들이 아이들의 나들이길 발길을 자꾸 붙잡는다. 하얀 날개를 펴서 우아하게 날아가는 백로들의 비행은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 딱 좋은 풍경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머무르지 않는다. 거기에 머무르기엔 너무 많은 놀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길가마다 토끼풀꽃이 우르르 피어나 시계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어야 한다. 질경이 꽃대가 서로 제 키를 자랑하며 올라오면 끊어서 풀 씨름도 해줘야 하고, 지칭개 꽃이 분홍빛으로 하늘거리면 따다가 볼연지, 입술연지 발라주기도 해야 한다. 무덤가에 띠풀(일명 삐비)가 피어나기 전 얼른 뽑아서 먹어줘야 하고, 슬슬 산딸기가 익어가고 있으니 부지런히 따서 먹어줘야 한다. 동네 대나무 밭에는 비가 온 뒤 땅을 뚫고 여기저기 솟아오르는 죽순들을 끊느라 바쁘고, 밭가에 소복 허니 올라오는 머위대도 따야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의 흥밋거리 참·청·무당(개구리라는 말은 가볍게 생략해준다.)을 발견하는 날은 나들이를 끝내고 돌아가는 시간을 야속해할 만큼 집중해서 논다. 오전 나들이가 아쉬우면 낮밥 먹고 또 나가서 놀고, 그래도 또 아쉬우면 집에 가기 전 마당에서 부족했던 놀이를 마저 한다. 그러다 집에 가자고 하면 아이들마다 '에~~' 하며 아쉬운 감탄사들이 한가득이다. 그야말로 노느라 하루가 모자라다. 어찌 그 마음을 모를까. 날씨가 덥지도 않고, 벌레도 없고, 심지어 해도 길다. 입하, 소만 절기를 계절의 황제라 불러도 전혀 아깝지 않은 호칭이다.
된장가르기
바쁜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된장을 가르는 일이다. 청명과 소만 사이 해야 하는 일인데 우리 터전은 조금 늦어져서 입하가 지나기 전에는 된장을 가르기로 했다. 된장을 가르는 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데 자신들이 먹는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보는 일은 우리 터전에서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이들 스스로 해보도록 준비를 한다. 아직 어린아이들까지 하다 보면 너무 분주해져서 7살 아이들과 주로 한다. 된장을 가르는 일이란 것이 별것이 없어서 메주를 담아놓은 항아리에서 메주를 꺼내 주물러 된장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니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딱 하나 있다면 된장 냄새인데, 어른이 되어서야 된장 냄새가 구수하고, 입맛을 돋워주지만 아이들은 그 냄새가 어른만큼 좋을 리 없다. 메주를 주무를 때의 이상한 촉감이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는 아이들에게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하고 난 아이들은 쌈을 싸 먹을 때도, 된장국을 먹을 때도 자신들이 했다는 공치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메주를 주무르고 온 손은 비누로 씻어도 냄새가 가시지 않는데 그것을 기회로 아이들은 동생들 코에 손을 갖다 대며 똥냄새라고 장난을 치기 일쑤다. 쫓고 도망 다니는 아이들로 교실이 금세 산만해진다. 산만해진 분위기를 모으는 데 옛날이야기만큼 좋은 게 없다. 된장 하면 떠오르는 대표 격 옛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살았는데~”
할머니가 냇가에 빨래하러 갔다가 할아버지가 개울에 싼 똥을 주워와서 된장국을 끓였다는 오래된 구전동화 말이다. 똥, 방귀 얘기는 어쩜 그렇게 해도 해도 재미가 있는지 백 번을 얘기해줘도 또 해달란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항상 아이들과 같이 끝을 맺는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된장국을 먹으면서...”
“내 똥이다!”
“꺄~하하”
아무리 더러운 똥 얘기를 해도 실컷 놀고 들어온 후 먹는 낮밥은 꿀맛이다. 얘기하느라, 웃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뚝딱 비워진 식판을 교사에게 내밀며 ‘한 그릇 더’를 외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