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푸르른 봄날 – 청명>
신종 전염병에 고요히 3월을 보내니 봄이 오는 줄도 모르겠다. 집에만 있기 아쉬운 어느 햇빛 맑은 날, 바람이나 쐬러 가보자 하니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식당마다 만원이다. 봄바람이 들썩들썩 사람 마음을 부추기니 핑계 삼아 슬슬 바깥구경 좀 하러 나온 게다. 어른인 나도 몸이 근질근질한데 3주간의 휴원을 하느라 집에 있을 아이들은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했을까? 덕분에 햇살가득은 매우 고요히 봄을 지나고 있다.
봄꽃 피는 용진산
산수유꽃, 목련꽃을 선두에 세우고 산에 들에 봄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터전 주변에도 노란 개나리꽃이 반가운 얼굴 내밀며 속달속달 나들이길에 다정한 벗 같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햇살가득에서 꽃으로 가장 환영받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그건 바로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햇살가득 아이들은 청명 무렵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는다.
햇살가득에서 진달래꽃을 가장 많이 딸 수 있는 곳은 용진산이다. 용진산은 아이들이 오르기엔 조금 가팔라서 7살 아이들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용진산 등반은 7살 아이들의 첫 연령 활동인데, 드디어 용진산을 오르게 되었다며 매우 감개무량해한다. 동시에 동생들은 매년 이러한 형님들을 보며 어서 자신들도 7살이 되고 싶어 한다.
산에 돌이 많고 약간 가파르기에 7살 아이들도 산에 오르기 전 매우 단단히 안전교육을 한다. 섣부른 장난에 위험한 일을 맞이할 수 있고, 용기백배인 아이들이 교사보다 먼저 가다가 길을 잃을 수 있기에 첫 등반 전에는 아이들에게 살짝 겁을 주기도 한다.
“용진산에는 멧돼지가 살아. 그래서 혼자 다니는 사람을 공격할 수 있으니 우리는 함께 다니며 멧돼지보다 크게 보여야 해.”
햇살가득에 다니는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용진산 멧돼지 이야기를 듣고 살았기 때문에 멧돼지는 매우 무서운 짐승인 걸로 안다. 물론 용진산에는 멧돼지도 살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로는 짐승들도 무서워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에겐 이렇게 이야기 해놓으면 효과가 꽤 좋다. 덕분에 아이들은 교사보다 멀찌감치 먼저 가지도 않고, 조금 늦어지는 아이들을 대견하게도 잘 기다려준다. 조금 엉뚱한 아이는 터전에서 ‘물러가라~’라고 쓴 종이 깃발을 만들어 흔들며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같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정상에 오르면 살짝 동지애 같은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모두 함께 안전하게 높은 곳에 도착해 물도 마시고, 산에서 유난히 꿀맛인 오이도 먹으며 첫 등정을 성공했음을 기뻐하고 즐긴다.
잠시 쉬고 나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꽃이 드디어 보인다. 가져온 봉투에 진달래꽃을 분주히 따서 담는다. 각자 먹을 만큼 따고, 동생들을 위해서도 딴다. 진달래꽃 따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꿀벌들도 막 봄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벌을 피해 벌보다 빠르게 따는 게 기술이다. 살짝 겁을 먹는 아이들도 있지만 화전을 먹겠다는 의지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기도 했다.
진달래를 따면 절로 화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방앗간에 가서 찹쌀 반죽도 찧어 와야 하고, 예쁘게 화전을 직접 빚기도 해야 한다. 모든 일이 어른들에겐 그저 일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겐 즐거운 놀이이다. 방앗간에 가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반겨주고, 기분 좋은 방앗간 주인아주머니를 만나면 막 볶아진 참깨를 한주먹 얻어먹을 수도 있다. 막 나온 따끈한 가래떡을 얻어먹는 날은 운수 대통한 날이다. 이렇게 반죽을 가지고 터전에 돌아와 동생들과 함께 화전을 빚는다. 동글납작하게 빚은 찹쌀 반죽 위에 진달래꽃 올리고, 나들이 가서 뜯어온 쑥도 살짝 올리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먹거리가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서툴게 만들어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그마저도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이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화전을 부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세상 진지해진다. 기름 냄새가 아이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다 부쳐지기도 전에 언제 먹냐고 아우성이다. 7살 아이들이 다 부쳐진 화전 위에 설탕가루를 솔솔 뿌려주면 모든 과정이 끝이다.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 각자 접시에 먹을 만큼 담아서 나누어주면 아이들은 연신 감탄을 하며 화전을 먹는다.
“이모, 아름다운 맛이 나요.”
“꿀맛이에요.”
아이들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쉴 새 없이 오물거리며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자신이 만들어서 맛있는 거라는 자랑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유난히 많이 만들어서 아이들이 다 못 먹을 때면 집에 가서 엄마, 아빠랑 나눠먹으라고 싸주기도 한다. 집에서도 자신이 만든 거라고 매우 으쓱해하며 가방에서 화전을 꺼낼 아이들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된다.
이제 서서히 시작할 봄날에 모두에게 이 화전을 선물하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한 행복바이러스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