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by 코알라

저는 보육교사에요.

10년이 넘게 보육교사로 살다 보니 다양한 부모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듣고 살게 되었지요. 당연히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이야기들이 주로 많지만 또 그만큼 힘든 건 부부가 서로 마음을 맞춰 살아가는 일이었어요. 서로가 살아왔던 환경이 다르고, 결혼생활에 대한 각자의 지향이 다르다 보니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고 심지어 초보 부모로서 가지는 여러 고민들까지 엉킨 실타래처럼 잘 풀어내지 못해 서로에 대한 신념까지 깨지고 마는 일도 다반사였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이를 책임감 있게 키우고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반면에 노력했지만 각자의 한계를 깨닫고 결국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정리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죠. 제가 바로 그들 중 한 명이었어요. 같이 사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만 되는 일이라면 헤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결정했었죠. 인생은 선택한 바대로 살아지는 것이기에 무엇이 옳은 삶인지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그렇게 힘든 과정을 지나고 나서도 나는 아이와 살아야 했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어요. 사는 게 별 것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했어요. 하루하루를 한걸음 한걸음 걷는 것처럼 그렇게 지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이와 지내는 삶이 마냥 힘들지는 않았어요. 버텼던 것이었는지, 진실로 행복했는지는 조금 헷갈리기는 해요. 제 생각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느끼며 모든 감정을 억눌렀던 것 같아요. 그즈음쯤 제 심리적 상태로 보는 세상은 조금 유치해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드라마 속 사랑 얘기며, 인생의 굴곡진 순간을 맞이한 누군가의 이야기 따위가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어요.


이혼을 하고 한 2, 3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고질병이었던 비염을 환절기마다 힘들게 겪으며 지나가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해 유난히 코막힘도 심하고 숨도 쉬기 힘들어 결국 유명한 한의원에 찾아가게 되었지요. 그곳에는 유명한 한의사 한 분이 계셨는데 진맥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꿰뚫어 볼 정도로 신묘한 분이셨어요. 그런 점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왠지 점쟁이 같은 점이 싫어서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던 그런 분이었어요. 저는 그 한의원에 아이가 어릴 적 한 번 찾아갔었는데 아이 진맥을 보시고는 아이를 대번에 파악하시고 잘 치료해주셨던 기억이 있어 조금은 신뢰를 하고 있는 편이었지요. 제 순서가 되어 진찰실에 들어가 앉았어요. 잠시 맥을 짚어보시더니 제 몸상태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직업이나 근황을 물어왔어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혼자서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덤덤히 하게 되었지요. 그랬더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선생님은 갑자기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어요.


“아니, 이 많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참고 살아요?”

“네?”


저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멍하니 선생님을 쳐다보았어요.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일이 보통일이 아닌데 스트레스가 쌓여 이렇게 견디는 것도 용하네. 스트레스를 쌓아두지만 말고 누구랑 얘기도 하고 하면서 좀 풀어요.”


이 얘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뿌예지더니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내 안의 병이 그것이었던 모양이에요. 저는 내향적이고,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잘 털어놓지 못하는 성향이에요. 혼자서 삭이다가 그렇게 지나가면 말겠지 해버리고 살아온 날들이 많았어요. 선생님은 내가 그런 성향인걸 대번에 알아내고 안에 쌓아두기보다는 털어내고 누구에게든 이야기해보라며 저를 다독여주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그 병원을 나왔던 일이 생각이 나요.


저는 가끔 저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이혼한 부모들 말이에요. 보육교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함께 공감해주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들은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한의사 선생님께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더 많은 상처받은 이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더욱 하고 싶은 건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때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씩씩하게 살아내는 모습은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저는 연봉이 두둑한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날 때부터 선택받은 금수저도 아니에요. 심지어 저는 허물어져가는 시골집에서 월세를 살기도 했고, 이사를 나와서도 20평도 되지 않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이와 단 둘이 살았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이와 저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는 흔한 엄마예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여기는 흔하디 흔한 엄마예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옆집에 살고 있을 법한 흔한 그런 사람인 거지요. 그래서 저의 이야기가 옆집 사람 이야기인 듯,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인 듯 공감하며 웃으며 그렇게 제 글을 읽어주시길 바라요. 제가 아이와 살며 무척 행복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제 행복도 전염되어 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