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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아리콩 Aug 31. 2022

데이빗과 할머니, 친해지길 바래

영화 <미나리>


 어느 한국인 가족이 미국의 아칸소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버지 제이콥은 한국 채소를 길러내는 농장을 꿈꾸고, 어머니 모니카는 그저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있기를 바란다. 장녀 앤은 아픈 동생을 돌보느라 일찍 철이 들어버렸고 막내 데이빗은 심장에 구멍이  마음껏 뛰지를 못한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 모니카의 어머니인 할머니 순자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국계 이민자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는 막내 데이빗의 시선을 따라간다. 조각조각 아련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조합하고  사이를 어른이  시선에서 메꾸어 낸다. 담백하고 순수한 순자와 데이빗의 갈등과 어른들의 사정으로 충돌하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미나리' 가장 미국적인 영화다. 이민자의 나라, 개척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땅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 그들의 분투기는 미국의 역사와 닮아있다. 낯선 황무지에 덜렁 떨어져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 말도  통하지 않는 이웃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섞이려 노력하는 과정. 미국의 이민 1,2세대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과정들이기에 많은 미국인들이 '미나리' 공감할  있었을 것이다.


 '미나리' 또한 가장 한국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이민  이민자 가족이라면 누구나  문화의 충돌을 경험한다. 미국과 부모의 나라. 영화  가족도 집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쓴다. 제이콥은 데이빗이 잘못을 하면 너무나 한국적인 방식인, 회초리 때리기로서 교육을 하려 한다. 밥도 한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곤란할 때 부부는 가장 한국적인 해결방안을 선택한다. 바로 외할머니 소환하기.


 데이빗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한국에는 가본 적도 없지만 처음 만난 외할머니 순자에게 '한국 냄새가 난다' 말한다. 데이빗에게 한국으로 대표되는 순자는 낯설고 불편한 존재다. 순자는 미국 할머니처럼 쿠키를 구워주지도 않는다. 맛없는 보약을 달여 먹이고 오줌 싼다고 놀리기나 한다. 데이빗은 처음으로 미국인으로서의 자아와 한국인으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는 경험을 한다.


 한때 미국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인종 비율을 알아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100% 한국인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에 (물론 아니겠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을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꽤나 인기였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미국인이라는 정체성만큼이나 오리지널리티,  그들의 선조가 어디에서 왔는가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단일 민족에, 단일 언어를 쓰는 한국인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심는다. 어디서나  자라고 몸에도 좋은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의 마음  구석에 뿌리내린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상징한다. 데이빗은 순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 문화를 흡수한다. 함께 고스톱을 치고 장난을 치고 티격태격하면서 데이빗은 점점 마음을 연다. 미나리에 음을 붙여 원더풀 미나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순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데이빗에게 원더풀 미나리 노래를 불러주는데, 이는 마치 기도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하다.  주문이 먹혀들었는지 데이빗의 심장에는 미나리(=한국인으로서의 자아) 심어지고 구멍이 조금씩 메워진다.


 우리는 가슴에 구멍이   같다,  표현을 하곤 한다. 문자 그대로 가슴에 구멍이 났던 데이빗은 허전했던 가슴에 한국을 심는다. 이민자 가정의 2세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순자가 데이빗의 병을 가져가듯이 데이빗이 호전됨과 동시에 그녀는 제대로 몸을   없게 된다. 이는 한국 문화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모든 문제는 어머니의 희생으로 해결된다. 순자는 은퇴할 나이에도 딸을 위해 낯선 곳에  도움을 준다. 몸이 불편해진 와중에도 쓸고 닦고 쓰레기를 치우며 끊임없이 도우려 한다.


 순자는 쓰레기를 태우는 와중에 순간적인 실수로 채소 창고에 불을 낸다. 제이콥과 모니카가 채소를 구하러 들어간 와중에 죄책감에 휩싸인 순자는 어디론가 도망을 간다. 데이빗은 이때 처음으로 마음껏 뛴다. 할머니를 붙잡기 위해. 데이빗의 극복 서사는 한국인으로서의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붙잡기 위해 데이빗은 한계를 극복한다.


 불이 나고,  가족은 함께 바닥에 누워 잠을 잔다. 비록 순자의 실수였으나  사건은 다시금 가족을 결합시켜준다. 제이콥의 꿈과 모니카의 소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다투던 부부는 다시금 함께 시작한다. 미나리는 혼자서도 잘만 자란다.


  영화의 아쉬운 점은 너무나도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데에 있다. 할머니의 희생, 어머니의 포기, 장녀의 어른스러움. 감독이 미국인임에도 숨길  없는 K스러움이 영화 시나리오 전반에 녹아있다. 할머니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어머니는 결국 남편의 꿈을 위해 스스로의 소망을 포기한다. 장녀는 끊임없이 동생만을 챙기고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조차 없다. 제이콥이 영화 초반에 말한 것처럼  영화에서 수컷은 쓸모가 없다. 쓸모 있는 수컷이 되어야 한다는 제이콥의 대사는 한국 남자가 스스로에게 내뱉는 자조 섞인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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