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폭포에서의 둘째날 아침이다. 이 호텔의 조식 장소는 통유리창에 폭포가 담기는 곳이다. 즐거운 기분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데 둘째와 남편이 일어나지를 않았다. 사는 동안 대부분 11시 취침 7시 30분 기상을 해온 나와 달리 둘째는 부엉이형 인간이다. 조식 먹으러 안간다는 둘째에게 엄마는 이렇게 좋은데서 왜 안가냐며 계속 재촉했지만 내가 말렸다. 가족들이 자신이 생각하는데로 움직이기를 심하게 바라는 엄마 때문에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잔소리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게 사람인데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하며 방 불을 다 끄고 엄마랑 막내를 데리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호텔 9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북적이는 곳에서 운 좋게도 창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 방보다 훨씬 더 가까이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창문 앞에서 우리 셋은 행복해하며 식사를 했다. 엄마는 자꾸 이것을 못누리는 둘째랑 사위 얘기를 했지만 그들은 엄마와 달리 지금 잠을 자는게 훨씬 더 효용이 높다. 내 남편은 주말이면 1시까지 잠을 자는 사람이다.
엄마는 3주 간의 캐나다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게 설퍼산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것, 그 다음이 레이크 루이스에서 카약을 탄 것, 그 다음이 밴쿠버에서 캠핑을 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1등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이 호텔에서 보낸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1등이 재스퍼 국립공원의 보버트호에서 수영하고 카약 탄 것이었고, 막내는 다 좋아서 못 고르겠다고 하다가 스탠리파크에서 자전거 탄 것과 밴쿠버에서 캠핑한 것이 공동 1등이라고 했다. 같은 여행을 해도 사람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하긴, 둘째는 재스퍼에서 시멘트를 탄 듯한 회녹색의 애써배스카 강이 쓸쓸하게 흐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재스퍼 국립공원의 즐길거리를 검색할 때 거의 발견할 수 조차 없는 풍경에 둘째가 온통 마음을 빼앗겨서 남편이 일부러 운전 길에 중간에 멈춰서 감상 시간을 챙겨주기까지 했다.
무엇이 가장 좋았던 간에 내 마음은 감사와 뿌듯함으로 넘실거렸다.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든 결국 우리는 저마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새겼으니까. 그것도 가족이 함께 말이다.
그렇게 조식을 먹고 돌아와 나갈 채비를 했다. 간만에 늦잠을 잔 둘째와 남편은 훨씬 더 산뜻해 보였다. 우리 가족의 성향 상 2박 내내 호텔에 있을리가 없어 둘째 날에는 가성비가 좋고 즐길거리와 가까운 숙소를 잡아두고 가족들에게 설명을 했다. 나는 정말 계획형 인간이다. 가족들은 무슨 가족의 성향까지 계획에 들어가는 것이냐며 신기해 하면서 나를 따라왔다.
두번째 숙소에 캐리어를 맡기고, 바로 앞에 있는 유원지(?)에서 놀았다. 몰랐는데 나이아가라 지역이 너무 인기 관광지인지 미드에서 본 미국 놀이공원처럼 생긴 곳이 있었다. 대관람차가 반짝이며 돌아가고, 캐릭터들로 꾸며진 대형 오락실도 많고, 펍이며 카페, 식당, 기념품샵이 섞여 흥이 나는 곳이었다. 도시에 감흥이 없어 밴쿠버의 초록색 자연만 보며 1년을 산 터라 간만의 휘황찬란한 도시스러움에 덩달아 신이 났다. 무엇보다 신난건 둘째였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길거리에서 총으로 인형을 맞추는 동전 기계에도 동전을 넣고 오락실에도 들어갔다. 사실 남편과 나는 10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오락실에 들어간 적도, 동전 기계에 돈을 넣은 적도 없다. 3주 여행 중 가장 텐션이 높은 둘째를 따라 다른 세상 같은 오락실로 들어갔다. 동생은 곧장 농구 게임 하는 곳으로 가서 자기가 동네 신기록 보유자라면서 나이아가라 오락실에서도 신기록을 세워야겠다고 했다. 눈을 반짝이며 폭풍 같이 빠른 팔로 농구공을 골대로 던지는 그녀.... 빨간 가디건에 롱치마를 입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전완근을 뽐내고 있는 그녀..... 엄마도 나도 남편도 막내도 그저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 감탄하며 모두 동영상을 찍었다.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많은 농구공을 골대에 넣은 그녀의 기록은 2등이었다. 대단하다. 전 세계인이 와서 했을 이 기계에서 2등 기록을 달성하다니! 그런데 동생은 너무 아쉽다며 씩씩거렸다. 승부욕이라곤 한 톨도 없어서 경쟁하는 스포츠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나다. 운동은 주로 필라테스 달리기 요가를 한다. 내 앞에서 1등을 놓치고 아쉬움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저 사람은 나와 한 배에서 나왔다. 엄마는 나보고도 한판 해보라 했다. 나는 해 본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얘네가 어떻게 내 배에서 나온 애들인거지..?" 라고 낮게 읖조렸다.
그렇게 한참 오락실을 휘젓고 다니는 둘째를 우리 가족들은 엄마 오리를 따라다니는 새끼들처럼 졸졸 따라만 다니며 구경했다. 생경해서 즐거웠다. 그리고 다시 눈부신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걷는데 펍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이아가라 브루잉 컴퍼니였다. 여행지에서 남편과 나는 항상 그 지역 브루어리에 앉아 수제 맥주를 마신다. 엄마를 닮아 소주 두 잔도 못마시는 동생들과 여행하느라고 3주 내내 술 다운 술도 못마셨다. 못내 아쉬워 자꾸 펍을 바라보는 나를 눈치채고 막내가 "언니 맥주 마시고 싶어? 그럼 우리끼리 놀게 맥주 마시고 와!" 라고 해줬다. 지난 3주 여행 중 나는 가장 기쁨에 차서 "고마워!!! 이따가 만나!!!" 하고 남편과 쏜살같이 펍으로 갔다. 뒤에서 엄마는 "술이 저렇게 좋을까. 누가 아빠 딸 아니랄까봐..." 하며 또 다시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그 곳에서 남편과 마셨던 나이아가라 프리미엄 라거 맥주는 내 인생 맥주 중에 꼽힌다. 맛도 맛이었지만, 3주 가족 여행이 단 이틀 남았고, 모든게 다 잘 되었고, 우리 가족들은 서로의 다름을 알고 서로를 배려할 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수고했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여행을 이끌며 스트레스 받던 나는 식사 챙기는 것을 동생들에게 넘긴 후 홀가분해졌고, 동생들은 내 눈치 안보고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다. 낮에는 동생이 먹다 남긴 팀홀튼 커피를 내가 챙기자 "언니 내가 들고다닐께! 내 음식에 손대지 마! 언니가 했다고 나 구박하지마!" 라며 서둘러 커피를 빼앗아 갔다. 먹다 남긴 음식들을 남의 손에 쥐어놓은 줄도 모르던 동생은 영문 모르게 구박 받던 이유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내 불만과 자신의 불만을 함께 날려보냈다.
맥주를 마시고 나와 나이아가라 크루즈를 타러 예약해 둔 시간에 맞춰 갔다. 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최고로 신이 났다. 우리는 입장할 때 받은 우비를 입고 쏜살 같이 빠른 걸음으로 1층 맨 앞에 자리 잡았다. 환상적으로 맑은 날씨에 브라이덜베일 폭포에 가까워지자 머리 위로 선명하게 뜬 무지개의 아름다움, 세차게 부서지는 물방울이 얼굴을 때려 한껏 상기된 가족들은 크게 웃었다. 브라이덜베일 폭포를 지나 나이아가라 폭포와 점점 가까워 질 때 미국에서 출발한 크루즈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엄마도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이번 여행에선 아이 같이 순수한 엄마를 매일 본다. 그러다 점점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폭포 바람이 몰아치고 우리 가족은 흠뻑 젖어 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서로와 폭포를 번갈아 보며 계속 웃었다.
20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웃었다. 물벼락을 맞아 고양된 우리는 크루즈에서 내리기 직전에서야 카메라를 꺼내 서로를 찍고 재잘재잘 떠들며 걸었다. 해가 쨍쨍해서 젖은 옷이 금방 말랐다. 한 바탕 놀고 나자 피로해진 나는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갔고 체력이 남은 가족들은 좀 더 놀았다.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취향과 체력에 맞게 움직일 수 있으니 한결 수월했다. 여행 초반에는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 때문에 무리를 했는데 이제는 엄마도 마음을 내려 놓았다.
매일 밤 10시에 시작하는 불꽃 놀이를 보러 가족들과 밤마실을 나왔다. 반짝이는 밤의 유원지를 걸어내려가 인파 속에 적당한 자리를 잡고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10시가 되자 펑펑 소리와 함께 까만 밤 하늘에 꽃이 폈다. 불꽃놀이는 사람들을 비일상으로 데려가준다. 빛으로, 소리로. 20분 남짓 비일상을 누리다가 불꽃 놀이가 끝나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데 마음이 벅찼다. 나는 "우리 가족들 싸랑해~" 하고 외쳤고, 엄마도 막내도 "나도~ 너무 사랑해~" 라고 답했다. 둘째는 아주 멋쩍은 표정으로 "...나도" 라고 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부모님 밑에서 형제로 자라난 남편은 3주나 보았음에도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는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어느 틈에 둘째가 사라졌는데 남편이 처제가 젤라또 먹으러 간다고 했다. 늦은 밤에 혼자 먹으러 가면 잔소리를 들을까봐 형부한테만 말하고 사라진 돼지런한 나의 동생. 너무 그 애 답다. 나 또한 엄마처럼 절레 절레 고개를 저으며 엄마랑 막내랑 인사를 하고 남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의 2박은 가족 여행으로 완벽했다. 깨끗하고, 편안하고, 구경할 것이 확실하면서도 적당해서 지루하지도 바쁘지도 않다. 중년도, 청년도, 아이도 좋아할 만한 곳이라 취향 차이도 없다. 전세계에서 놀러 온 북적이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덩달아 신나는 곳이다. 이렇게 여러모로 가족 여행에 딱 맞는 곳에서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외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