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여행을 떠올리면 항상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특별히 좋았던 순간이나 예상치 못하게 힘들거나 어처구니 없었던 순간같은. 그렇게 한 해 한 해 지나가다 보면 과거의 여행 대부분은 잊혀지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롯해진다. 결국 어떤 한 장면이 그 여행의 전부처럼 추억되기도 한다.
이번 3주 간의 가족 캐나다 여행 중 그런 순간을 가졌다. 30년이 지나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서도 또렷하게 기억할, 중장년이 된 동생들과 건강에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젊은 날의 우리 여행을 추억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 할 그런 순간 말이다.
밴프 국립공원에서 3일 동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재스퍼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밴프와 재스퍼를 잇는 300km의 고속도로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드라이브 내내 눈 앞에 보이는 눈 덮인 웅장한 산과 밥 아저씨가 그려놓은 듯한 짙은 초록의 침엽수, 30분마다 차를 멈춰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볼 만한 호수와 폭포가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 가족은 중간에 들른 바우호에서 30분동안 물수제비를 뜨고, 빙하를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으면 내려서 한참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선왑타 폭포, 애써배스카 폭포처럼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있으면 또 물멍을 하고, 아이스필드 빙하까지 걸어 빙하 위에 올라서느라 3시간의 거리를 8시간이 걸려서 올라갔다. 작은 것에도 크게 감탄하는 네 모녀와 함께 긴 여행을 하며 운전을 도맡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밥도 먹이지 못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재스퍼에 잡아놓은 호텔에 도착해 마감 직전의 식당에서 5개의 요리를 시켜 허겁지겁 먹었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도로를 지날때는 중간에 휴게 시설이 없어 마실 물과 음식을 다 챙겨야 한다. 그걸 미리 알고 샌드위치와 컵라면을 챙겼는데 이렇게 오래 즐길 줄 몰라 끼니가 부족했다. 저녁을 먹은 후 이번에는 엄마와 동생들, 나와 남편 따로 잡아놓은 각각의 방에서 쉬었다. 가족 여행이 길어지면 내향적인 남편의 정신적 피로도가 올라갈 것 같아 따로 잘 수 있는 숙소를 군데 군데 마련해 두었는데 그러길 잘했다. 우리 가족들은 너무나 말이 많아서 조용히 쉴 시간이 절실했다.
1년 전 남편과 함께 왔던 숙소인데 재스퍼 다운타운과 10분 정도 떨어져 있으면서도 강가의 숲 속에 위치해서 호텔 근처를 산책하면 엘크 무리도 만날 수 있는 자연 속의 숙소인 점이 좋아서 다시 예약을 했는데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기쁜 마음으로 푹 쉬고 다음날 아침 일정을 시작하려고 보니 하늘이 너무도 맑았다. 로키의 날씨는 너무도 변화무쌍해 자주 흐리고 비가 오는데 이런 파란 하늘을 최고로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오후로 계획했던 호수에서 카약을 타는 시간을 오전으로 앞당겨 샌드위치와 피크닉매트, 커피와 메이플 쿠키를 챙겨 호수로 향했다.
재스퍼의 보버트 호(Beauvert lake)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호수이다. 영국에서 여왕님이 오실 때도 쉬어간다는 페어몬트 재스퍼 파크 롯지 앞의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인데 작년에 밴쿠버에 살 집이 없어 2주나 로키 여행을 하느라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사람이 거의 없어 아름답고 투명한 호수와 멀리 보이는 로키 산맥의 그림 같은 절경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곳이라 가족과 함께 다시 왔다. 가족들은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말을 잃었고 나와 남편은 밴쿠버에서부터 가져온 고무 카약에 바람을 넣으며 이 호수에서 개인 카약을 탈 것이라며 가족들을 설레게 했다.
카약을 다 만들어서 우리 집에서 힘 쓰는 일을 도맡아 하는 둘째와 남편이 한 쪽씩 배를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수로 들어갔다. 아뿔싸, 돌바닥의 이끼에 발이 미끄러져 둘째가 물에 빠졌는데 발목이 꺾였다. 아파하는 둘째를 겨우 겨우 물 밖으로 꺼냈는데 청바지와 니트가 홀딱 젖고 다친 듯 보였다. 쌀쌀한 날씨에 동생이 감기에 걸리거나 발목이 부을까봐 그냥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옷갈아입고 좀 쉬자 하니 동생은 별 일도 아니라는 듯 괜찮다고 했다. 내 기준으로 그 상태는 전혀 괜찮지가 않다. 그런데 동생은 한사코 호텔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나머지 가족들보고 놀으라고 했다. 피크닉매트에 앉아서 옷을 말리면 된다면서. 나는 그 때 내 동생을 조금쯤 이해해버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동생. 끊임 없이 뭔가를 하고 돌아다녀서 나를 피곤하게 했던 여행지에서의 동생. 자꾸 음식을 사고 언니는 왜 벌써 피곤하냐고 해서 기분이 상하게 하던 동생은 사실 내내 남편과 함께 무거운 짐을 나르고, 텐트를 치고, 저녁을 만들고, 카약을 옮기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쳐도 나처럼 아픈 티를 내거나 생색을 내는 게 아니라 별 일 아니라는 듯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게 하고 무심히 쉬는 사람이었다. 묵묵하고 우직한 내 동생의 면모에 충격을 받는 나는 여행 하는 열흘 가까이 동생을 마음에 안들어하면서 불만을 쌓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너무나 미안하고 감동 받은 나머지 동생에게 카드를 주며 오늘 저녁엔 너 먹고 싶은거 다 사 먹어라~~~! 하고 짐짓 쿨한 척을 했다.
가족들과 피크닉 매트에 앉아 만들어온 샌드위치와 커피, 메이클 쿠키를 먹다가 엄마한테 나랑 카약을 타자고 했다. 원래는 동생이 엄마랑 타려고 했는데 동생은 좀 더 쉬어야 할 것 같아서 제안한 거였는데 엄마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싫어" 라고 했다. 지난 삶을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를 믿지 못할만 하긴 한데 단칼에 거절하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웃겼다. 그래서 일단 나랑 막내가 먼저 카약을 탔다. 둘다 성인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미끄러지듯 호수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배 탈때마다 듣는 김준서의 1시간짜리 피아노 연주곡을 작은 스피커로 틀었다. 잔잔히 물결치는 듯한 피아노 연주에 투명한 물에 노를 젓는 소리, 내 앞에 앉은 막내의 작게 감탄하는 소리.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태어난 작은 아기는 어느덧 취향을 가꾼 어엿한 20대가 되었고, 신기하게도 둘째랑 달리 나와 취향이 똑같이 컸다. 체육파 둘째가 언니가 막내를 낳은 것이냐고 할 정도로. 말 없이 간간히 노를 저으며 음악을 듣고 호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막내가 무엇에 감동하고 있는지 온전히 알았다. 나를 닮은 막내의 마음을 내 것 처럼 느끼면서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고요한 호수
그렇게 얼마간 말 없는 고요를 누리고 있는데 저 멀리 뭍에서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소리가 명랑하게 공기를 갈랐다. 호수 변을 따라 한바퀴 걷고 있는 엄마가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이다. 우리는 귀하디 귀한 고요한 행복이 깨져 불만스럽게 "뭐야 저 아줌마는!"하고 현실로 돌아왔지만, 두 딸이 그림 같은 호수에서 함께 배를 타고 있는 광경이 엄마에게 얼마나 반갑고 행복했을까 싶어 맞장구를 쳐주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노를 젓는데 이상했다.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저 멀리에 있는 가족들이 가까워지지를 않았다. 바람의 방향과 반대로 배를 움직이니 나와 막내의 힘으로는 돌아가기에 부족했다. 둘이 영차 영차 하며 열심히 노를 젓는데 너무 세차게 노를 저어 물방울이 마구 튀고 떨어져 뒤돌아 본 막내의 이마에 물이 철철 흘렀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나는 빵 터졌고, 한 번 터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깔깔 웃느라 복근이 아픈데도 노 젓기를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왜 나랑 타기 싫다고 단박에 거절했는지 알겠다. 엄마랑 탔으면 우리는 절대로 못 돌아갔을 것이다. 엄마의 혜안에 감탄하며 우리는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노를 저었고, 초가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더워 땀을 뻘뻘 흘렸다. 작년 여름 로키에서 자유롭게 호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에 1년 동안 수영장에 다니며 특훈을 했음에도 날이 추워서 수영할 마음을 접었는데 당장 물에 뛰어들고 싶도록 열이 올랐다. 그렇게 겨우 겨우 돌아온 우리는 우리가 못 돌아올 줄 알았다며 빵 터진 가족들을 뒤로 하고 너무 덥다며 당장 수영복으로 갈아 입었다.
호수에 발을 담그는 순간, 너무 덥다는 생각은 저 멀리 흩어지고 물이 얼음장 같이 차가워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카약에 탄 둘째가 차갑다고 호들갑 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둘이 수영하는거 보고 출발할 거라고 했다. 뒤 따라 들어오려는 막내도 차가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랑 남편은 이 낯설고도 아름다운 호수에서 수영하는 우리를 찍어주려고 이미 핸드폰과 액션캠을 들고 있었다. 가족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무리인 나는 못하겠다고 했고, 막내는 "언니 저 풍경을 봐! 포기할 수 있어?!" 라고 소리쳤고 "어! 나는 원래 포기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야!" 하고 소리쳤다. 나의 당당한 대답에 가족들은 "푸핫" 하고 웃었다. 너무나 시트콤적이었다. 엄살이 심한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들의 강제적인 응원을 들으니 아무래도 물에 들어가야 하는 날인가 보다. 둘째가 기다리다 지쳐 노를 젓기 시작할 때 나는 풍덩 물 속으로 들어가 헤드업 평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얼음장 같이 차갑고 투명한 로키 산맥의 호수 위에 떴다.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순간이었다.
내 뒤를 따라 막내 동생이 물 위에 떴다. 우리는 수영을 자유자재로 하지는 못해서 금새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수영했다가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이 시간을 만끽했다. 수묵화로 그린 듯한 산과 수채 물감으로 칠한 듯한 호수, 응원하는 엄마랑 남편의 목소리, 너무나 기분 좋게 웃고 있는 막내, 저 멀리 멀어져가는 둘째의 카약, 수영하며 가쁜 나의 호흡. 생생하게 각인 된 순간.
몇 시간동안 사람 없는 호수에서 번갈아 카약 타고, 수영을 하고, 햇빛을 받으며 몸을 데우고 웃으면서 아마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다 같이 하는 해외 여행에서 우리는 그저 순수하게 즐거웠다. 우여곡절 많고 여행하는 중 자주 마음이 상해 번갈아 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으로 이 여행은 우리에게 오래도록 반짝일 것이다. 이 여행은 언제나의 우리 가족과 같다. 서로 싸우고 지겨워하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싫음과 좋음이 번갈아 나타나는. 서로 함께 하는게 좋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