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가족 여행이 평화롭기만을 바란 건 아니지만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토론토 시내

by 조각

재스퍼 국립공원에서 다시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타고 4시간여를 달려 캘거리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 5박 6일 간의 로키 산맥에서의 꿈 같은 여행 덕에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던 우리 가족은 이문세의 휘파람이나 윤도현의 사랑했나봐를 함께 열창하며 신나게 드라이브를 했다. 눈 앞에 속 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웅장하고 유려한 산세, 파란 하늘, 엄마의 취향에 맞춘 BGM, 고속도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던 흑곰 구경까지 더 없이 완벽했다. 그렇게 도착한 캘거리 공항 근처 숙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 5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 토론토로 향했다.


토론토에서는 다운타운에서 2박을 하며 시내 구경을 하고 2시간 거리에 있는 나이아가라에서 2박을 한 후 다시 토론토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 가족들은 인천 공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여서 밴쿠버, 로키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했다. 정신 없는 공항에서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타고 앞장 서서 길을 찾는 남편과 둘째를 따라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2주 동안에는 남편이 운전하는 우리 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캘거리 공항 주차장에 우리 차를 놓고 토론토로 날아왔기에 이곳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 그간 남편의 고생에 우리 모두 고마움을 느꼈다. 새벽부터 일정을 시작했기에 피곤해서 각자 방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일정을 점검했다.


토론토에서의 여행은 어떨지 설레기도 하고 전에 없이 걱정되기도 했다. 사실 둘째는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3주 동안이나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지난 5월 엄마랑 막내와 함께 제주 한달 살기를 하면서 무척이나 마음 고생을 했던 것을 알기에 2주간 밴쿠버와 로키를 여행한 후 캘거리 공항에서 귀국해도 된다고 제안했는데 어쩌다보니 자신도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고싶긴 하다면서 모든 일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토론토에서는 혼자 여행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었고, 나이아가라 지역에서의 2박만 가족과 함께 하고 시내 일정은 따로 하기로 했다. 막내는 둘째처럼 혼자 다니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계속 같이 있으면 충전이 되지 않는다면서 몇시간 만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충전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사람이기에 동생들을 이해했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었다. 알았다고는 했지만 한 순간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심심해하고 혼자 노는 것이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다는 극단적 외향인인 엄마는 가족 여행 중 따로 움직인다는 동생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나는 동생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로 한 후 남편을 걱정했다. 사실 이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다섯명 중 가장 내향적인 사람은 내 남편이다. 결혼 생활 5년 간 처제들에게 말을 놓지 못했고 (사실 말을 놓을만큼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여행 중 엄마도 동생들도 남편에게 고마워만 할 뿐 무언갈 바라면서 힘들게 하지 않았으나 그의 성향 상 3주 간 소란스러운 여자들과 내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남편을 혼자 쉬게 하고 나 혼자서 체력이 넘치고 혼자 있기 싫어하는 엄마랑 토론토 구경을 하는 것도 생각했는데 남편이 반대했다. 나는 누구보다 길치라서 동네에서도, 회사 근처에서도 몇 년 동안이나 길을 잃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꺼이 아내의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에게 고마워하며, 두달 후 시부모님이 오셨을 때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시내 구경을 나가야 하는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 남편과의 여행이면 8시 정도부터 말 없이 쉬었는데 체력 좋은 가족들과 늦은 시간까지 관광을 하고 밤에도 자꾸만 말을 하느라 내 체력이 바닥났다. 좀 더 쉬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혼자 일정을 시작할 둘째가 자꾸 어느 식당에 갈건지 물어봤다. 쌀국수 같은걸 먹고싶다고 하니까 그럼 언제 나가냐고, 쌀국수 먹을거면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둘째는 여행 내내 바닐라 라떼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밴쿠버에서도 로키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느라 환전해 온 돈이 좀 부족했는지 나와 같이 나가면 한 끼 식비를 아낄 수 있어 그런 거였다. 그런데 나는 체력이 바닥났음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주면서 엄마를 도맡은 상태였다. 그런데 또 다시 내가 관심도 없는 '음식' 문제로 재촉을 하는 동생에게 짜증이 났다. 난 지금 못 나가니까 먼저 가라고 불만스럽게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숙소에서 한 시간 넘게 쉬다가 엄마랑 막내, 남편과 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 쌀국수 집에서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하고 켄싱턴 마켓으로 향했다. 토론토 시내 구경은 종로 나들이와 비슷한 듯 했다. 인사동, 삼청동 같은 곳을 구경하고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랜드마크의 야경을 구경하는 식이다. (지방에서 산 지 10년이라 서울 구경은 10년도 더 전 기억에 멈춰 있어 지금은 어디가 유행인지 잘 모른다. 성수동 같은 데라던데)

20대 초반인 막내는 펍과 카페가 반짝이고 거리에는 빈티지 마켓이 열려있고 LP판과 오래된 포스터를 파는 켄싱턴 마켓의 분위기에 홀딱 빠져 물건들을 하나 하나 꼼꼼히 구경하느라 신이 났다. 그런데 이런 것에 관심 없는 엄마는 막내를 기다리느라 멀찌감찌 서서 심심한 듯 서성거렸다. 나는 엄마에게 막내에게 이 곳에서 1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자고 하고 엄마랑 남편과 함께 좀 더 설렁 설렁 그곳을 구경했다. 설렁 설렁 다니다가 우리보다 한참 일찍 나갔던 둘째도 우연히 마주쳤다. 20대인 그들은 토론토 시내 구경에 신이 났다. 그런데 엄마는 이렇게 같은데 있을거면서 왜 따로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전혀 동생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피로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하는 우리 가족들. 나는 동생들의 시간도 보장해 줘야 하고 엄마도 설득해야 하고, 애들 취향 엄마 취향 고려해가며 함께 할 일정 따로 할 일정 판단해야 하고 남편 눈치 봐 가며 이 여행을 컨트롤 해야 했다. 그런데 다섯 명 중 가장 체력이 약했다.


그 상태로 토론토 시청의 야경까지 구경한 후 하루를 마쳤고, 다음날 카사로마라는 초호화 성에서 오래된 가구와 장식을 구경하고, 막내는 어딘가로 놀러 가고 엄마랑 남편이랑 시티크루즈를 타고 물 위에 떠서 토론토 시내를 바라보았다. 디스틸러리 디스트릿에도 들러 커피도 마시고 반짝이는 도심의 거리에서 엄마랑 사진도 찍었다. 엄마랑 나랑 남편의 취향은 그리 다르지 않아 하루 동안의 토론토 구경은 나름 재미있었다.

그렇게 토론토에서의 둘째날 밤, 다음날 아침 나이아가라로 이동하는 고속 버스를 탈 계획을 이야기하는 중 둘째가 돈을 다썼다며 텅 빈 지갑을 탈탈 털었다. 나는 삐죽해진 마음으로 "혼자 다니면 그 정도는 당연하지" 라 말했다. 일 순간 둘째의 표정이 확 굳었다. 나는 둘째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으면서도, 자기 편하려고 혼자 다니면서 내가 짜 놓은 일정을 계속해서 물어보고 이동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먹고 싶은 것을 다 사먹느라 돈을 다 쓴 동생에게 불만이었던 마음을 굳이 표현하고 말았다. 그런데 둘째는 그 정도가 아니었나보다. 여행 초반부터 둘째와 '음식'으로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티 내지 않고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참은 마음은 이곳 저곳에서 불만스럽게 새어 나왔고 표정이나 말투를 예민하게 느껴온 둘째는 언니는 나에게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며 화를 터뜨렸다. 생각보다 크게 화가 난 동생의 모습에 나도 화가 나서 내 입장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60년 인생에 처음으로 딸들과 함께 해외 여행을 와서 가장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막바지에 딸들이 크게 다투니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엄마가 울던 말던 둘째는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왜냐하면 이 여행을 위해 나와 남편이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썼고, 너무 많은 것을 참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평생에 딱 한 번, 해외에 살고 있는 김에 가족들에게 평생의 추억거리를 만들자고 애를 써왔기 때문이다. 이 여행이 망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둘째랑 나는 대화로 풀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엄마를 달래고 둘째랑 거실로 나와 찬찬히 이야기를 했다.


아직 서운하고 화가 나고 감정이 상한 둘째의 표정과 말투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24살에 독립했을 때까지 한집에 살며 수없이 많이 싸운 둘째와 싸우지 말자고. 최대한 둘째에게 맞춰서 생각하고 사과하고 싸움이 될 만한 말은 삼키자고. 둘째와 엄마를 위해. 막내와 남편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그래서 나는 차분할 수 있었고, 확실히 이성적인 상태로 둘째의 말을 듣고, 내가 잘못한 것을 사과하고, 내가 그간 왜 그랬는지를 설명했다. 둘째는 1년 전 내가 출국할 때 즈음 우리가 크게 다투고 내가 둘째에게 크게 실망했을 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서 여행 내내 내 눈치를 봤다고 했다. 언니는 자신의 많은 점을 맘에 들지 않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게 아니라 너의 식탐이 싫다고 했다. 동생이 나의 불만을 느낀 모든 때가 모두 음식과 관련이 있었다. 동생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정말이지 생각도 못한 것 같았다. 주변에 음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들이 싫을 줄 몰랐다고 했다. 나는 너의 식탐만 싫어했지 너를 위해 캠핑을 가고, 너를 위해 하이킹을 가고, 너를 위해 너가 혼자 있는 시간들을 자주 만들고 엄마를 설득했다고 했다. 너랑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무척 아끼고 이 여행이 너에게도 좋은 시간이길 바랐다고.


둘째는 그간의 서러움에 엉엉 울었고, 나는 오해를 풀게 되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터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참고 넘어갔으면 서로의 마음에 불만과 앙금이 남았을 테니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생과 화해를 한 후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새벽 한 시 였다. 그런데 잠들지 못하고 있던 남편이 왜인지 무척이나 날카롭게 나를 공격했다. 너는 가족들에게도 똑같다고. 똑같이 단호하고 단정적으로 말한다고.


나는 종종 남편이 나로 인해 기분이 상하는 그 말투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남편은 그게 무엇인지 내게 정확하게 설명할 방법을 모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른다. 대체로 잘 맞고, 다툼이 없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부부이지만 이 화제만 나오면 나는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다. 남편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점이 싫어 나와 동생의 긴 대화를 듣다가 그만 기분이 상해 버렸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새벽 한시에 이미 너무도 지쳐 말 할 힘도 없어 그저 내가 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싸우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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