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캐나다를 여행한지 2주째. 유럽, 하와이 같은 휴양지, 아시아, 미서부를 여행 다닌 내게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였던 로키 산맥의 밴프, 재스퍼 국립공원에서 우리 가족은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딜가나 고려 청자나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색감의 호수를 만날 수 있고 드라이브 길에 눈 앞에는 멋들어진 산세가 펼쳐진, 별다른 고생 없이 30분 안걸려 이동해도 다른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있는 밴프에서는 달라도 너무 다른 가족들이 내내 붙어있어도 불만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여행 중 사소한 이유로 서로에게 기분이 상하려고 할 때 눈 앞에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 펼쳐지니까 사소한 불만들이 소리 없이 흩어졌다. 절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밴프에서 눈에 담은 우리 가족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오전에 설퍼산 곤돌라를 타고 높은 산에 올라 밴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에메랄드빛 바우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밴프 다운타운의 동화같은 모습과 눈이 쌓인 커다란 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구름이 산에 그림자를 드리운 풍경까지 완벽했다. 그곳에서 막내는 풍경이 좋은데서는 맛있는걸 먹어야한다며 챙겨온 감자칩을 먹었고 둘째는 기내용 작은 캐리어만 가지고 여행하는 와중에도 굳이 챙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바위에 감탄하며 다음 생에는 암벽 등반가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여행할 때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고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는다. 암벽 등반가들이 위험하게 저런걸 왜 할까 생각할 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누리는 가족들이 나와는 너무도 달라 신기하기도, 소중하기도 했다. 내가 이들의 그 순간들을 발견하고 있다는게 좋았다. 엄마가 설퍼산을 너무 좋아해서 막내가 엄마가 특히 좋아한 풍경을 담은 기념품 자석을 선물했다.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밴프 여행의 꽃 레이크루이스를 갈 때 나는 전에 없이 조급했다. 레이크루이스와 모레인 호수는 셔틀버스를 예약해야만이 볼 수 있어서 미리 예약해두고 가족들을 재촉해 늦지 않게 셔틀 버스 타는 곳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도로 공사를 해서 길이 막혔다. 가족들이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꼭 봤으면 좋겠는 마음에 셔틀 시간에 늦을까 불안했다. 평소답지 않게 내내 불안해하느라 운전하는 남편마저 피곤하게 했다. 차에서 내려 급한 걸음으로 걷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말없이 함께 뛰었다. 다행히 제시간에 셔틀을 탔고 레이크 루이스에 도착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한두시간 안에 비가 올 것 같아 가족들이 얼른 비가 오지 않는 호수에서 카약을 탔으면 좋겠어서 또 다시 조급하게 뛰었다. 여행지에서 계획 없이 느긋하게 다니는 편인 남편도, 막내도 그냥 따라주었다. 카약 타는 곳에 오니 이미 줄이 길었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내가 기다릴테니 가족들에게 호수 구경을 하고 오라 했다. 동생이 언니 너무 무리하는것 아니냐고 했다. 괜찮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무리는 맞지만 다들 잘 구경하는게 난 더 좋다고 생색을 냈다. 가족들은 별 말 없이 구경을 하러 갔다. 사실 별 말을 하기에는 레이크루이스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가족들을 보내고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었다. 카약 줄을 서고 있는 것이지만 레이크루이스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이라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가족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해주고싶다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 내내 종종거리며 나도, 가족들도 불편하게 했음을 반성했다. 그렇게 한시간이 지나고 가족들과 함께 카약을 탔다.
원래 사람들과 북적이며 어울리지 않는 둘째가 조용히 이 곳을 누렸으면 해서 둘째랑 막내를 한 배에 태우고 나랑 남편이 엄마를 가운데에 태웠다. 현실에 있기엔 너무도 아름다워 그림 같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레이크루이스에 우리가 탄 붉은 배가 미끄러져갔다. 김준서의 피아노 연주곡을 틀고 남편과 나는 노를 저었다. 귀여운 엄마는 "너무 행복해서 울컥해~" 하더니 또 우셨다. 엄마 또 우냐며 놀리며 호수 가운데로 갔는데 구름 뒤에 가렸던 해가 나와 호수에 반짝이는 빛망울을 뿌렸다. 빛망울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둘째랑 막내가 노도 젓지 않고 말 없이 앉아 있었다. 풍경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언제나 감탄하거나 말을 하느라 시끄러운 엄마도 조용했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이 순간이면 충분해서. 각자 바쁘게 사는 와중에 함께 여행할 마음을 먹고,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게 얼마나 드문 일일지, 앞으로의 삶에서도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힘이 될지 한 순간 느껴졌다.
모레인호수에 갈 때는 하늘이 무척 맑았다. 그 곳에서는 각자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담한 호수를 한바퀴 도는데 어쩌다보니 각자 시간을 갖기로 한 가족들이 만나 또 함께 감탄하고 사진을 찍었다. 투명하게 맑은 물처럼 내 마음도 깨끗했다. 비가 자주 오는 밴프에서 맑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니 그저 기뻤다.
그렇게 밴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남편이 구워준 고기와 맥주를 먹거나 둘째가 만들어준 리조또를 먹었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많이 웃었고 들떴다. 엄마는 거실의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계속 살리면서 즐거워했다. 체력이 남아 다운타운 구경을 간 동생들은 설퍼산 기념품샵에서 내가 예쁘다고 하며 나중에 발견하면 사겠다고 했던 레이크루이스의 그림이 그려진 나무액자를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