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우리 엄마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에어비앤비

by 조각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훌훌 벗고 물에 발을 담그는 엄마. 등산의 끝 전망 좋은 곳에 도착해서는 동생의 스포티한 배낭과 카메라를 빼앗아 메고 아웃도어형 인간인척 사진 찍는 엄마. 자전거를 '아마' 탈 수 있다면서 일단 올라타 불안불안하게 몰다가 다친다며 소리치는 딸 얘기에 구시렁 거리며 내리는 엄마. 다 꺼져가는 모닥불에 열심히 부채질을 해서 불을 다시 살리고는 '봤지! 봤지!' 하며 신나게 자랑하는 엄마. 드라이브하는 내내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쉴 새 없이 산과 하늘에 감탄하는 엄마. 일주일 동안 캐나다 가족 여행을 하면서 나는 자주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고, 어처구니가 없었고, 웃음이 났다.


짧은 머리에 자그마하고 마른 체구, 청바지에 흰 운동화를 신고 빠른 걸음으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엄마를 보며 느릿느릿 뒤따르면서 저 귀여운 사람이 환갑이라는게 신기했다. 엄마는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1년 만에 만나 같이 캐나다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엔 무엇이든 맛있게 드시고 무엇이든 감탄하며 좋아하셨다. 불평 불만을 하지 않는 엄마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캐나다에 오기 전 퇴사한 동생과 휴학한 막내, 엄마 셋이 제주도 한달 살기를 했다. 너무 바빠 몇 년 동안 매일 새벽에 퇴근하느라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지 못하던 동생은 큰 맘 먹고 엄마랑 동생을 데리고 제주도에 갔다. 여행 초반에는 자꾸만 싸우느라 힘들어했고, 엄마도 동생도 내게 자꾸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나는 저 사람들이 캐나다에도 와서 3주나 여행을 할텐데 이 일을 어쩌나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서 함께할 마음을 먹으면서도 서로가 지겨웠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하소연 하는 전화가 줄어들고 따로 또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진들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그들은 제주도에서 비일상을 망치지 않는 법을 터득한 듯 했다. 나랑 남편에겐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가족들이 먼저 지지고 볶은 덕분에 캐나다에선 좀 덜 볶을 것 같았다.


그 한 달 덕분일까? 엄마를 염려 했었는데 엄마는 무척 잘 지냈다. 나와 남편이 준비한 여행 일정에 명랑하게 함께 하며 즐거워하셨기에 뿌듯하고 좋았다. 무리해서 3주 여행을 계획하길 잘했다 싶었다. 여행 하면서 자주 피곤했지만 환갑의 나이에 처음으로 멀리 비행기를 타고 와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엄마를 보면 괜찮았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기뻤다.


특히 내가 모르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밴쿠버 일정이 끝나고 로키 산맥의 밴프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10시간의 운전길 중간에 작은 마을의 에어비앤비에서 1박을 했다. 미국 로드트립을 하면서 시골의 에어비앤비에 자주 묵었는데, 항상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큰 개가 있고 주방이며 마당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서 주인의 세심한 배려덕에 편안하고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에어비앤비 문화를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시골의 비탈길을 오르니 아늑한 2층짜리 집이 나타났고, 아주 커다란 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큰 꼬리를 붕붕 흔들며 다가오는 개와 함께 주인이 나타나 우리를 2층 방으로 안내해줬다. 4명의 아이들이 지내던 곳이라 넓고 침대도 충분하고, 커다란 방이 책장으로 적당히 분리되어 있어 남편도 편하게 쉴 수 있을 듯 해서 고른 집이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 대학에 가고 모두 집을 떠나 그 방에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주인은 수다스러운 할아버지였는데, 딸이 한국 대학에 교환학생을 갔었다면서 반가웠는지 연신 말을 걸었다. 환영해주어 감사했지만 5시간 넘게 차를 타고 먼길을 왔는데 너무 오래 말을 하셔서 조금 피곤했다.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시고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로 저녁을 차려 식탁에 앉았는데 엄마가 너무 즐거워 하시면서 갑자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했다. 본인도 외국 할아버지랑 수다 떨며 사는 얘기 하고 싶다고, 시골 산 속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삶이 궁금하다고 했다. 엄마도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싶다고도 했다. 골든 리트리버가 중형견처럼 보일만큼 커다란 개 찰리가 다가와 손을 핥아도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기뻐하며 개를 쓰다듬으며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하는 엄마를 보니 왜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공무원 외벌이로 딸 셋을 키운 엄마. 가정주부로 알뜰 살뜰 아껴가며 딸들을 키우고, 늦둥이 막내를 대학에 보내고 이제서야 조금의 여유가 생긴 엄마는 호기심이 많고 용기도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캐나다 여행을 신나게 즐기고 있는 것은 호기심과 용기 덕분이었는데, 어떤 것이든 다 궁금하고 보고 싶고 해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으니 다 좋으셨던 것이고 환갑의 나이에도 먼 나라의 다른 삶이 궁금해서 갑자기 영어를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내게 익숙한, 불평 불만이 많았던 엄마는 어쩌면 사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던 것도 같다. 고작 일주일동안 캐나다에서 가족 여행을 이끌면서도 불만이 많아진 나처럼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랑함을 계속 갖고 있던, 큰 개와 외국의 삶을 궁금해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가족 여행을 이끄는 것을 버거워한 지난 일주일을 반성했다. 인생에 다시 없을 지도 모르는, 가족들에게 비일상을 선물할 수 있는 이 시간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귀엽고, 귀여운 게 최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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