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불만에 흔들리는 가족 여행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밴쿠버편

by 조각

밴쿠버에서의 여섯째 날까지 가족들은 많은 것을 하며 즐거워 했다. 스탠리파크에서 바닷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고, 해변 공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고, 골든이어스 캠핑장에서 캠핑도 했고,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마켓 구경도 하고, 세계 최초의 증기 시계가 매 시간 증기를 뿜으며 노래하는 것도 보고, 주말마다 열리는 팜 마켓도 갔다. 공원에서 달리기도 하고 낮잠도 잤다. 3박 4일, 4박 5일 정도의 시간을 겨우 내어 해외 여행을 해온 한국인에게 밴쿠버에서만 6일을 보내는 것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실 여행을 이끄는 내게는 이 여행을 3주로 계획한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친구들이 말릴 때 들을걸 그랬다.


가족 여행을 주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대만이나 일본, 괌 같은 곳으로 가는 단 3박 4일짜리 여행만으로도 얼마나 신경쓸게 많고 피로한지. 인터넷에는 요즘 자식과 함께 여행갈 때 꼭 지켜야 할 10계명(얼마나 더 가야하냐 금지, 이럴꺼면 집에서 해먹는게 낫겠다 금지 같은것들), 부모님과 함께 여행갈 때 꼭 지켜야 할 10계명(내가 알아서 할게 금지, 그냥 가만히 있어 금지 같은 것들)이 개그처럼 떠돈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 아주 작은 행동이며 그것들은 어떤 보편성이 있나보다.


나는 그 10계명을 보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애썼지만 내 감정은 내 것이 아닌 듯 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갈 때 꼭 지켜야하는 10계명을 지킬 수가 없었다. 자꾸만 짜증이 나고 입 밖으로 불만의 소리를 냈다. 남편은 지난 미국 여행 때 내가 깨달은 것을 일깨워주며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랬지. 나는 20억년 동안 물과 바람이 느리게 만든 그랜드캐년 앞에 서서 인간의 삶이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유한한지, 우리의 고민과 어려움, 미움은 얼마나 사소하고 작은지,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을 표현하며 살기에도 얼마나 짧은 생인지를 느끼며 눈물을 흘렸지 않은가. 내가 가족들의 행동에 짜증이 난 듯 보일 때마다 남편은 무슨 주문처럼 '20억년~'하고 속삭였다. 그러나 '20억년' 주문도 점차 힘이 약해졌다. '20억년은 무슨 20억년, 아 진짜 짜증난다.'의 상태가 되었다.


문제는 여행을 일주일이나 했는데 앞으로 이주일이 더 남았다는 것이다. 밴쿠버의 일정이 끝나면 차로 10시간 운전해서 가야하는 로키산맥의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을 보고 그 다음엔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넘게 날아가 토론토에 간다. 여행 일정도 내가 짜고, 숙소, 대중교통, 각종 즐길거리의 예약도 내가 했기에 갑자기 알아서 여행을 하라고 할 수도 없으나, 이렇게 가끔만 행복하고 대체로 피곤한 채로 남은 2주를 보냈다가는 1년만에 만난 가족들과 처음으로 다 같이 하는 해외 여행을 내가 망쳐버릴 것 같았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과,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그리고 내가 불만인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가족들에 대한 예민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먹는 것'을 대하는 것에서 몇년 간 쌓여온 불만이다. 나는 음식이 앞에 있으면 맛있게 먹지만 귀찮음이 식욕을 능가해 매일 똑같은 것을 먹거나 대충 먹는 사람이다. 자취할 땐 매일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고구마를 한박스 사서 매일 구워먹는 식으로 끼니를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동생들은 단 한끼도 맛 없는 것을 입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이 살 때는 그 차이가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내가 따로 살면서 가끔 만날 때 부딪히기 시작했다. 국내 여행을 가면, 여행은 주로 내가 준비하니까 내가 짠 일정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중간에 바닐라라떼를 먹어야겠다거나 젤라또를 먹어야겠다면서 사라진다. 속초 여행 중 부모님과 함께 물회 맛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둘째는 지금 점심을 반드시 삼겹살을 먹어야겠다며 엄마랑 아빠랑 나는 물회 먹으러 가라면서 막내를 데리고 사라진다. 매년 가는 가족 여행도 아니고, 몇년 만에 하는 고작 2박3일짜리 여행 중에도 꼭 갑작스럽게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어야만 된다며 따로 움직이는게 거슬렸다. 이런 일들이 쌓이자 한번은 오랜만에 만나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자리에 앉혀놓고, 더우니까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오겠다는 내게 동생이 바닐라라떼를 말하자 내가 갑작스럽게 화를 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잘못했다. 나는 통제 욕구가 강한 계획형 인간이고, 동생은 지금 하고 싶은걸 해야하고 계획같은 건 없는 인간이다. 둘이 누가 잘했고 잘못한 건 없고 그냥 사람이 다른 것인데 나는 과거부터 차곡 차곡 쌓아놓은 불만을, 동생이 전혀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 터트렸다. 차라리 가족 여행 중 삼겹살 먹겠다고 사라질 때 터트렸으면 조금 타당하기라도 했지..바닐라 라떼 먹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내가 잘못했다.


캐나다 여행에서도 비슷했다. 내 불만은 주로 음식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대체로 사람들과 지낼 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이해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가족들만 만나면 다른 인격이 되서 화가 불쑥 불쑥 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은 함께 자라며 쌓아온 서로에 대한 '과거'의 불만이 '현재'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들, 예를 들면 식사를 하는데 '아 좀 김치가 생각나는데, 핫소스를 가져올 걸 그랬네, 꿀 찍어먹으면 맛있겠다'는 말들에 부정적인 감정이 한칸 쌓였다. 여행 중이라서 새로운 것을 다 맛보고 싶어 집에 과일이 많은데도 이 과일 저 과일 사는 것에도 한칸 쌓였다. 모카 라떼를 사놓고 다 마시지 못해서 내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할 때도 한칸 쌓였다. 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 '저녁은 뭐먹어?'라고 묻는 말에 한칸 쌓였다. 그런 작은 일들에 즐거운 기분이 흔들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내 의지가 이렇게나 나약하나 싶었지만 나약한게 맞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 것을 줄여보려고 찾은 해결책은 식사와 관련된 것은 가족들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며 내 불만의 대부분이 음식을 먹는데 부지런하지 않은 나의 성향과, 음식에 부지런한 가족들의 차이에서 오니까.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인 특별한 여행을 나 또한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밴쿠버에서의 마지막 날 앞으로의 식사를 가족들에게 넘기면서 마음속으로 제발 나의 불만이 옅어지기를, 제발 이게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먹는 것 때문에 여행을 망치는 건 너무나 사소하다.

여행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동생과 나는 이렇게나 달랐다.




싱그러운 초록 안의 엄마. 커다란 나무에 비하면 음식 문제는 너무 사소하다.






keyword
이전 03화가족들에게 제일 좋은걸 해주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