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모두 다른 사람이다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계획편

by 조각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여행 가자는 말이 나왔다가 흐지부지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순간의 흥과 반가움 때문에 꺼냈던 말이지만 사실 바쁜 날들에 귀중한 시간을 함께 여행 갈만큼 잘 맞지 않아서 흐지부지 된 것일 수도, 누구 하나 총대 메고 준비하는 사람이 없어서일 수도, 마음은 굴뚝 같으나 사는게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주기적으로 함께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 눈에는 그 관계가 축복 같다.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며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는 뜻. 그런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족들과 3주간 캐나다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나의 20년지기 친구들은 다들 말렸다. 3주는 너무도 긴 시간이니 줄이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각각 만나 함께 고등학교에서 웃고 울었던 우리들은 서로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서로의 가족들도 잘 안다. 함께 있으면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관계이기에 장점과 단점도 속속들이 안다. 무엇이 도드라지고 무엇이 무난한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다 안다. 20년 정도를 함께 했는데 해외 여행은 딱 한번 가봤다. 몇년 전 3박 4일짜리 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로가 너무 좋아 꼭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정말 싫은 것을 하나씩 말해서 그것을 피해보자 했는데 정말 싫은게 여섯이 모두 다른 우리란, 여행을 준비하는 방식도, 여행지에서의 태도도,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모두 다른 우리란, 우여곡절 끝에 갔던 여행은 많이 웃고 흥겨웠지만 그 이후로 다 함께 다시 간 적은 없다. 바쁜 일상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설렘이 가득한 여행을 가면, 다들 일상에서보다 덜 양보하고 자기 주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여행에 대한 기대가 일상을 살아가는 기대보다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친구들은 모두 말렸지만 이번 기회에 엄마와 동생들에게 크게 잘해주고 싶었다. 딸이, 언니가 외국에 사는 건 (지금 생각할 땐) 지금 뿐이고, 평생에 한 번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이내, 좋은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부서질까 자주 걱정이 됐다. 나와 내 가족들은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는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설명하자면 파워J이다. 엄마도 동생들도 모두 즉흥적인 사람이며 계획하는 타이밍과 수준이 나랑은 너무도 달랐다. 내가 반년 전부터 비행기표를 검색하며 적당한 가격대의 비행 일정을 동생에게 공유하며 비행기표를 사라고 해도 동생은 자꾸만 미뤘다. 인천과 밴쿠버를 오가는 항공권을 150만원 수준으로 살 수 있었는데, 자꾸만 미루던 우리집 가족들은 한 명당 수십만원을 더 내고 표를 샀다. 나중에 동생이 하는 말이, 반년 전부터 왜 한달 남은 사람처럼 닥달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도 아닌데, 장거리 비행기표를 한달 전에 사는 사람이 어딨나. 나는 황당했다.

그 외에 로키(밴프, 재스퍼) 여행, 토론토, 나이아가라 여행 중 불편한 사위까지 함께 잘 묵을 수 있고 여행 동선과도 잘 맞는 숙소를 매일 검색해서 예약했고, 전 세계 사람들이 관광을 와 미리 예약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레이크루이스, 모레인 호수의 셔틀버스, 곤돌라, 나이아가라 폭포가 정면에서 보이는 유명 호텔 등을 하나씩 예약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 곳이 너무 인기가 많은 여행지라 부지런하지 않으면 좋은 것을 볼 수 없는데, 나는 가족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달리 원하는 것이 있는지 가족들에게 종종 물었다. 내 눈에 그들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좋아서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3주나 되는 긴 여행을 혼자 준비하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그들은 왜 관심이 없는가, 가고 싶은 곳이 있냐 보고 싶은 것이 있냐 하면 왜 다 좋다고 하는가. 그렇지만 나는 이미 남편과 8년이나 지내며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정말로 '다 좋고' 여행갈 곳을 미리 알아봐서 알아본 곳에 직접 가서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내 여행메이트 남편과 여행을 갈 땐 100% 내가 여행 계획을 짠다. 여행 계획이 다 나오면 여행이 임박했을 때 남편은 구글 지도에 갈 곳을 찍고, 가는 길을 확인하고, 그 곳의 유명한 음식을 검색한다. 먹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나와 달리 남편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 내가 알아보지 않은 음식을 챙긴다. 남편과 나는 오래 함께 여행했기에 그가 여행 계획에 동참하지 않는 것에 불만이나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다. 여행 중 그는 운전과 길찾기, 식당 찾기 등 힘든 일을 모두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들과 장기간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라 여행할 때의 우리에 대해 맞춰진 것이나 합의된 것이 없었다. 3주라는 긴 시간이 아니라 4박 5일 정도였으면 나 혼자 여행 계획을 다 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이 다가올수록 가족들이 자신이 원하는걸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보는 한국식 패키지 여행이 가장 잘 맞는 사람이었고, 둘째는 한라산 등반도 다녀오고 클라이밍을 취미로 하는, 체력 좋은 아웃도어형 인간이었으며 한끼라도 맛 없는 것을 입에 넣을 수 없다 말했으며, 막내는 캐나다 여행 중 가장 기대되는 것이 햄버거라 했다. 햄버거라니..... 그게 무슨......200만원짜리 비행기를 타고 와서 가장 기대되는 것이 햄버거일 수가 있는것인가....


그리고 나와 남편은 언제나 누워 살아온 와식 인간들, 캐나다에 와서 1년 동안 캐나다인처럼 아웃도어 활동을 늘려왔음에도 우리는 캠핑 가면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불멍하며 책을 읽고 해먹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다. 여행 계획을 미리 짠다 해도 그것은 숙소와 동선, 하루에 두군데 정도의 적당한 볼거리, 그 외에는 편안히 앉거나 피크닉매트를 깔고 누워 풍경을 즐기는 여행을 해온 사람들이다.


내가 여행 계획을 다 짜고 가족들에게 공유했을 때, 그제서야 한국에 있는 가족 대표인 동생은 이 언니가 미리 짠 것이 너무도 비어 있는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전 오후에 한 군데씩 구경을 하면 나머지 시간은 뭘 하는걸까 싶었는지 검색을 하며 이런 저런 곳은 안가는것이냐 했다. 나는 당황했다. 이 3주 여행이 내게는 너무도 바쁘고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늘리면 나는 몸살이 날 것만 같다. 그래서 동생은 자기가 혼자 놀러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했기에 3주나 되는 시간을 내내 같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동생처럼 체력이 좋고, 평생에 처음인 장거리 여행에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어했으나 타지에서 혼자 여행을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욕구를 맞춰줄 체력이 없고, 동생은 엄마를 더 모시고 다니기엔 혼자 있고 싶어했다. 수년 간 힘들게 일하다 퇴사하고 큰 돈 들여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기에 자기한테도 중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피곤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쳤다. 원하는 것이 너무도 확실한 우리 가족들. 자기 주장이 강한 우리 가족들. 그리고 너무 다른 성향의 우리들. 그들을 데리고 무사히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남편은 자기라도 애써보겠다 했으나 애초에 여행을 안좋아하는 집돌이 남편이 3주간 처가 식구들을 모시고 운전을 도맡으며 여행하는 것 자체가 그에겐 큰 무리일 것을 알기에 여행 중 더 애쓸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가족들이 밴쿠버에 올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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