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간 여행을 하며 내가 자주 뱉은 말이다. 어떨 땐 너무 지겨워서 그랬고 어떨 땐 너무 사랑해서 눈물이 나 괜히 그랬다. 엄마랑 동생 둘, 나의 남편과 캐나다 여행을 한 후 여행기를 쓰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시작하는데 오래 걸렸다. 이 여행은 혼자의 여행과도, 남편과의 여행과도, 친구와의 여행과도 달리 내 마음이 요동쳤기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어쩌면 평생에 한 번 일지도 모르는, 3주라는 긴 시간을 함께 여행 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마지막에 남은 선명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쓴다.
이민이든 유학이든 해외에 나와 사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날씨 좋은 여름 가족들이 내가 사는 밴쿠버에 여행 오기로 했다. 둘째 동생이 몇년 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막내 동생이 휴학을 해서 운이 좋게도 엄마랑 동생들이 함께 올 수 있었다. 몇년 전 엄마랑 동생들이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갈 때 고작 일본이라 가까운데도 직장 생활을 한 지 얼마 안되어 휴가를 낼 수 없었던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을 수가 있나 들떠 여행 계획을 짤 때 무리를 했다. 3주라는 긴 시간을 제안한 것이다. 내 스스로.
장거리 여행이 처음인 엄마는 무척 들 떠 이곳도 저곳도 가고 싶으시다 했다. 작년에 사진으로 보냈던 로키 산맥도 가고 싶고, 나이아가라 폭포도 보고 싶으시다 했다. 오로라도 보러 가자 했다. 나는 캐나다 남서쪽 끝 밴쿠버에 사는데 캐나다가 얼마나 큰 지 실감하지 못한 엄마는 캐나다를 떠올리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엄마는 이 여행이 60년만에 처음인 캐나다행이며 또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아셨고, 그 마음을 나도 알았다. 보고 싶은게 많을 만큼 엄마가 건강하시다는 것에 감사하며 제대로 효도하자고 결심했다. 3주간 밴쿠버 일주일, 로키 산맥이 있는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 일주일,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토론토 일주일짜리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년간 보지 못한 가족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작년에 봤던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던 로키를 가족들과 또 볼 수 있다는 즐거움,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기대되는 마음으로 신이 났지만, 이내 불쑥 불쑥 짜증이 났다. 우리 가족은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여 종종 산에 가서 점심을 먹지만 그림같이 화목한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엄마와 아빠는 늘 똑같은 '성격 차이'를 이유로 30년도 넘게 매일 매일 다투고 나는 한두달에 한번 지방에서 친정에 갈 때마다 부모님은 나이가 드셨는데도 지치지도 않는지 어떻게 같은 이유로 한결 같이 싸우고 계신지 그럴꺼면 졸혼하라고 외쳤다. 그럴때면 황당하다는 듯이 졸혼은 안한다고 하시면서 왜 맨날 싸우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아빠는 동행하지 않으셨다. 사실 어떤 여행에도 동행하지 않으신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함께 여행을 가면 무조건 싸우고, 그 싸움이 지겹다는 마음이 가족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자신이 건사한 가족들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홀로 조용히 좋아하신다는 것을 안다.
내 경우에는 함께 있으면 피곤하고 지치지만, 진정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내가 진심으로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몇 안되는 소중한 관계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다는 게 문득 문득 감사해서 장녀로서 만남을 주도해 왔다. 그렇지만 아빠의 유전자를 빼다 박은 나는 엄마의 성향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많이 부딪혀왔다. 여전히 그렇다. 단지 엄마가 우리를 무척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잘 해드리려 노력할 뿐이다.
게다가 나와 둘째는 자매라는걸 믿을 수 없게 서로 다른 사람이다. 아마도 엄마와 아빠가 어느 것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 그 유전자를 각각 받은 나와 동생이 이렇게도 다른 사람이겠지. 이번 여행 중 엄마는 내 배에서 태어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신기할 따름이라며 새삼스럽게 놀라워 하셨다. 이 다름으로 함께 사는 내내 싸워왔고 서로를 미워했다. 내가 졸업 후 자취를 하면서 우리 사이가 나아졌는데 타지에 혼자 살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내가 조금쯤 친절해지기도 했고, 방송 제작 쪽 일을 하는 동생이 매일 새벽에 들어올만큼 바빠 만나는 시간이 너무 적어 서로의 싫음을 볼 새가 없는게 이유이기도 했다. 서로 미워했던 시절은 희미해지고 어른이 되어 자매라는 애틋함이 남은 나는 둘째가 좋아하는 것들을 캐나다에서 골라 보여주고 싶었다.
막내는 나보다 11살이나 어린 늦둥이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도 자기 주장이 모두 센 가족의 터울 많은 막내로 살며 눈치 있게 행동하는 능력이 발달해서 이번 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아직 학생인 막내의 비용을 나머지 가족들이 부담하면서 화목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그에게 기대었던 것도 같다. 미안하고 고맙다.
여기에 순하고 다정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여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결혼한지 5년이 되도록 처제들에게 말 놓지 못하는 남편까지 다섯명이서 3주를, 휴양지도 아닌 해외를 함께 여행했다.
엄마는 딸들과 여행할 때 무엇을 조심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공부해 온 사람처럼 다른 모습으로 기쁘게 여행을 누리셨고, 둘째와 나는 서로의 다름에 진절머리 내며 새벽까지 다투었으면서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이 여행을 지속했는지 결국에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힘들었던 것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꾸만 지난 수십년의 '과거'를 줄줄이 가져와 과하게 감정을 휘두르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수십년의 과거를 함께 하지 않은 남편의 이성적인 판단과 내게 해주는 조언 덕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혼자서 숙소를 고르고, 동선을 짜고, 각종 예약을 하던 몇 달과 감정적으로 널뛰었던 3주를 지내며 해외 살이 하며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지고 그러려니 할 수 있어진 나는 온데간데 없어진 것 같아 당황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무탈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거워했던 순간들이 내 안에 보석처럼 남았다.
이슬아 작가가 '끝내주는 인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유년기를 돌아보다가 어떤 일이 좋은 일이었는지 안 좋은 일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은 사실 하나니까.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맞닿아 있으니까. 좋은 이야기는 두 가지를 동떨어진 것처럼 다루지 않는다."
내게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주는 가족들. 상처 주고 상처 받고, 걱정하고 응원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던 3주가 내게 남긴 기쁨과 슬픔을 하나씩 꺼내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