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제일 좋은걸 해주고 싶었는데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밴쿠버편

by 조각

무리는 내게 무리이다. 특히 몸이 힘든 것을 싫어해서 조금이라도 감기 기운이 있을 것 같으면 바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약 먹고 침대에 눕는다. 헬스장에서 PT를 받을 때도 마지막 무리가 근육을 만드는 것일텐데 일부러 미리부터 엄살을 떨어 마지막 근육 쓰는 것을 앞당겼다. 친구들이랑 지리산을 오르다가, 함께니까 할 수 있다고 성화인 애들을 물리치고 중간에 내려왔다. 약 한달 간 미국 로드트립을 할 때도 3~4일에 한번은 3시부터 에어비앤비에 들어가 푹 쉬도록 일정을 짰다.


그런 나인데, 가족들이 내가 사는 캐나다에 3주간 여행 올 때 제일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들을 돌보는 K-장녀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족에게 잘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을 어쩌랴. 내 노트북은 20살 때 이후로 사본 적도 없으면서 두 동생들에게 노트북을 사주고, 교환학생 가는 동생에게 비싼 카메라를 선물하거나 100만원의 용돈을 줬다. 엄마를 모시고 호캉스를 했다. 아빠한텐 술을 보내고 계좌이체를 했다. 제각각인 가족들에게 맞춤형으로 잘하려 노력했다. 전형적인 장녀는 아니다. 나는 생색왕이기 때문이다. 안 그랬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었겠지만, 이게 나인걸. 잘 해준 후 떵떵거리며 발랄하게 '고마워~ 언니 최고! 큰딸 최고!'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캐나다 여행에 내 기준 무리가 곳곳에 들어갔다. 캐나다에 와서 제일 좋아보였던 것이 온 가족이 공원에서 바베큐를 먹는 것이었기에 가족들이 밴쿠버에 도착한 첫 날 첫 끼를 외식하지 않고 무쇠 그릴과 밑반찬, 각종 소스, 피크닉매트, 캠핑의자를 바리바리 챙겨 공원에 나가 소고기를 구워 먹였다. 캐나다의 소고기는 풍미가 달라 그릴에 구우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그 맛을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기뻤고, 무쇠 그릴에 굽는 고기 맛을 처음 본 가족들은 너무 맛있다며 엄지척 하며 신나게 먹었다. 돌아와서 뒷 정리가 한가득이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해변 공원에서 북적 북적 바베큐를 먹는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 나는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식사를 다 한 후 토끼가 뛰노는 공원을 나란히 걸을 땐 자꾸만 걸음을 늦춰 가족들의 뒷모습을 찍었다.

내 키보다 작은 냉장고를 열심히 비운 후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채워놨다. 평소 음식이 쌓여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두가지 종류만 사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과일과 디저트와 음료들, 아침으로 먹을거리들을 잔뜩 채웠다. 평소에는 먹지 않는 망고, 크렘브륄레 같은 것들도 샀다. 도착한 첫 날 마트 구경이 하고 싶다기에 함께 마트에 가서 먹고 싶다는 것들도 다 샀다. 체리, 납작복숭아, 블루베리, 케찹맛 감자칩 같은 것들을 더 샀다. 냉장고엔 조금의 공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매일 냉장고와 씨름해야 했다. 음식을 그만 샀으면 좋겠는데도, 외국에 왔으니 이것 저것 먹어보고 싶겠지 싶어 뜻대로 했다.


여러 무리들이 있었지만, 무리의 최고봉은 일주일 간 밴쿠버 여행을 하는 중간에 캠핑을 끼워넣은 것이다. 동생은 1년도 넘게 매일 솔로 캠퍼의 영상을 봐왔다. 캠핑에 로망이 있지만 일이 너무 바쁘고 면허도 없어 남의 캠핑만 부러워하며 볼 뿐이었다. 내가 캐나다에서 캠퍼가 되었을 때도 너무 부러워했다. 나는 동생에게 밴쿠버의 캠핑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집은 12평, 거실 겸 주방에 방 하나가 있는 1.5룸이다. 우리의 캠핑 장비로도 이미 수납이 포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밴쿠버를 떠나며 캠핑 장비를 처분하는 사람에게서 3명이 더 캠핑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왔다. 커다란 텐트와 캠핑 의자들과 침낭들을 이곳 저곳에 쑤셔 넣어 가지고 있었다. 2명이 캠핑 갈 때도 뒷좌석을 접은 후 캠핑 장비가 차를 꽉 채웠는데 3명을 더 태운 후 짐을 실을 수가 없어 천장에 메다는 짐 가방도 샀다. 캠핑 가기 직전 배송 온 짐 가방이 잘못 와 결국 쓰지 못해서, 이불을 의자에 깔고 앉은 후 침낭들을 품에 안고 갔다. 심지어 고무 카약까지 챙겼다.


2명만 다니다 5명이 먹을 음식과 음료, 짐을 챙기는 것이 정신 없어 주방 수납장 앞에 쪼그려 앉아 멍을 때리니 동생이 전쟁통인 사람처럼 보인다며 자기가 하겠다 했다. 방송 제작 일을 하는 동생에게 이 정도 난리는 난리 축에도 못끼기에 힘들어하는 내가 웃기다 했다. 그런 동생은 캠핑장에 도착해서도 남편과 함께 척척 텐트를 쳤다. 영상에서만 보던 걸 실습하는 듯 진지했다. 나머지 가족들도 키 큰 침엽수로 둘러싸인 넓은 캠핑장과 일렁이는 햇빛에 감탄하며 캠핑 의자도 나르고 식탁 위의 나뭇잎도 빗자루로 쓸며 세팅을 도왔다. 모든 세팅을 마치고 캐나다 국민 브랜드 팀홀튼에서 사온 샌드위치와 랩, 도넛과 커피를 먹었다. 새소리가 가득한데도 고요하게 느껴지는 숲 속에서 연신 너무 좋다고 표현하는 가족들을 보니 이 순간으로 충분했다.

음식을 먹고 이 캠핑장에 있는 아름다운 알루엣 호수를 보러 갔다. 웨건에 고무 카약을 실어 끌고 갔다. 내가 가족들에게 좋은 걸 다 해주고 싶은 바람에 남편이 덩달아 고생을 해주어 고마웠다. 남편은 몸이 힘든 것보다 내내 소란스럽고 크게 감탄하며 웃고 투닥거리는 우리 가족 분위기에 정신 없이 놀라는 중이었다. 결혼한 후 5년 간 처제들에게 말을 놓지 못하던, 처가댁에서 1박을 해 본 적도 없는 남편은 걸음마 떼자마자 전력 질주 해야 하는 상황에 어찌 어찌 적응하고 있었다. 웨건을 끌고 걷다 보니 빛망울이 반짝이는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보이자 동생들이 우와!!!!하고 소리치며 만화에 나올 듯 우스꽝스럽게 뛰어갔다. 영상에 담긴, 팔과 다리를 좌우로 한껏 흔들며 달리는 동생들과 깔깔거리며 웃는 엄마의 목소리, 세상 당황한 표정의 남편까지. 너무나 시트콤적인 장면을 담으며 나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장녀로서 우는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저녁엔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불멍 시간을 가졌다. 장작을 많이 준비했고 커다란 크기의 마시멜로우도 멀리 있는 마트까지 가서 사왔다. 음악을 듣고 마시멜로우를 굽고 수다를 떨었다. 엄마는 불멍이 처음이라 했다. 무엇이든지 금방 잘 하는 엄마는 장작을 넣고 불을 크게 피우는 것에 재미를 붙여 꺼져가는 불에 부채질을 해 불을 살리고 태우는 것에 아이처럼 기뻐했다. 소녀 같았다. 밤하늘에 별이 떠오르는 것을 함께 보았고, 나와 가장 닮은 막내랑은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좋음을 서로에게 열심히 표현했다. 타닥 타닥 장작 타는 소리, 가끔씩 떠오르는 불티, 불그스름한 빛이 일렁이는 웃고 있는 가족들의 표정.

지나고 나서 동생은 캠핑한 날이 가장 특별했다고 했다.


좋은 걸 해주고 싶어서 애썼고 즐겁게 누리는 가족들의 모습에 나는 구체적인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온전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 기쁜 가운데 우리는 자주 부딪혔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거슬리거나 상처를 주었고 모두가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각자의 불만이 새어 나왔다. 무던한 남편은 묵묵히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평소라면 넘어갈 법한 일들임에도 내게 예민하게 말했고 나는 가족들이 보지 않을 때 그에게 자꾸 사과를 해야했다. 언제나 싸우는 엄마와 동생은 아침 먹으며 투닥거리다가 엄마가 울며 방에 들어갔고, 나는 이 여행을 잘 하고 싶어 열심히 중재했다. 막내는 흔한 일이라는 듯 에어팟을 끼고 설거지를 했다.


9년 전 독립해 자취를 하다가 조용한 남편과 결혼해서 5년을 산 나는 오랫만에 가족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생활이 적응이 안됐다. 좋은 여행에 대한 책임감과는 별개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가 빠른 속도로 쌓였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은 하루에 3만보도 걸을 수 있는 체력의 소유자들이고 멀리까지 여행 왔기에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하고, 끊임 없이 먹고 싶어했다. 인생에서 몇 안되는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갖고 있다해도, 무리가 무리이며 생색왕인 나는 자주 인내심이 바닥 났다. 내가 이렇게 무리를 하고 있는데 왜 가족들은 자기 맘대로 하는지, 나는 이렇게 참고 있는데 왜 다들 하고 싶은 것, 기분 나쁜 것을 다 표현하는지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쉬면 나아질 수도 있는데 우리집에서 묵고 있어 가족들의 필요를 다 챙겨야해서 밤 늦게 잠들 때까지 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가족들이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도, '다들 나한테 말걸지마, 조용히해'를 시전하며 피곤함을 티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의 나는 머리가 아팠고, 정말이지 피곤했고, 밤 늦도록 간식 타령을 하는 동생들에게 불만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준비해서 이끌고 있는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서 아주 조금만 멀어져서도 보이는 것을 그 때는 왜 몰랐는지. 가족들 모두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캐리어 펼 공간도 충분하지 않은 좁은 집에서 복닥이고, 설거지도 다 하고, 과일도 알아서 챙겨먹고, 중간 중간 나와 남편을 벤치에서 쉬게 해주고 자기들끼리 구경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짐을 나르고, 청소 하는 일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 며칠만 지나고 나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가족들의 배려와 노력을 보지 못한 탓에 나는 밴쿠버에서의 일주일이 가끔 행복하고 대부분 피곤했다. 오래 가족을 맞이해본 적도 없고, 함께 오래 여행해본 경험도 없던 나는, 가족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리를 하다 제 풀에 지쳐서는 그들의 행동들에서 지난 수십년 간 싫어했던 면을 자꾸만 발견하느라 밝고, 잘 웃고, 자주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명랑한 우리 가족들의 특별함을 자주 잊었다.

즐거움과 버거움이 뒤섞인 채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