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먹고 싶고, 좋은 걸 보면 다시 와 함께 보고 싶은 마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큰 이유는 좋은 것을 함께 하고 싶은 '관계'에 있다. 1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 와서 경험한 것들 중 가족들과 함께 다시 누리고 싶은 가장 좋은 것은 캐나다 로키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작년 여름 집 구하는 것이 어려워 9월 1일에 새로운 집에 들어가기 전 살 곳이 없었던 2주 동안 로키 여행을 했다. 대자연에는 관심이 아예 없어 유럽이나 휴양지로만 여행 다녔던 나는 캐나다 로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잘 알지 못한 채 2주나 머물던 로키는 어딜가나 마주치는 엘크, 곰, 산양 같은 야생동물과 투명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호수,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절경의 산세가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움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고 30분만 이동해도 난생 처음 보는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또 나타나는 그런 곳이었다. 가족들을 내가 사는 밴쿠버로 초대하면서도 꼭 로키 여행을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전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여행지로서 좋은 위치에 호텔을 잡는 것이 어려운 곳이라 10달 전부터 5명이 함께 묵을 수 있는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비행 등 여행 일정도 로키에 잡아놓은 숙소 일정에 맞춰서 준비했다.
로키 여행은 밴프 국립공원 3박, 재스퍼 국립공원에서 2박으로 준비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밴쿠버의 1.5룸짜리 좁은 우리집에서 다섯명이 복닥복닥 지내느라 가족들이 모두 고생을 했는데 밴프 다운타운에 잡아놓은 통나무집은 거실과 주방, 침실 하나에 2층에는 퀸사이즈 침대 2개가 있고 화장실도 2개가 있어 무척 쾌적했다. 10시간의 이동 끝에 숙소에 들어서며 가족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기쁜 마음은 아마도 내가 제일 컸다. 3주짜리 가족여행을 준비해온 수고로움도, 우리집에서 묵으니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야 했던 일주일 간의 피곤함과 불만스러움도 일순간 날아가는 듯 했다. 남편과 1층의 침실에 우리의 짐을 풀어놓고 가족들에게는 2층의 넓은 공간을 내어주며 밴프에서의 일정을 브리핑했다. 좀 누워서 쉬다가 바우강변을 걸으며 산책하고 다운타운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폭신하고 편안한 하얀 침구에 누워 생각했다. 가족여행이 불만 없이 즐거우려면 몸이 편안한 게 필수라는 것을. 지난 일주일 동안 가족들은 좁은 침실에서 지내고 나랑 남편은 거실 겸 주방에서 지내느라 눕고 싶어도 누울 수가 없었다. 잘 시간이 되어서야 이불을 펴고 누울 수 있었는데 가족들이 밤 늦게까지 간식을 먹고 깨어있어서 쉴 수가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없고 조용히 있을 수도 없어서 나의 스트레스 지수가 많이 올랐다. 그런데 넓은 숙소에 오니 가족들은 알아서 2층에서 쉬거나 거실에서 간식을 먹고 나랑 남편은 방문을 닫고 조용히 누워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여행 가이드처럼 일정을 확인하고 시간을 체크하는 일이 그다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행다닐 때 원래 내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방에서 쉬다 나와 산뜻해진 기분으로 밴프에서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통나무집에서 나오자마자 엘크 한마리가 유유히 도로를 건너갔다. 우리 가족들은 한껏 고양된 기분을 안고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이동했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다운 타운과 한 폭의 그림처럼 걸려있는 산의 모습에 모두 신나하며 바우강을 찾아 걸었다. 바우강이 점차 가까이에 보이자 다들 달리기 시작했다. 고려 청자같은 빛깔의 물이 빛나고 있기에 그저 걷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한참을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우강은 밴프 다운타운을 굽이 굽이 흐르는데 마침 예술의 거리처럼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강과 나무를 따라 걸으며 조각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보물 같은 자연을 표현한 작품들이라 곰과 산과 호수들이 주제여서 인상 깊었다. 엄마랑 동생들이랑 남편이랑 같이 로키의 강가를 걷고 있으니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나는 그때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가 아니기에 책임감도 조금쯤 가벼워지고, 편한 침대에서 쉬고 나왔기 때문일까, 로키는 내게도 사는 곳이 아니라 여행지이기 때문일까, 가족 여행을 하고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즐거웠던 것 같다.
바우강을 따라 걷다보니 다들 무척 좋아해서 옛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 나왔다던 바우 폭포까지 가기로 했다. 아마 왕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가는 길에 멋진 뿔을 가진 엘크가 풀을 뜯고 있어 한참 구경하고, 한무리의 말이 지나가서 또 구경하고, 고려 청자 색 물과 아기 캐나다 구스를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그렇게 여유롭게 한걸음 한걸음 누리며 바우 폭포까지 가서 폭포를 바라보다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다운타운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으려고 동생들이 검색한 라멘집에 찾아갔다. 밴쿠버를 떠나면서 식사 관련해서는 내가 신경쓰지 않기로 해서 따라만 가면 되서 홀가분했다. 진작 이렇게 할걸 왜 혼자서 여행 일정이며 음식이며 모든 것을 책임지려 했는지, 괜히 그러다가 일주일동안 가족들에게 짜증만 많이 냈다. 어리석었던 시간이 일주일로 끝나서 다행이다.
라멘집에 가는 길 어디에나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줄이 길었다. 역시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여행지답다. 라멘집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면 될 줄 알고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1시간 30분이 지나 밤 9시가 되었다. 배고픔에 기진맥진해진 우리는 더 기다려도 차례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자리가 있는 다른 식당으로 겨우 찾아갔다. 간단한 면류를 파는 식당이었는데 밤 9시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서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고 내일부터는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숙소에서 해먹기로 했다. 내가 만약 식사까지 맡고 있었으면 이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텐데 가족들이 배고픈 상황에 처한 것이 내 탓이 아니라 나도 괜찮았다. 취사가 되는 숙소를 예약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
그렇게 밴프에서의 첫 날이 만족스럽게 지나갔다. 가족 여행을 또 가게 된다면 몸이 편안해야 하고, 여행 준비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남은 이주 간의 로키와 토론토 여행은 언제나 꺼내어 웃을 수 있는 소중하고 즐거운 조각들로만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