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사랑이 뒤섞인, 형제 자매라는 관계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나이아가라 폭포 첫날

by 조각

지난 밤 엉엉 우는 엄마를 달래고 둘째랑 긴 대화 끝에 오해를 푸느라 진이 다 빠져서 잠은 잘 잤다. 새벽 한 시에 내게 공격스럽게 말하던 남편과도,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다던 둘째와도 데면데면한 아침이었다. 어젯밤 나와 둘째가 거실에 있는 동안 대학생인 막내는 엄마랑 한 방에서 노트북을 펴고 대외활동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또 흑흑 하고 울기 시작해 무척 당황스러웠다며 내게 와 속삭이듯 일렀다. 감정 과잉인 엄마랑 맨날 싸우는 둘째랑 사느라고 막내는 둘째보다 8살이나 어린 진짜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컸나보다. 가족들이 싸우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자기 만의 세계로 들어갔던 막내의 삶이 상상이 됐다.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하고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해서 자주 다투는 우리 가족들 중 유일하게 감정적 동요가 있을 때 입을 다무는 사람인 막내가 왜 이렇게 컸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막내에게 "너도 언니가 자꾸 짜증내서 힘들었니..."하고 찌질거렸다. 막내는 조금 뜸을 들인 후에 "아냐 언니. 나는 다 좋았고 너무 고맙기만 해" 하고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 참. 늦둥이 답지 않다.


어색한 분위기의 아침이었지만 여행 중이라 이 시간이 길어질 수가 없었다. 오전에 토론토의 버스터미널에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야했다. 블로그 등을 검색해보니 지하철에서 내려서 터미널까지 찾아가는 길이 복잡하고 안내가 안되어 있어서 헷갈린다고 해서 서둘러 나가 급히 움직였다. 일찍 움직였고 혼자 미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반년 씩 살아본 둘째의 능력 덕에 수월하게 터미널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한 버스에 잘 탔다.


2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반년 넘게 준비한 3주 간의 가족 여행이 이제 단 3일만 남았다. 어찌되었든 갈등을 해결하고 나서 홀가분해진 줄 알았는데 지치고, 상처받고,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던 스스로가 싫고, 동생이 기쁘게만 여행하지 못한게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도 가족들이 볼까봐 옆과 뒤를 살펴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해가 쨍쨍한 한여름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했다. 서브웨이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날이 너무 더워 팀홀튼에서 커피를 마시고 걷고 있는데 기분이 올라오지를 않았다. 어찌 어찌 일상적인 양 말하고 웃고 있는데 남편이 눈에 띄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10년을 함께 한 그는 가라앉은 나를 눈치채고 조용히 위로를 해주고 있는 거였다. 본인도 피곤하고 힘들텐데도 내 걱정을 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이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더위를 식힌 가족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앞까지 갔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폭포는 세찬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어 시원했다. 물빛은 청아했고, 커다란 무지개가 폭포와 하늘을 선명하게 가르고 있었다. 사실 폭포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아 기대가 없었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는 괜히 그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너무도 힘 있고 멋진 광경에 한 순간 모두들 신이 났다. 내내 가라앉아 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인들이 북적 북적 모여 대자연의 멋짐에 웃으며 감탄하고 있는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저 아래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앞까지 가는 크루즈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타있었고,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배와 미국에서 출발하는 배가 번갈아 가면서 서로 손을 흔들고 있는게 보였다. 아주 멀었지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막내는 이렇게 커다란 무지개와 폭포는 처음이라며 물고기처럼 팔딱거렸다. 너는 이십년 인생에 처음이지만 나는 서른 몇 해만에 처음이고 엄마는 육십 해만에 처음이란다. 엄마는 어제 30분도 넘게 흑흑 울던 게 언제냐는 듯이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폭포를 보고 주변 사람들한테 헬로우! 뷰티풀! 하면서 말을 걸었다. 무슨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정적인 풍경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동적인 풍경을 더 좋아하는 둘째도 신나게 돌아다니고 막내와 서로의 인생샷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남편은 액션캠을 꺼내들고 명랑하게 즐기고 있는 우리 가족들을 찍었다. 모두 키가 작은 우리 가족들 위로 20cm 넘게 우뚝 솟은 그가 찍은 우리들은 미니미 같겠지? 그가 담은 우리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렇게 한참 나이아가라 폭포를 즐기다가 호텔 체크인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큰 마음 먹고 통유리창 밖으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호텔을 예약해뒀다. 폭포 바로 앞에는 세 개의 호텔이 있는데 아주 많은 리뷰 글을 섭렵해가며 공들여 고른 호텔이었다. 가족들은 좀 더 놀겠다고 해서 좋은 방이기를 바라며 들어선 방에서 나와 남편은 감탄을 했다. 23층의 룸 한 면 전체에서 거대한 폭포를 위쪽에서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세찬 폭포는 끝 없이 푸르게 부서졌다. 공들여 고른 보람이 있었다.

호텔에서 해피 아워에 술을 한 잔 마실 수 있어서 나는 나가고 싶었는데 남편이 쉬고 싶어 해서 이제 들어온다는 둘째에게 나오라 하고 바에 내려갔다. 둘째랑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 즐거운 대화를 했다. 둘째도 어제는 감정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나이아가라 폭포가 빠르고 확실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날려주었기에 우리 둘 다 기분 좋게 얘기 할 수 있었다. 5년 넘게 새벽에 퇴근하느라 마주칠 시간도 없던 둘째랑 사는 얘기를 했다. 한 집에 살던 우리는 이제 서로 모르는 시간을 산다. 그 세월이 10년이 되었다. 나는 둘째가 안 아프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 바쁘게 사는 와중에 아주 가끔 만나 안부를 묻고 슬픈 일을 위로하고 좋은 일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무심하고, 낯간지러운 표현을 극도로 싫어하는 동생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 때 알았다. 내가 세상에서 진심을 다해 싫어했던 것이 동생인데, 세상에서 진심을 다해 아끼고 행복하길 바라는 것도 동생이다. 자매라는 것은 참 알 수 없다.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 막내가 춤 추며 반겨주었다. 엄마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막내는 엄마가 한시간 째 저러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이게 무슨 호강이냐며 고맙다 큰 딸 최고다 하며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또 "역시 내가 최고지?" 하며 우쭐거렸다. 퀸 사이즈 침대 두 개가 있는 방과 소파 베드가 있는 방이 분리되어 있어 남편도 문을 닫고 누워 편히 쉬고 있었다. 다 잘 된 것 같다.


동생들이 사 온 초밥으로 저녁을 먹고, 밤 10시에 한다는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불을 다 끄고 기다리다 10시가 되었는데 불꽃 놀이 소리만 펑펑 들릴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방에선 보이지 않는 위치였던 거다. 어쩜 시트콤적인 상황이 자꾸만 반복되는지, 우리가 바보 같다며 낄낄 웃고 내일은 밖에 나가서 보자며 다들 씻고 홀가분하게 잠들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라앉을 뻔한 긴 여행이, 낯설고 황홀한 풍경과 서로를 아끼는 마음 덕에 괜찮아진 다행스러운 날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