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간의 캐나다 가족여행 끝!!

엄마랑 딸 셋(+사위 한명)의 3주 여행기 - 마지막날

by 조각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설레는 것도 같고 즐거움이 밀려온다. 엄마랑 동생들이랑 남편이랑 3주 간의 캐나다 여행을 마치는 날,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에서 다시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토론토로 돌아가는 길의 기분이 그랬다. 마지막 날은 토론토 시내에서 기념품을 위한 쇼핑을 한 후 에어비앤비에서 자고 다음날 오전 가족들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나와 남편은 밴쿠버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길고 길었던 캐나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부터 엄마랑 동생들은 시간이 안갔으면 좋겠다! 한국에 가기 싫다! 더 있고 싶다! 하며 아쉬워 했는데 나는 여행이 끝나가는게 좋아서 표정을 숨기느라 애써야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들과 3주나 아름다운 것을 함께 누렸다는 행복감도 무척 컸지만, 행복감은 행복감이고 여행을 주도하는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좀만 있으면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토론토에 도착해서 캐리어 맡아주는 어플을 이용해 어떤 편의점에 캐리어를 맡기고 세인트 로렌스 마켓에 갔다. 남편은 캐리어 맡기는 어플도 써야 하고 우버 택시도 불러야 하고 그도 3주 간 고생이 너무 많았다. 세인트 로렌스 마켓은 과일과 채소, 특산품과 기념품을 팔고 음식들도 파는 지역 마켓이라 먹고 싶은 메뉴를 하나씩 사서 테이블에서 만나 함께 나누어 먹었다. 엄마랑 동생들이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줄 메이플 시럽이며 메이플 쿠키 같은 선물을 사는동안 나랑 남편은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쉬었다. 3주 간의 노고를 서로 칭찬하면서, 집에 가면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시시한 얘기들을 했다.


토론토 시내의 커다란 쇼핑몰에도 들르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우버를 타고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가족들과 함께 대화하며 마무리를 하기 위해 일부러 거실 겸 주방에 침대가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침실이 하나 더 있는 구조의 방을 빌렸다. 여행의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 써서 인테리어가 특별히 예쁜 집을 골랐기에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다. 잠시 쉬다가 가족들이 메이플 쿠키를 더 사야겠다면서 마트에 갔다가 오는 길에 저녁거리를 포장해 왔다. 마침 근처에 한식집이 있어서 뚝배기불고기, 비빔밥, 얼큰 순두부찌개 같은 것들을 잔뜩 사왔길래 기쁘게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메뉴를 보자마자 "와 김치다!" 하고 외쳐서 가게에서 김치를 더 줬다면서 좋아하셨다. 여러 명이 외국 여행을 하면 음식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은데 이번 여행 내내 엄마가 동생들한테 많이 맞춰줘서 한식을 처음 먹었다. 막내가 캐나다 여행에서 제일 기대했던 게 햄버거인 바람에 각종 햄버거 브랜드를 섭렵해서 자주 햄버거를 먹고, 군것질을 위해 식사를 간단히 먹느라고 서브웨이나 팀홀튼의 샌드위치류를 먹어왔기 때문이다. 엄마가 음식으로 힘들어하시지 않은 덕에 그런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고추장의 맛있음에 감탄하며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엄마가 이번 여행에서 자식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셨음을 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엄마는 이 모든 걸 예약하고 안내하고 운전하고 식당 고르고 음식 포장하고 빨래 하는 모든 것을 자식들이 다 하는데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따라와서 불평하면 되겠냐며, 덕분에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여행을 했다고 하셨다. 서로가 애쓴 부분을 알아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식사를 다 하고 남편과 아래층에 있는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위층에서 동생들이 불렀다. 올라가보니 침대에 둘이 누워서는 나보고 오라고 했다. "뭐냐 귀찮게~" 하며 괜히 툴툴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막내가 엎드려서 일기를 쓰고 있길래 "이렇게 시끄러운데서 일기가 써져?" 라고 물으니 "입으로 소리내면서 쓰면 돼~" 라며 진짜로 소리내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바보같은 언니가 옆에 누워 있다.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런 시덥지 않은 문장이었다.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둘째는 뭐라 뭐라 계속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쓸데 없는 말이 분명하다. 동생들이 귀엽긴 귀여워서 훈훈한 기분으로 누워있었는데 이내 귀에서 피가 날 것 같고 또 다시 정신력이 소진되며 지치기 시작했다. "얘들아 제발 조용히 속삭이듯 말해줄래? 귀가 아파"라는 내 요청에 이 녀석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내 귀에다 대고 쉬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귀를 막으며 제발 그만하라고 하는 내게 낄낄거리며 끊임 없이 수다 공격을 하는 동생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내 마음에 힘이 되어줄.


그렇게 밤이 와서 잠을 자다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위층으로 올라왔는데 왜인지 불이 다 켜져있고 엄마랑 둘째가 뜬 눈으로 앉아있었다. 왜 그러냐고 하니 울상인 얼굴로 바퀴벌레가 열 마리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캐리어나 옷에 들어갈까봐, 몸에 기어오를까봐 못자겠어서 불 켜놓고 밤 샌다고 했다. 참... 캐나다에 사는 1년 간 평생 여행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여행을 하고 있는데, 어느 한 번도 별 일 없이 지나간 적이 없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지은지 1년도 안 된, 너무나 감각적으로 예쁘고 깨끗한 이 집에, 평점도 5점 만점에 가까운 이 집에 그런 문제가 있을 줄이야. 엄마는 혹시 몰라서 열어 놓았던 캐리어의 짐을 다 털고 잘 잠궈놨다고 했다. 어차피 비행 시간 14시간이나 되니 밤 새도 비행기에서 잘 잘 수 있겠다며 편한대로 하라고 하고 아래층에 불을 한 번 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새끼 바퀴벌레 한마리가 책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착하고 말았다. 순간 끔찍한 기분이 들어 다시 불을 끄고 위층으로 올라와 엄마랑 동생 옆에 나도 앉았다. 그런데 너무 졸리고, 나는 차박 캠핑으로도 미서부 로드트립을 한달이나 했고, 곰과 쿠거가 사는 캐나다의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이고, 밴쿠버에 도착해서 집을 못구하는 동안 살던 민박집에서는 샤워하는 중에 벽에 기어가는 지네를 보고 있어야 했는데 이깟 바퀴벌레가 대수인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자러 간다~ 하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주 달게 잤다.


다음날 아침, 뜬눈으로 밤을 새운 엄마랑 동생이 그랬다. 용맹한 뒷모습을 보며 저게 큰 딸이 맞나, 내 언니가 맞나 의심했다고 했다. 겉모습만 같은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벌레를 누구보다 싫어했다. 애기였을 때부터 잠꼬대로 "거미 거미!! 으악! 잠자리 으악!" 하며 괴로워 했었고, 수능 스트레스로 힘들 때는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다가도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환영에 소리를 지르며 깨기도 여러 번이었다. 대학생 때는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어깨에 노린재가 붙어 있어서 손으로 떼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와달라고 한 적도 있다. 자취할 때는 화장실에 죽어 있는 바퀴벌레를 치우지를 못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전화를 붙들고 20분 넘게 엉엉 우는 바람에 너무 답답한 엄마의 욕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런 사람이 바퀴벌레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불을 끄고 자러 갔으니 다른 사람이라고 의심할 만 하다.


나는 캐나다에서 1년 사는 동안 강해졌다. 집을 구하지 못해 이사를 4번 다니며 이곳 저곳에서 살아보고(늘 벌과 나비와 나방과 지네와 거미가 함께 살던 집 포함), 곰이 많이 사는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거위가 수십마리 떠다니는 호수에서 수영을 했다. 영하의 추위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비가 와도 차에서 자며 로드트립을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강하고 무던해졌다. 전화로, 카톡으로 나의 일상을 전해 들은 엄마와 동생들은 달라진 딸, 언니를 기대하며 캐나다에 왔는데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강해졌다고 한들 강철 체력인 그들에게 나의 체력은 보잘 것 없기에 세진 건지 알 수가 없고, 멘탈이 단단해졌다기엔 여행 내내 자주 짜증내고 새벽까지 싸우기까지 했다.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자연 속에서 한국에서와는 다른 삶을 살고, 마음의 평온과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많은 것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 게 나였다. 그런데 내 뿌리인 가족들과 붙어있자 마자 그들이 아는 나로 돌아가다니. 조금쯤 멋져진 내가 아니라 원래의 나로 돌아가다니. 그런데 여행의 마지막날에서야 달라진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게 다행인 일이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여행 중엔 별일이 다 있고, 이게 호스트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서

다른 게스트를 받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호스트는 당장 와서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미안해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여행을 좀 더 도울 수 있겠냐고 했다. 이미 마지막 날이라 어쩔 수도 없고, 환불 받기에도 미안한 것 같아 씁쓸해 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좋은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들이 캐나다에 처음인데 나랑 비행기 시간이 달라서 내가 챙길 수가 없으니 공항에 데려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면서, 나도 따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가족들이 우리보다 조금 늦게 우버를 타고 가야 했는데 잘 된 일이다. 엄마랑 동생들도 그 정도면 서로 적당히 해결된 것 같다며 마음을 풀었다. 그러면서 나의 지혜에 감탄했다고 했다. 이 상황에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호스트의 미안함도, 우리의 난처함도 풀 수 있는 적당한 보상인 것 같다면서.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날 기분 나쁘게 망칠 수도 있던 상황에서 엄마랑 동생은 나의 새로운 면에 깜짝 놀라 부정적인 기분을 잊었고, 나는 이제서야 평정심을 기른 나를 되찾은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포옹을 하고 나와 남편은 공항으로 먼저 떠났다. 그렇게 한여름의 여행이 끝났다.


3주 간 가족 여행을 한 지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지난 여행을 꺼내어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보냈는지 선명하게 느꼈다.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성격도, 살아가는 방식도, 분야도 다르지만 서로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혈연으로 엮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서로 의지하고 응원하는 관계인 것은 아니다. 이번 여행 중 동생과 새벽까지 다툴 때 그애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언니가 나를 싫어한다고 느꼈고, 마음에서 멀어진 채로 적당한 친구처럼 지내게 될 것 같았다고. 나는 그 애가 내게 너무도 무심하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이번 여행으로만 생겨난 마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오랜 관계성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3주 간 붙어 지내며 서로의 성격,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가치관 같은 것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서로를 자세히 알게 되었기에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아는', 그렇기에 비로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다.

언제나 다투며 피곤해서 오래 붙어있고 싶지는 않았던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엄마와 함께 종종 여행다니는 삶을 꿈꾸게 했다. 딸 셋을 키우느라고 자신의 시간을 많이 포기했을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좋은 것을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난다.

갓난쟁이이던 시절이 생생한 막내는 자신의 취향을 가꾼, 자신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 가는 어른이 되었다. 마냥 애기 같던 내 동생은 이제 더 이상 애기가 아니고 내가 돌봐야 할 막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그 애 앞에 펼쳐질 미래가 어떨지 기대가 될 만큼 아름답게 자랐다. 그게 이렇게 기쁠 일인지.

마지막으로, 내 남편이 우리 가족을 알게 되었다. 5년 간 서먹서먹 하게 만나온 내 가족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며, "나는 너가 왜 이러는지 놀랍고 궁금했는데 가족들이 다 그러네" 이런 얘기를 자주 하며 신기해 했다. 우리 가족을 위해 3주 간 고생한 남편의 마음이 고맙고, 그가 나의 뿌리를 더 깊이 알게 되어 기쁘다. 10년의 시간동안 서로를 알아온 우리가 이제는 서로의 가족도 알아간다.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일이다. 다시 없을 여행을 통해 이렇게 커다란 사랑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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