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춘천 종결
월요일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난데, 조금 전 시티촬영 결과 양호하다고 오늘 퇴원하래”
“아 진짜?”
마음이 쿵쾅 바쁘게 뛰었다. 드디어, 진짜로 남편이 퇴원하게 되는구나. 남편 옷을 가지고 이젠 춘천이 바로 옆에 있는 거처럼 차를 몬다. 가면서 강원도 산들의 가을 경치를 볼 수 있음에 설렌다. 문득 지난주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단풍으로 꽉꽉 채워졌던 곳에 빈 공간이 보인다. 한창때를 지나 나뭇잎 색도 많이 바랬다. 하루가 다르게 자연은 모습을 달리하는구나. 그래도 아름답다. 아직은 가을이고 나뭇잎이 아래로 떨어져 쉬고 있는 산들도 나름 운치 있다.
춘천에 들어서니 아직 지고 싶지 않은 노란 은행잎들이 나를 반긴다. 이젠 익숙해진 거리를 지나 병원으로 들어선다. 간호사실에서 퇴원 설명을 듣고 서류를 잔뜩 떼고 간병인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와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담당 의사를 만났다. 키가 작은 젊은 의사다. 우리는 반갑게 감사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새삼 의사들의 사명과 역할이 얼마나 큰지 느껴진다. 점심시간이 지나 밥을 먹고 가려고 식당 주변에 차를 세우려는데 공간이 없자 남편이 심하게 짜증을 낸다. 뭔가 불안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냥 출발한다. 뒷좌석에 태우고 오는 길에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3주 동안 몸도 마음도 너무 큰 고통과 변화를 겪어 그런 거 같다. 휴게소에 들러 밥을 먹는데 선택한 메뉴가 아주 별로라고 투덜댄다. 나는
“네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본모습으로 돌아온 거 같네. 불평불만을 말해야 당신이지”
라고 살짝 핀잔을 주니 서로 웃음이 났다.
남편은 예민하고 조금 까탈스러운 성격이다. 집요하고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내곤 한다. 그런 모습이 싫어 우리는 무던히도 싸웠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있으니 그런 것쯤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더 포용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다시 마주하니 살짝 분동이 되기도, 안심이 되기도 한다. 집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 가족들과 지인들과 번갈아 가며 같은 내용의 통화를 해야 했다. 다들 천만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집에 오니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고 푸석푸석해 보이는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잔소리가 심해진다. 뭐든 거추장스러워하는 남편에게 양말과 실내화 신어라, 나갈 때 무조건 모자 써라, 짜게 먹지 마라, 음식을 천천히 먹어라 등등. 나도 신경이 예민해진다. 애들한테는 잔소리를 많이 해도 애들이니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남편은 어른이라 잔소리하다 안 들으면 그냥 관심을 껐던 거 같다. 어차피 말을 듣지도 않는데 계속하는 건 에너지 낭비인 거 같아서다. 이젠 잔소리를 더 세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상은 안 좋지만 고분고분 내 말을 듣는다. 그건 그거대로 왠지 낯설다.
춘천을 빠져나올 때 바람이 은행나무잎을 부수수 떨어뜨리며 거리로 흩어지는 모양이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거 같다. 이젠 안녕~이라고. 춘천을 오간 3주간은 나와 가족에게 지각변동 기간이었다. 언젠가 작은 아들이 48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해 수억 년에 걸쳐 지각변동한 위에서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거라 했다. 지금 평평해 보이는 우리가 밟는 땅도 모두 화산폭발이 일어나서 굳은 땅들이라고 하면서. 3주간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화산폭발이 잠잠해졌다. 이제는 전과 다른 지형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만들어졌다. 화산폭발하고 난리 난 지구를 태양은 변함없이 빛을 보내 생명을 키우고 자라게 한 거처럼 나도 태양이 되어야 한다. 태양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야 한다.
남편이 겪은 병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 봤다. 내적, 외적, 그리고 숙명적인 원인이 얽혀있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거다. 어떤 모습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 태양처럼 미소를 띠면서. 지지 않는 것이 이기는 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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